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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철학] 정의란 무엇인가

이응구 (‘민주주의자, 맹자와 플라톤’의 저자)

등록일 2020년08월20일 10시4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지난 글에서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용기, 지혜, 경건, 정의 등 인간의 덕목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살았다고 소개했다. 그의 제자 중에서 플라톤은 이런 여정을 따라가며 마침내 자신의 답을 제시하였다. 20세기 초에 활약한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화이트헤드가 ‘유럽철학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그는 서양사상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 왼쪽이 플라톤, 오른쪽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은 약 40여 편의 대화편을 남겼는데 ‘정의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달린 ‘국가’라는 대화편에 그의 대부분의 핵심사상이 담겨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평생을 탐구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정의에 대해서 플라톤은 이 대화편에서 자신의 답을 제시한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혼에는 세 가지의 기질이 있는데 그것은 지혜, 기개, 욕망이다. 정의는 이 세 가지 기질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상태인데, 그 조화란 욕망에 이끌리지 말고 지혜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다. 이를 공동체에 적용한다면 한 공동체에는 혼의 지혜에 해당하는 ‘수호자’, 기개에 해당하는 ‘전사’, 욕망에 해당하는 ‘돈벌이를 하는 부류’가 있는데, 정의로운 공동체는 수호자에 해당하는 부류의 인도에 따라 운영이 되어야 한다.

 

이런 플라톤의 주장은 많은 영향을 끼친 만큼 또한 많은 비판을 받는다. 달라진 시대에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기에 필자는 이런 주장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려 한다.

 

그는 이 대화편에서 정의뿐 아니라 지혜, 기개, 욕망 등 다른 덕목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이런 탐구를 통해 찾게 되는 각각의 인간의 덕목을 그는 이데아(Idea)라 말한다. 이 단어는 우리가 사상, 이상, 생각, 방법, 개념 등등의 뜻으로 사용하는 아이디어(idea)의 어원이 된다. 만일 그의 주장대로 정의, 용기, 지혜 등등이 무엇인지 이데아를 통해 알 수 있다면 인간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분쟁들은 대부분 해소될 것이다. 우리가 겪는 갈등과 분쟁의 대부분은 무엇이 정의로운 지, 무엇인 좋고 나쁜 것인지 등에 대한 의견차이가 아닌가? 그런데 플라톤이 이데아를 이야기한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간은 수많은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다. 그럼 이데아는 없는 것인가?

 

플라톤은 이데아는 존재하지만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알 수 없고 지성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눈으로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귀로 색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눈이 있더라도 눈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망가지면 색을 볼 수 없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이데아는 오직 지성의 눈을 뜬 자만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이 지성의 눈을 떠서 ‘정의의 이데아’를 봤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정의라 주장한다면 그 주장이 올바르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는 마치 죽음 이후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현재 우리가 처한 여러 갈등과 분쟁은 이런 상황이다. 각자가 자신이 본 ‘이데아’가 올바르다고 주장하며 다투고 있다.

 

이를 빨간 색을 보는 것에 비유해보자. 눈을 감고 있는 자에게 빨간 색을 설명할 수 있을까? 노을의 색이라고? 5월 장미의 색이라고? 피의 색이라고? 이 모든 설명은 시각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가 빨간 색을 알기 위해서는 눈을 떠서 보는 수밖에 없다. 각자의 ‘정의’를 주장하며 다투는 것은 빨간 색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이것이 빨간 색이다’라고 주장하는 장님들과 마찬가지이다. 눈을 떠서 빨간 색을 본 자는 자기가 봤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내가 본 빨간 색을 눈을 뜨지 못한 자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빨간 색을 가지고 다투지 않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빨간 색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의를 가지고 더 이상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정의의 이데아’를 직접 볼 수 있는 지성의 눈을 뜬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 전에는 내가 주장하는 정의가 눈을 감은 상태에서의 주장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자 #플라톤 #정의 #이응구

이응구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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