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1년을 넘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이미 사회 전반에 심대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 우선 외교정책에서 과도한 미국편중으로 동북아 지정학적 균형감을 상실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해서 비판을 차단할 정도로 편향성을 보여 생태위기를 방조하고 있다.
노동정책, 환경정책, 사회정책도 전반적으로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로 회귀하고 있다. 노동정책은 노동조합을 사회악으로 만들어 노동운동에 대한 괴롭힘으로 드러났고, 노골적인 친자본 정책은 추진 중이다. 환경정책에서도 세계적 추세인 탈탄소 정책에서 역행했다.
특히 급격한 변화가 쉽지 않은 사회정책에서도 전방위적인 후퇴 양상이 눈에 띄는데, 그 중 심각한 퇴행은 다름 아닌 보건의료정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윤정부 건강보험 긴축선언의 문제점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22년 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지칭하면서, 보장성 후퇴를 지시했다. 한국은 2021년 OECD 보건 데이터 따르면 공적 의료 보장성이 61%로 거의 세계 꼴등 수준이다.
문제는 필수적 의료서비스가 대부분인 입원영역의 보장성도 67%로 낮은 편이다. OECD 입원 보장률 평균은 87%다. 가까운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와 인구당 비슷한 의사 수 및 병상 수를 가지고 있는데도, 입원 보장성이 92%로 높다. 이런 높은 보장성 덕에 일본에서는 의료비로 경제적 타격을 받는 재난적 의료비 가구도 2.3%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재난적 의료비 가구는 7.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즉 한국은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혹은 유지를 논할 상태가 아니라, OECD 평균수준에 빨리 도달해야 하는 상태다. 우리의 경제 규모에 비추어도 건강보장영역의 안전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국제기구는 지적하고 있다. 이런 객관적 상황 검토는 전혀 없이, 공적 의료보험의 보장영역을 무조건 줄이겠다는 최초의 대통령이 등장했다.
문제는 건강보험에 대한 긴축선언이 단순히 공적 보장만 축소하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공적보험의 보장범위 외 부담은 우리 국민 개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유지될 수 개개인이 이 비용을 부담하기 힘든 만큼, 당연히 민간영역에서 안전장치를 찾게 된다. 그 결과 실제 선택지는 저축 아니면 민영보험이 된다.
한국은 낮은 보장성을 계속 유지하여 OECD 국가 중 경상 의료비의 민영보험 지출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다. 통계를 보면 현재 경상 의료비(2022년 총 220조로 추산)의 10%에 도달했다. 이는 22조 원 정도의 시장이다. 정액보험을 제외하고 실손 민영보험만 봐도 2021년 가입자가 4천만 명에 이르고,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에 보험수익만 11.6조 원으로 전년 대비 1.1조 원 증가해서 매년 10.4%의 증가세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런 가파른 민영보험시장의 성장은 당연히 공적보험의 부실화와 관련이 크다. 따라서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의 직접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비효율적인 민영보험에 지출하는 금액을 절약하려고 공적보험을 강화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도 하지 않은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축소하겠다는 선언을 했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공적 보장과 경제적 상충관계(trade off)인 민영보험을 활성화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윤정부의 목표는 민영보험 활성화
실제 현 정부의 민영보험 활성화 정책은 여러 방면에서 진행 중이다. 2022년 9월 보장성 축소선언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민영보험사가 1차 진료 부분에 진출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를 시행했다. ‘건강관리서비스’라고 하면 뭐가 건강을 관리하는 긍정적인 서비스로 인지되지만, 실제 내용은 건강증진·예방·만성질환 관리 1차 의료 부분을 기업이 돈 받고 하는 서비스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당연히 이 서비스는 영리사업으로 제공하는 업체도 대부분 민영보험사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같은 민영보험사는 만성질환 관리 등으로 돈도 벌지만, 더 중요하게는 보험가입자의 건강정보를 획득할 수 있어서 건강관리서비스 진출에 눈독을 들여왔다. 이미 2009년, 2010년에 건강관리 서비스법안으로 이런 시도를 했지만, 당시에 의료민영화법안으로 낙인찍혀 입법에 실패한 바 있다.
이런 입법 사안을 윤석열 정부는 정부가 기업인증을 하겠다며 사실상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 19시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진료를 전면허용하려 한다. 원격진료는 관리되고 있는 만성질환 등에 한해서는 일부 허용될 여지가 있지만, 이 서비스가 영리적인 기업의 중계서비스가 되어선 곤란하다. 국민건강 보험체계 속에서 의료서비스가 운영되는 게 한국에서는 근간인 만큼 원격의료도 공적 체계 속에서 논의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영리 플랫폼 기업이 진출해 영리사업을 진료와 연계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특히 원격의료를 전면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시범사업 명목으로 이를 허용했는데, 심지어 시범사업에서 진찰료나 조제료가 대면 진료보다 30%나 비싸게 책정되었다. 국민건강 보호와는 거리가 먼 영리기업의 사업확장을 위한 정책으로 보인다. 영리기업이 민영보험사와 연결도 손쉽게 하려고 하니, 바야흐로 민영보험 중심 체계가 열리는 것이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의 문제점
민영보험 활성화 정책의 화룡점정은 실손의료보험의 의료기관 직접 전산청구 추진으로 마무리되려 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소위 ‘청구 간소화’ 법안이 그것이다.
이 법안은 실손보험청구서류를 의료기관이 손쉽게 민영보험사에 전송하도록 하는 ‘편의성’ 법안으로 선전되고 있으나, 사실 본질은 다르다.
우선 의료기관이 민영보험사에 환자의 개인 진료 정보 등을 전송하게 되면 이는 민영보험사와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미국식 의료제도의 등장을 방조하게 된다. 이 법안은 국민편의를 명분으로 하고 있으나 민영보험사가 의료기관 연계되어, 환자의 개인 건강정보를 축적해서 장기적으로 보험 가입거절, 보험금 지급거부 등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단순히 단기적 편익으로만 환원시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야당의 수준도 문제지만, 앞서 살펴본 건강보험 긴축, 건강관리서비스 인증, 원격의료 시범사업 등과 이러한 의료기관 직접 진료 정보 전송이 연계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제대로 국민에게 알리지 않는 것도 문제다.
국민건강·보건의료를 민간영리기업에 팔아서는 안된다
요약하면 윤석열 정부의 보건정책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국민건강을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축소하고, 건강관리서비스를 인증하고, 원격의료를 활성화하면서 실손의료보험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환자 진료 정보도 전산으로 수취해 집적화하려고 한다.
서로 다른 정책의 추진으로 보이지만, 결론은 민영보험 활성화 정책으로 수렴한다. 노동·사회·시민단체들은 여러 보건의료정책에 분절적으로 하나하나 대응하긴 보다는 그 본질에 반대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아마 앞으로 의사 정원확대, 간호 노동 개선, 의료기기 및 약품 규제 완화 등의 쟁점에서도 이런 방향성이 드러날 것이다.
끝으로 퇴행적 보건정책은 노동자 서민의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켜 실질적인 임금하락을 올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줄어들어 직접의료비가 증가하고, 불필요한 건강관리서비스, 원격의료, 실손의료보험 등에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윤석열 정권이 이런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게 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윤석열 퇴진을 외쳐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