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
법은 시대변화에 맞게 꾸준히 제·개정될 필요가 있다. 지난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후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다 주춤하고 있다. 산업재해 감소가 주춤하는 이유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산업안전보건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인한 높은 재범률을 뽑을 수 있겠다.
산업안전보건 범죄는 구체적인 위반행위와 사전에 준수하여야 할 의무를 검토하여 연루된 책임자의 형량에 경중을 따진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구체적인 위반행위와 멀어지고 준수할 의무가 적을수록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를 띠고 있다.
산업안전보건 범죄의 재범률이 높은 이유
산업안전보건 범죄로 인하여 처벌받는 대다수가 현장에서 안전보건직책을 가진 자와 노동자 등에 집중된 이유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특히, 사법부가 산업재해에 대한 재판에서 산업안전보건 범죄를 과실의 영역으로 두면서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의 경우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에 처한다. 산업안전보건 범죄를 경험해본 경영책임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인한 범죄가 가볍다는 것을 인식하고 차라리 현장의 안전보건을 개선하고 관리하는 것보단 재범자가 되는 게 비용적으로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일반범죄의 재범률에 비하면 산업안전보건 범죄의 재범률이 2배가 높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경영에 대한 책임과 안전보건을 위한 인력, 조직, 예산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의무인 13가지 준수 의무를 부여하고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단기간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앞서 설명한 기나긴 배경이 뒷받침돼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원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을 이유 없이 단기간에 개정하려 한다. 말로는‘개선’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만 사실상 경영계가 지속해서 요구해온 내용을 모조리 수용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들고 있다.
행정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시도
고용노동부는 정부 출범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토론회,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TF,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선 TF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안전보건규제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TF’에서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축소, 제재방식 약화, 유예기간 연장 등 경영계가 지속해 건의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중대재해처벌법 개선 TF’가 낸 경영계 편향의‘답정너’결론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TF’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의 유예기한을 더 늘리는 방향도 검토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3년 유예를 두었고 2024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이 적용 대상이 된다.
과거에 50인 미만 사업장은 규모가 작고 열악하다는 이유로 대다수의 안전보건 의무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현재의 50인 미만 사업장은 과거의 50인 미만 사업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미 3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중대재해처벌법 상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시간을 주었는데, 아직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더 이상의 유예 없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이 중대재해를 감축하는 지름길이다.
입법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시도
입법부인 국회마저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기 위한 개정안을 발의하거나 발의가 예정 중이다. 여당과 무소속의원이 발의 한 안의 공통된 내용은 중대재해처벌법에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준을 신설하여 민간기관에 위탁한 인증제도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해주는 안이다. 이 안은 중대재해 사전예방과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경영책임자 처벌 회피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경영책임자 처벌 회피를 위한 인증제도의 신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현행의 안전보건 인증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산업안전보건 인증제도는 현재 ‘ISO 45001’, ‘KOHSA-MS’등이 있지만 샘플링 한계, 심사원의 역량 차이, 업종별 평가 기준 부재, 사후관리의 부실 문제로 개선이 필요하다. 인증만으로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회피한다면 ‘인증장’만 넘쳐날 뿐 현장의 안전보건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사법부, 중대재해처벌법 1심 선고
지난 4월 중대재해처벌법 재판 중 1심 선고가 2건이 나왔다. 1호 선고(온유파트너스)와 2호 선고(한국제강)이다. 2건의 사건 다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처벌은 받았으나 1호 선고는 집행유예가 2호 선고는 징역형(실형) 1년에 그쳤다. 두 사건을 크게 가른 것은 1호 선고와 비교하여 2호 선고의 사업장인 한국제강이 과거 수차례에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노동자의 사상이 있었으나 개선조치가 없었던 것을 크게 고려했다.
의미 있는 재판들이 많이 남아있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이었던 삼표산업의 경우 대표이사가 아닌 삼표그룹의 회장을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로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직업성 질병사건(16명 노동자 급성중독)인 두성산업의 경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여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중대재해처벌법은 이해당사자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 모두에게 노력을 요구한다. 안전보건경영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시행부터 지금까지 많은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 오래도록 이롭다. ’는 옛말처럼 어쩌면 수십 년 전에 해야 했던 밀린 숙제를 지금 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년부터는 산업재해가 대다수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노·사·정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할 때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재해 예방 예산은 많은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준수해야 할 안전보건 의무가 적다는 점도 재검토해야 한다. 당근만 산더미처럼 쌓아둔다고 말을 살찌우게 할 수 없다. 때로는 채찍질도 필요하다.
한국노총은 시대변화에 맞게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 바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의견을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