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에서 중요한 결정은 중앙정부와 본사가 내리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사에는 권한이 없었다. 중앙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해야 일이 되고, 주요한 교섭도 본사에서 결정된 뒤 현장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지역 차원에서 준비하고 대응할 일은 거의 없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결정들은 어떨까?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을 보면, 중앙정부를 뜻하는 국가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제 4조 제3항은 “지방자치단체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할 때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적 특성과 여건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며 지자체의 책임을 분명하게 규정했다. 중앙정부가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지만, 지자체가 지역 현실에 맞게 세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 22조는 지자체별로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민·관 거버넌스 기구로 2050지방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누가 논의에 참여하고 주도할까?
특히 제 48조는 급격한 일자리 감소, 지역경제 침체,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용환경이 크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정의로운전환 특별지구로 지정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할 대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제 53조에 따라 정의로운전환지원센터도 설립되어 일자리 감소, 지역경제 침체 등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산업과 지역에 대해 그 특성을 고려해 실태조사를 하고 연구, 지원, 제도개선 등의 업무를 맡는다.
2022년 정부예산에서 산업전환과 관련된 예산이 1조원 이상 편성되었고, 직무전환이나 재취업, 지역위기 대응 등의 사업이 5천억원 이상 집행될 예정이다. 지자체에서도 충청남도청이 2021년부터 정의로운전환기금을 운영 중이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련 사업들이 서서히 편성되고 있다.
자,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이런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새로 만들어지는 기구에는 누가,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 지금도 지역노사민정협의회 같은 기구들이 있지만 실효성 있게 운영되는 지역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주제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새로운 논의틀이 필요하고 새롭게 구성되는 위원회에 참여할 방법도 필요하다.
이것은 갑작스런 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산업의 재편이 얘기되었을 때 예상했던 변화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주제는 노동조합에서, 특히 지역의 노동조합에서 주요한 논의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낯설어 보이지만 더 이상은 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재고용, 재교육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뜻한다.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 이동/산업변화로 인한 이직의 문제는 단순히 임금보정/종사상 지위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화 인프라의 문제(자녀교육, 거주시설, 여가생활, 노후준비, 사회적 관계 등) 및 개인의 가치관과도 직결된다. 산업전환이나 구조조정은 명확한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그 현안이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과 이를 민주적으로 다룰 절차는 아직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주제를 노동조합이 다뤄야 할 주요한 주제로 만들어야 하고, 개별기업을 넘어서, 노동자들이 산업구조 개편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역사회의 기후대응력이나 회복력을 강화시킬 과정을 구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기존의 불평등을 재생산하거나 다른 지역/사람으로 모순을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조금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노동조합과 지역시민단체,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갈 대안의 상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대안을 구상하기 위해 확보해야 할 권한과 재정도 구체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비하지 않으면 그나마 예상되는 권한과 재정도 중앙/지방정부의 실적으로 포장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넘어가 버릴 것이다. 2018년 군산조선소와 한국GM공장의 폐쇄 이후 군산시가 고용위기·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선정된 뒤 지원된 1조원이 넘는 예산 대부분은 인프라와 산업체질 개선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 지역형 일자리가 대안으로 얘기될 수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상황으로 보면 그 가능성을 낙관하긴 어렵다. 노동조합이 산업의 방향에 개입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고 일자리 보전 또는 재고용 기준으로 보면 산업전환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하기엔 수요가 많지도 않다.
아직 따라갈 수 있는 모범답안은 없는 상태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서 나온 <기후변화와 노동> 보고서는 대안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소개한다. 그 과정에는 교섭과 협상도 필요하지만 시위, 소송, 연구 등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정부나 기업과의 협상과 더불어 일상의 버팀목을 만들고 대안적인 일자리를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역의 공공성 자체를 강화시켜서 전환을 준비할 시간을 만들고, 적당한 보상을 받으며 대안을 고민하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공간들도 필요하다(작업장,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그래야 인구유출을 막고 지역경제의 갑작스런 쇠락을 막을 수 있고, 주체들이 스스로 전환을 준비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기업 내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지역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은 중앙/지방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사회 전체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역 차원의 변화가 일정한 구조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설사 중앙 차원의 대안이 마련되더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장은 지역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노조/시민사회단체는 지역 차원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조합과 지역시민단체, 지역주민들이 만나서 함께 논의를 해본 경험도 거의 없다. 산업전환이나 구조조정, 일자리와 관련된 일에 왜 시민단체나 주민들을 참여시키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권한과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결정이고 지금의 구조에서 정치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은 선거이다. 다가오는 6월의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