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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신뢰

이응구 (‘민주주의자, 맹자와 플라톤’의 저자)

등록일 2020년05월12일 13시5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民無信不立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는 바로 설 수가 없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팬데믹에 고통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던 유럽의 여러 나라나 미국에서도 벌어지는 사재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우리의 방역 시스템과 경험을 배우려 하는 모습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사태 안에서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고찰할 만한 주제이다. 


필자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주는 현재의 우리 모습뿐만 아니라, 구한말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독립을 이루어냈고 해방 이후에도 외세에 의한 분열과 내전, 그리고 수십 년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도 모든 분야에서 세계에 유례없는 급격한 발전을 이룬 우리나라의 힘은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필자는 그 원인 중 하나가 ‘유교적 합리성의 전통’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가설을 써본다. 이 짧은 글에서 그런 가설에 이른 추론의 과정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공과 공자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그 일단을 드러내보려 한다.


어느 날 자공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는다. 이에 공자는 첫째, 백성들이 풍족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하며(足食), 둘째, 나라를 지킬 병력이 충분해야 하며(足兵), 셋째, 백성들의 믿음(民信)이 있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자공은 이 정도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 더 들어가 묻는다. 세 가지가 다 충족되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셋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공자는 병력을 버려야 한다고 대답한다(去兵). 자공은 여기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만일 먹을 것(食)과 신뢰(信)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물어본다. 


이에 대한 공자의 답이 좀 의외이다. 공자는 신뢰보다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고 대답한다(去食). 필자는 처음 이 구절을 읽을 때 공자의 의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서로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먹을 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날 자공의 질문에 다시 주목하면서 공자의 뜻을 어림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자공은 정치(政)에 대해서 물었다. 정치는 개인의 생존만이 목적이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여러 개인이 함께 관계하며 자신과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함께 모색하는 행위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귀가한다. 귀가길이 안전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터넷과 유통이 발달한 요즘 인터넷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 물건을 받은 후에 돈을 지불하는가? 아니다. 먼저 지불을 하고 나중에 물건을 받는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먼저 돈을 지불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에게 약속된 물건을 보내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끔씩 그런 믿음을 이용해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는 사기행위를 하는 자들도 있다. 이런 자들이 많아진다면 아마 인터넷쇼핑이라는 시스템은 무너질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모든 질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 신뢰가 무너진다면(無信) 질서도 역시 무너진다(不立).


공동체의 신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공동체를 다스리고 운영하는 자들에 대한 믿음이고 또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믿음이다. 글 서두에 언급했던 다른 나라의 사재기현상은 그 나라의 시민들이 자국 정부와 서로간의 대한 두 가지 신뢰가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식(食)이 부족한 상황이 여러 날 동안 지속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가 큰 혼란을 겪지 않는 이유는 시민들이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인 서로에 대해서 신뢰를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뿐 아니라 크고 작은 공동체에 속해 살아야 하는 본성을 가진 우리는 신뢰가 가지는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겨 봐야 한다. 

 


 

이응구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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