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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응구 (‘민주주의자, 맹자와 플라톤’의 저자)

등록일 2020년11월18일 14시4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Cogito ergo sum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용문은 근대철학의 문을 열었다고 후대인들에게 평가받고 있는 데카르트의 사상을 요약한 말이다. 이 짧은 글이 어떻게 중세의 틈을 열어젖혔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의미로 재해석해 볼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존재의 근거를 생각에 두고 있는 이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난 데카르트의 저서는 우리에게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처음에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 증명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제목에서 데카르트가 자신의 글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모두 드러난다.

 

그는 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을까? 아니, 왜 증명해야 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농담을 덧붙여 본다. 필자는 두 아이가 있는데 아이들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봤기에 둘 다 필자의 아내가 친모임을 100% 알고 있지만, 그 아이들이 필자의 친자임은 이론적으로는 100%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필자는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만일 어떤 이유로 인해 필자가 그것을 의심한다면 아마 유전자 검사를 통해 사실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려 할 것이다. 무언가를 ‘증명’한다는 것은 이처럼 의심이 먼저 있기에 그 의심을 잠재우기 위한 과정이다.

 

이 당시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신교와 구교를 비롯한 종교 갈등이 한창이었다. 종교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는 시대였고 그 갈등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이는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고 신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각 국가와 종교집단들은 자신의 이익을 자신이 해석한 신의 뜻과 결부시켜 그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데카르트는 이런 분쟁을 종식시키는 출발점으로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성’적인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가 신 존재 증명을 위한 방법론으로 제안한 ‘제일철학’의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부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의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원인은 아버지와 어머니이고 또 그 원인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이고....... 이처럼 원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그 자신은 모든 것의 원인이면서 다른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라 불렀는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의 원인인 이 존재가 바로 신(神)이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 신의 존재가 ‘제일철학’이다.

 

이런 희랍의 사상이 히브리사상과 만나면서 유럽은 기독교화 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는 이제 기독교의 창조주로 변신하여 세계의 모든 원인이 된다. 데카르트도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그렇기에 세상의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을 이미 주어진 전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제일철학’을 구상한다.

 

그는 ‘나의 감각’부터 시작해서 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느끼고 옳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꿈을 깨기 전에는 마치 꿈이 현실처럼 느끼는데 혹시 지금 이 순간도 꿈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심의 와중에 그는 의심의 대상은 실재하는지 환상인지 알 수 없지만, 의심하고 있는 주체인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신의 존재보다) 우선하는 원리는 ‘의심(생각)하는 나’이고 이것이 그에게 ‘제일철학’이 된다. 그는 여기서 출발해서 신의 존재와 영혼불멸을 증명해 나간다.

 

오랜 중세를 극복하며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데카르트의 사상이 고작 신 존재 증명을 위한 것이라고 실망하는 독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데카르트는 중세의 모든 것을 극복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이 항상 먼저이고 중심이었던 중세의 사고에 틈을 냈을 뿐이다. 데카르트 이후부터 모든 생각의 출발은 신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가 되었다. 거대한 둑이 작은 구멍으로 인해 무너지듯이 데카르트가 낸 ‘생각하는 존재’라는 틈은 신 중심적 사고에서 인간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촉발하였고 그로 인해 근대의 문은 열리게 된다. 

이응구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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