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이란?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는 국제연합(UN) 내 전문기구로서, 1919년 창립되었으며 국제적으로 노동인권기준을 수립하며 그 이행을 감시하는 기능을 한다. ILO는 회원국의 노동자‧사용자‧정부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총회를 구성하며, 이 총회에서 국제노동기준에 관한 협약을 채택한다.
2022년 현재 180여 개에 달하는 ILO 협약 중에서도,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을 비롯한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폐지, 균등대우 관련 8개 협약을 ‘기본협약’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터에서의 기본권리이자 ILO의 원칙과 직결되는 협약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ILO 회원국은 설령 이들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의 회원이라는 바로 그 사실로부터 이들 8개 협약을 존중하고 촉진하고 실현할 의무를 가진다.
한국이 30년 늦게 비준한 ILO 결사의 자유 협약, 강제노동 협약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한 이후 기본협약 중 아동노동 폐지, 균등대우 관련 4개 협약만 비준했다. 한국 정부는 1998년부터 결사의 자유 협약 등 미비준 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2021년 4월에야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제87호, 제98호) 및 강제노동 금지 관련 협약(제29호)을 비준했다. 여전히 강제노동 관련 105호 협약은 비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 협약의 비준 및 발효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결사의 자유 협약을 예로 들어 보자. ‘결사의 자유’가 뜻하는 노동조합을 결성‧가입하고 단체교섭 등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ILO 협약 뿐만 아니라, 가장 대표적 국제인권규범인 「세계인권선언」, 한국이 비준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에서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서 명시하고 있다. 이는 ‘노조할 권리’가 일터에서의 다른 기본적 권리들을 실현할 수 있게 해 주는 권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직장 갑질’, 즉 일터에서의 부당한 노동환경 역시 노조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단결했을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의 노조 조직률은 10% 정도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노조할 권리를 누리는데, 법‧제도적으로 제약 받고 있다. 대표적 예가 ‘개인사업자’, ‘프리랜서’ 등으로 불리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1인 차주겸 기사, 퀵서비스기사, 방송작가 등 수많은 직종의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대가로 생활하는 ‘근로자’이지만, 이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은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현행 노동법이 ‘근로자’를 인정하는 범위가 매우 협소하기 때문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우리의 노동기준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
문재인 정부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함으로써 우리의 노동법‧제도를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을 국내‧외적으로 한 바 있다. 그러나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국내법령을 먼저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2021년 1월 노동조합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이 개정되었다. 2021년 개정된 이들 집단적 노동관계법은 여전히 ILO 기준과는 동떨어져 있다. 특히 노조를 결성‧가입할 수 있는 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고, 헌법상 노동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는 노동조합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등의 골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우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며 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거나 노조의 규약 변경을 명령하는 정부의 행위는 ILO 협약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ILO 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막상 설립신고와 관련된 규정들은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심지어 2020년 9월 대법원이 법외노조 통보에 활용되는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이 위헌적 규정으로 무효라고 판결했음에도, 노조 설립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노동행정은 바뀌지 않고 있다.
또한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노동 3권이 보장돼야 할 노동자인지 판단할 때 고용관계의 존재 여부는 판단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특수고용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노동 3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단체교섭이 실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를 강구 할 것을 권고했다. 그동안 정부는 결사의자유위원회에 낸 답변서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아닌 이익단체를 만들 것을 권고했으므로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ILO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단체교섭권을 포함해 노동기본권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어떠한 조치도 삼갈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특수고용 노조에 설립신고증 교부를 지연시키거나, 특수고용 조합원을 노조에서 내보내라고 시정명령을 하거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노조가 아닌 단체를 만들도록 하는 플랫폼종사자 법안 추진 등은 모두 ILO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의 실제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결사의자유위원회의 지속적인 권고 사항이다. 2000년대 이후 지역건설노조와 원청의 단체교섭, 사내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한 탄압 등이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제소됐고, ILO는 이 사건들을 ‘ILO 이사회의 특별한 주목을 요청하는 심각하고 위급한 진정건들’로서 다루어 왔다.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원청은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고용관계가 없다면서 교섭을 거부하고, 하청업체 역시 자신이 노동자의 고용 기간과 노동조건을 통제하지 않는다면서 교섭을 거부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노동자가 빠져 있으며,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진정 내용에 관해서 정부의 답변이 없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결론적으로 ILO는 적절한 조치를 통해 노동 3권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하도급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고,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생활·노동조건의 개선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실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원청과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사의자유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지 10년이 지나도록 원청을 상대로 노동 3권을 실현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기본협약 비준, 발효를 계기로 ILO 기본협약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정부와 법원의 법 적용·해석을 촉구한다. 그리고 국회는 ILO 협약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노조법의 ‘근로자’, ‘사용자’ 정의를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