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은 1970년대 미국의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찌(Tony Mazzocchi)의 화학산업 환경오염 문제 해결과 노동자의 일자리, 지역공동체의 경제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북미 지역의 노동조합이 환경단체들과의 다양한 연대의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과 용어를 만들어내고 발전시켜왔다. 2000년대 들어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 해결에서의 노동운동의 역할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으며,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으로 전파되었다.
특히, 국제노동운동은 기후변화 국제협상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국제 기후 레짐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결국 파리협정(2015년)과 같은 국제적 선언에 이 용어와 원칙을 반영시켰다. 최근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조합의 전략에만 국한되지 않고, 차츰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연관성에 대해서 주목하면서 이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폭넓은 기후정의운동의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한국 정의로운 전환 담론장의 주체들
국내에서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와 그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보면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 연구단은 지난해 시작된 일 년여 간의 연구 프로젝트와 이 연속기고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의 ‘답 찾기’가 아닌 ‘길찾기’를 시도한다. 우리는 왜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가? 연구단은 우리가 돌파구를 찾아야 할 만큼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롭게든 공정하게든(just) 전환해야 한다(transition)고 말하지만, 서로 있는 곳에 따라 정의로운 전환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 글은 정의로운 전환을 키워드로 누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혹은 이야기하지 않는지 그 지형을 그려보고 우리가 토론을 시작해야 할 지점을 짚어내고자 한다.
정의로운 전환 관련 한국 사회의 다양한 담론 행위자들(정부, 국회와 정당, 노동조합, 기후운동단체 등)은 기후위기의 심각성,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한 인식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기후위기 자체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대신, 기후위기를 한국이 적응해야 할 새로운 국제질서와 경제패러다임으로만 인지한다. 파리협정과 UN 기후정상회의 이후 ‘2050년 탄소중립’이 글로벌 신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시장에 한국이 발 빠르게 대처하여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식이다. 지난 칼럼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전환에 관한 논의가 기업과 산업의 피해 보전에 집중하면서 노동/시민사회가 과소 대표되는 점, 확신할 수 없는 기술발전에 의존하는 점, 고용보장보다 ‘노동전환’에 강조점을 두면서 구조조정을 전제로 사후적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국회에서는 2020년 9월,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문>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것, 전환에서 발생하는 책임과 이익을 전체 사회가 함께 나눌 것,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중소상공인, 지역사회에 전가되지 않도록 할 것 등이 포함되었다. 정의로운 전환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몇몇 원칙이 제안된 셈이다.
한편, 개별 정당의 의원들은 기후위기 대응법안을 제시하면서 ‘녹색성장’(임이자 의원 안), ‘일자리 창출을 통한 국민경제 발전’(이소영 의원 안)을 천명하였는데,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또한 노동자, 지역주민, 취약계층, 중소상인 등 다양한 잠재적 피해자를 언급한 제안(강은미 의원 안)이 정부의 대안 입법안에서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이소영 의원 안, 정부 대안 법안)로 취사선택 되면서 정의로운 전환의 범위가 상당 부분 축소되었다.
이와 달리 노동조합과 기후운동단체들은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직접적 원인을 넘어 자본과 이윤 중심의 경제체제라는 근본적인 원인에서 기후위기가 발생하였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해법 또한 빠른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많은 운동조직이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가중되는 것을 예방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현존하는 사회적 불평등까지도 함께 해소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정의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노동조합은 고용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 노사 공동결정과 이를 뒷받침할 노조의 권능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고용유지가 불가피할 경우 이직과 재취업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방침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은 과거의 구조조정 경험으로 인해 그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기업은 정의로운 전환에 있어 핵심적인 주체임에도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대규모 실업 위험을 명분으로 속도 조절과 규제완화를 요청하고 있다.
결국, 정의로운 전환 담론장의 다양한 행위자 사이에서 온실가스를 왜 감축해야 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정부 정책과 국회 제정 법률에 대한 노동조합과 기후운동단체들의 냉소적 판단과 비판을 야기한다.
정의로운 전환의 스펙트럼과 확장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접근은 현실에서 당연하다. 정의로운 전환 연구 센터(Just Transition Research Collaborative)의 2018년 보고서는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입장을 네 가지 접근(현상유지론, 개혁관리론, 구조개혁론, 변혁적 접근)으로 구분한다. 현상유지 접근에 가까울수록 다루는 범주와 변화의 폭이 좁고, 반대로 변혁적 접근에 가까울수록 넓다. 같은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도 기존의 정치 경제를 보존하는 보수적 접근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사회 논리를 구성하는 급진적 접근까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류를 한국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데, 기업/산업계를 제외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산업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동감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고용의 변화 등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상이하다. 정부와 국회(그리고 대다수 정당)들의 담론은 현상유지와 개혁관리 사이에, 노동조합과 기후운동단체들의 담론은 각자의 입장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개혁관리 접근에서부터 구조개혁론과 변혁적 전환론 사이에 퍼져있다. 현실의 정의로운 전환 담론장에서는 전자의 현실가능성이, 후자의 정당성이 강조되고, 그 과정에서 접근들간의 비판과 경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 변혁적 접근으로 가는 길은 기후위기와 사회 불평등의 근원적이고 공통적인 원인으로서 자본축적, 성장주의 등을 보다 적확하게 짚어낼 수 있게 해주고 현재 소거되어 있는 지역, 젠더 세대 등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드러내주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를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고 사회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복잡하고 지난할 것이다. 반대로 기존의 내부 노동시장의 고용안정성만 강조하면서 대응의 범위를 축소하는 현상유지적 접근은 현재의 불평등 구조에 침묵하거나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산업구조 개편과 동시에 노동시장의 불평등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까지 구체적인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의로운 전환은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교체한다는 규범적 지향과 함께 실제 변화를 추동할 수단을 어떻게 확보하여 활용하는지가 핵심이 될 것이다. 전환의 과정에서 누가 영향받고 고통받는지, 이들의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하고 회복할 수 있을지, 산업전환의 부담과 이익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지, 어떻게 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토론하여 결정할 수 있을지 많은 토론과 상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