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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구조조정에서 노골적인 구조조정으로

농민들이 거리로 나온다

등록일 2022년09월05일 13시5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형수 정의로운전환연구단

 

2019년 11월, 세계농업박람회가 열린 독일 베를린에서 트랙터를 끌고나온 농민들이 거리를 점거했다. 2022년 8월 네덜란드 농민들은 농무부 장관 집 밖에다가 똥을 뿌렸고, 건초더미와 타이어로 고속도로를 막았다. 두 나라 모두 지하수 내 질소함량이 높아 유럽연합 환경법을 위반했다고 제소를 당했고, 패소했다. 그러자 정부 당국은 지하수내 질소함량을 규제한다면서 화학비료 사용을 규제하고 축산농가의 동물복지 규제를 강화했다. 농민들은 해당 규제가 발효되면 더 이상 농사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며 정부에 반발했다.

 

2022년 7월 스리랑카 대통령이 몰디브로 도주했다. 심각한 경제난에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통치 능력을 상실한 대통령이 도망친 것이다. 그 시작은 농민들의 시위였다. 지난해 4월 스리랑카 정부는 과도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에 대응해 화학비료와 농약 수입을 금지했다. 유기농 100%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을 펼쳤다. 농약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농민들이 매년 수천 명에 달하니 명분도 분명했다. 하지만 생산량 감소를 염려한 농민들이 충분히 시간을 두지 않은 채 추진하는 급격한 금지 조치에 반발했다.

 

지하수 내 질소함량 규제, 유기농 전환 등은 과도한 투입재 사용으로 발생하는 환경 피해를 줄이고 피폐해진 농업의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해주는 안전망이 없자 농민들은 반발했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농민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크다. 생산량 감소로 소득이 감소할 수 있고, 노동 강도가 이전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과 보완하는 정책이 없다면 농민들은 농업에서 내쫓긴다고 느끼게 된다.

 


 

 

기후위기 대응, 정부는 무얼하나?

 

우리 정부 또한 농업 분야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처럼 직접적인 규제 방식은 아니지만, 농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고, 유기물의 투입과 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방안들을 현장에 적용하려고 한다.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에너지 절감시설과 재생에너지를 보급하고 있다. 또 자연발생적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논물관리나 사료개발 및 가축분뇨의 에너지화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설재배 면적은 전체 경지면적의 약 6% 수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시설재배는 전체 농업분야 에너지 소비 중 대략 61%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시설재배의 화석연료 소비를 절감하기 위해 효율을 높이는 수막커튼, 보온다겹커튼 등 효율설비를 보급하거나, 지열히트펌프 목재필릿 등 에너지 시설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이 실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와는 별개로 진척정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난 4년 동안 연평균 300억원 수준의 예산을 편성하고 있지만 초기 투자비 부담으로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진입 자체를 하지 못해 실집행률이 4년 평균 66%에 불과하다. 지난 4년 동안 연평균 760ha에 에너지절감시설이 보급이 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전체적인 전환은 불가능하다.

 

또 다른 문제는 시설투자를 할 수 있는 규모 있는 농가와 시설투자를 하기 어려운 소규모 농가가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데 격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화석연료 소비 감소에 대한 압력이 커질수록 시설전환이 어려운 농가는 농업에서 밀려나게 된다. 만약 해외처럼 법적인 규제까지 적용된다면, 자연스럽게 대규모 농가 중심의 농업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과 생산성 향상 명분으로 추진되는 시설재배의 스마트팜이나, 개별 농가단위의 디지털 전환은 이런 상황과 문제를 극단적으로 가속화한다.

 

에너지 부문 이외에도 벼농사, 농경지 내 화학비료 및 가축분뇨 투입, 가축사육(방귀와 트림), 가축분뇨처리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벼농사의 경우 담수 상태에서 유기물이 산소와 격리된 채로 분해되면서, 이산화탄소보다 28배 강력한 메탄이 발생한다. 이는 먹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축(소)들의 방귀와 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화학비료와 가축분뇨를 농경지에 투입하게 되면 비료와 분뇨 내 질소가 산소와 만나 메탄보다 9배 강력한 아산화질소가 배출된다.

 

핵심은 가축분뇨다. 벼농사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벼재배 면적 감소로 2019년 기준 1990년 대비 약 40%가 감소했다. 과거 농업부문 배출의 약 60~70%를 차지하는 벼농사 배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가축사육두수 증가로 가축분뇨처리, 가축사육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농업부분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됐다. 농경지에 투입되는 가축분뇨까지 고려하면 가축분뇨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이 농업부문의 핵심 문제가 된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계획으로 가축분뇨의 에너지화와 저메탄, 저단백 사료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가축분뇨의 에너지화는 발생된 가축분뇨를 농경지로 투입하지 않고, 기존처럼 퇴액비화가 아닌 전력과 열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겠다는 의도다. 저메탄, 저단백 사료의 경우 사료 성분에 변화를 줘 가축의 방귀와 트림에서 나오는 메탄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저메탄, 저단백 사료의 경우 축산농가의 사료비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다. 닭과 돼지의 경우 개별 축산 농가는 대기업(각각 하림, 사조가 대표적)의 위탁생산 농가로 구조화된 상태다. 각종 투입재와 가축을 대기업에서 공급받아 사육하는 구조인데, 개별 농가에게로 경영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 저감의 책임이 대기업이 아닌 하청업체로 전락한 농가에 전가된다. 소의 경우, 아직 대기업이 아닌 소규모 농가들이 작은 규모로 키우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다. 향후 증가할 환경규제나 온실가스 저감 정책(스마트 축사로의 전환)은 소규모 농가의 시설투자 부담을 늘려, 근본적인 농가 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다.

 

 

노골적인 구조조정으로

 

앞서 소개한 정책들은 농림축산식품부의 2050탄소중립 추진전략에 나오는 내용들이지만, 사실 추진전략이 나오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된 정책들이다. 대규모 농가에게 유리한 시설투자, 소규모 농가나 고령농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각종 영농형태가 권장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빌미로 더욱 노골적으로 농업 내부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에 따라 농가 내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절대 다수를 형성하는 소농들은 농업에서 쫓겨나게 되고, 시설과 자본 그리고 기술을 갖춘 농기업이나 현재의 상황에 적응할 여력이 있는 대규모 농가만이 살아남는 농업구조로 고착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관료와 기업들이 원했던 소수에게 집중된 영농형태이다.

 

현재의 농업 전환은 정의롭지 않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현재의 농업과 농가 구조가 전환을 수용할 수 있을지 여력을 평가하고, 전환 정책이 미칠 사회적, 경제적 영향이 가늠되어야 한다. 탄소만 줄이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버틸 수 없는 농가에 대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작은 규모라도 농사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 소농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의 기반은 뿌리째 말라 소멸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열쇠는, 탄소가 아니라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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