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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철학] 사람이 인(仁)하지 않으면 예(禮)와 악(樂)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응구 작가, ‘민주주의자, 맹자와 플라톤’의 저자

등록일 2020년09월11일 17시0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고대의 제도와 예법을 기록해놓은 예기(禮記)라는 책에 예(禮)가 가지는 중용의 정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사람은 슬픔을 너무 과하게 표현하여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이고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슬픔의 표현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때 성인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의 정신으로 적당한 예(禮)를 제정하여 백성들이 실천하게 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상황 말고도 백성들이 처하게 될 크고 작은 상황에서 타자와 적절하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표현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는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 관계의 가깝고도 멀음 등에 따라 각각 다르게 표현된다.

 

고대의 예법의 형식을 지금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중용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禮)의 내용은 타자와 적당한 관계 맺기를 하는 것이고 그것의 형식은 그 정신이 밖으로 드러나는 표현의 형식이다. 악(樂)은 락(樂), 곧 즐거움과 통한다. 기쁨(悅)은 혼자서도 누릴 수 있지만 즐거움(樂)은 혼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함께 나눌 때 누릴 수 있다. 혼자 공부할 때 느끼는 기쁨이 벗과 함께 할 때 두 배 이상의 즐거움으로 증폭되듯이 악(樂)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할 때 그 즐거움(樂)이 배가된다.

 

공자는 춘추시대라는 혼란된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방책으로 조화와 중용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예악’을 제도로 활용하려고 했다. 공자에게 예와 악은 그가 꿈꾸는 대동사회의 정치사상이고 사회시스템이다. 그런데 그런 예와 악도 인(仁)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공자가 예와 악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인(仁)은 요즘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다. 맹자는 모든 사람에게 측은지심이라는 인의 씨앗이 되는 마음이 있다고 주장했다. 측은(惻隱)은 슬퍼하고 근심하는 마음이다. 타자의 기쁨에 공감함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공자와 맹자에게 있어서 공동체의 안전장치는 타자의 기쁨보다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이다. 한의학에 불인(不仁)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몸의 마비를 뜻하는 말이다.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는 혈액이나 신경이 막혀서 마비된 몸과 마찬가지이다.

 

예와 악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공자가 살던 당시 많은 백성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그 고통을 경감하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려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만일 예와 악이 그런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리라. 그리고 예와 악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자들이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다면 그런 마음으로 만들어진 질서는 또 다른 억압이 될 가능성이 많다.

 

우리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낡은 질서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에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이 중요한 화두로 여겨진다. 동서를 막론하고 오랜 세월동안 노동과 그 노동을 담당했던 자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있어왔다. 그런 억압과 차별이 부당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 되었고, 그런 낡은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세우려는 노력에 보편적 상식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항상 근본물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은 왜 해야 하는가? 마치 공자의 예약처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노동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공동체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의 삶을 제약하고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도 저해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의 억압과 차별을 없애겠다고 나선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주장했던 새로운 질서가 또 다른 억압과 차별을 불러온 사례가 많다. 공자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새로운 질서의 바탕이 되는 근본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같은 사례를 반복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공자의 말을 약간 변주하여 이런 주장을 해본다.

 

사람이 공감하는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노동해방이 무슨 소용이며 여성해방이 무슨 소용인가? 

이응구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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