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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정신에 대하여...사단(四端)

이응구 (‘민주주의자, 맹자와 플라톤’의 저자)

등록일 2020년12월15일 10시3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올해는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이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할 수 있는 자본과 기득권의 이해를 대변해왔던 제1야당의 한 의원조차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며 전태일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제 더 이상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금기를 넘어 어떤 보편성을 띠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이야기하는 ‘전태일 정신’은 모두 같은 뜻일까?

 

필자는 2011년 이소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부터 거의 매년 9월 3일과 11월 13일에는 이소선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마석모란공원을 방문해왔다.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얼마 전의 50주기 추모행사까지 행사를 지켜보며 매번 필자가 의아해하는 장면이 있다. 행사에는 항상 양대 노총의 대표가 나와서 추모사를 하는데 사회자가 이를 소개하면서, 협의에 의해 오늘 추모사는 한국노총이 먼저 하고 다음 행사의 추모사는 민주노총이 먼저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추모사를 누가 먼저 하는 가를 중요하다고 여기기에 양 노총은 자신들이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다가 공평(?)하게 9월은 우리가, 12월은 너희가, 하는 식으로 합의를 봤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듣고 필자의 귀를 의심했다. 이소선 어머니는 살아생전 항상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하나가 되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양 노총이 하나가 되거나 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누가 먼저 추모사를 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양대 노총의 대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 것을,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을 것을 추모사에서 언급했다. 모란공원의 추모식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투쟁현장에서 단상에 올라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또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전태일 정신’은 서로 달랐다. 이들 중 대부분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옮음에 그 정신을 끌어 붙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전태일 정신 이어받아 ○○○○ 쟁취하자 / 앞당기자 / 이룩하자’ 등의 구호에서 기독교인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의 이름을 끌어들이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필자에게 ‘전태일 정신’은 하나의 화두(話頭)가 되었다. 아마 이 화두는 죽을 때까지 붙들고 가야하리라 생각된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맹자를 다시 읽으면서 그 정신의 일단을 본 듯하여 소개해 본다. 맹자는 모든 인간에게는 차마 참지 못하는 마음인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있다 주장했고 그 마음을 사단(四端)으로 정리하였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마음인 측은(惻隱), 나의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타자에게 가하는 불의에 분노하는 마음인 수오(羞惡), 나의 것을 거절하고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辭讓),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간할 수 있는 마음인 시비(是非) 네 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전태일은 함께 일하는 여공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같이 공감했고(측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우에 분노했고(수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이익을 양보하였다(사양). 이는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이것이 옳지 못하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시비). 이 모두는 자신이 겪는 고통과 불의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것을 지키거나 자신이 옳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타자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타자가 겪는 고통과 불의를 견디지 못하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만의 옮음이 아니라 보편적 옮음을 추구하며 때로는 이미 자신의 것을 타자에게 기꺼이 양보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50년이 흘렀지만 노동현장의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에 그의 정신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다. 필자는 ‘변하지 않은 현실’보다는 그 정신이 이런 보편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보다 훨씬 노동현실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불의에 고통 받는 타자가 있는 한 ‘전태일 정신’은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내년은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된다. 내년의 추모식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이응구 작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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