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성 정의로운전환연구단
기후위기는 외환·금융위기 시기만큼 노동시장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기후위기가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기후위기는 갑작스러운 충격이 아니라 준비할 수 있는 충격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때처럼 정부와 기업 입장 위주의 정책이 일방적으로 시행되게 해서는 안 되며,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만이 많은 피해를 감수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모두를 위한 공정한 손익 분배 과정이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기후위기 대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파악하기 위해 정의로운전환연구단은 2021년 8월 31일부터 9월 7일까지 탄소중립 현안 지역 노동자를 포함하여 비경제활동인구 2,7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의 주요 결과와 함의를 아래에 정리한다(자세한 실태조사 결과와 논의는 정의로운전환연구단의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위적 기후위기 인식, 그러나 구체적인 일자리 영향 정보는 부족
기후위기에 대한 응답자들에 대한 인식은 당위적 수준으로 보인다. 심각성 인식은 높지만 기후위기가 개인의 일자리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은 기후위기가 현재 매우 심각하다는 데에 90.3%가 동의(매우 동의+동의)했고, 미래 세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 91.4%가 동의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예상은 집단 특성별로 차이를 보였다.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의 피해를 예상하는 비율이 높고(비정규직 69.8%, 하청노동자 67.4%, 고용주 60.3%, 1인 자영업자 60.2%, 독립법인노동자 51.1%, 여성 50.3%, 원청노동자 50.3%, 남성 47.3%, 정규직 44.5% 순), 산업별로는 1차 산업 노동자의 피해가 높을 것이라 예상했다(농림어업 83.2%, 전기/가스/수도사업 44.4%, 제조업 27.5% 순).
문제는 기후위기가 자신의 일자리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 비율이 실제 피해 예상 비율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기후위기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경험하고 있거나 예상되는 노동자는 85.6%에 달할 정도로 높게 나타났으나, 기후변화로 인한 개인의 피해 인식은 ‘기후위기가 실업문제 등 일에 영향을 준다’가 62.8%, ‘본인 현재 일자리가 기후위기 산업과 연관성이 있다’가 52.4%로 낮은 편이다.
실제 예상되는 피해와 개인이 생각하는 피해 정도가 차이가 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노동시장과 우리 삶에 영향이 있는지에 관한 정보 전달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사결과 기후위기 관련 교육훈련을 경험한 비율이 매우 낮았고(기후위기 및 탄소중립 교육 이수 비율 22.5%), 대부분의 기후위기 및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정보를 자본주의적 성장을 우선시하는 기업을 통해 전달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기업에서 기후위기 교육 경험 64.4%) 정의로운 전환 관련 정보를 취득하는 경로도 언론 66.0%, 기업 14.5% 순이었으며,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는 10.8%에 불과했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정책 인지율도 낮은 편이었다. 2050년 탄소중립선언과 한국판 그린 뉴딜에 대한 인지는 59.4%,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 정책 인지는 41.4%, 탄소중립위원회의 시나리오 인지는 39.4%에 그쳤다.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보장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통합과 사회보장도 함께 강화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조사결과 응답자 대부분이 일자리 창출 및 보장에 대한 정책 필요에 높은 동의를 보였지만, 사회통합 등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정책 필요에 대한 동의는 상대적으로 조금 낮았다. 정책 필요도를 100점 만점 기준으로 볼 때,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74.1점, 전환 관련 재교육 재취업 등 취·창업 지원 73.7점, 재생·대안 사업장의 기술 및 녹색 일자리 프로그램 운영 73.5점, 성평등한 노동조건 등 사회 가치 포괄적 제고 65.8점, 전환 관련 노동자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 보장 67.7점, 전환 관련 지역 사회 주민 등 논의 참여 68.6점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결과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다양한 접근에서 현상유지 접근이나 개혁관리 접근에 대한 친화성이 더 높은 반면, 구조개혁 혹은 변혁적 접근에 대한 호소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사회적 대화에 나설 때 고용보호 전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조사결과 2명 중에 1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개편 시 구조조정 또는 일자리의 질 저하도 감수하겠다고 응답함으로써, 정의로운 전환이 추구하는 지향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후위기 대응 주체로서 노동조합에 대한 낮은 평가 반성 필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주체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중요도는 높은 반면, 노동조합은 가장 낮게 나타났다. 기후위기 대응 주체의 중요도는 중앙정부 및 공공기관(84점), 산업/업종 사용자 단체(81.1점), 지방정부 및 공공기관(80.9점), 민간기업(79.5점), 지역사회(77.4점), 정당(73.8점), 시민단체(73점), 노동조합(66.1점) 순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 주체 역할에 대한 만족도에서도 노동조합은 낮게 평가되었는데(35.7점) 이는 민간기업(44.9점)보다도 낮은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노동조합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낮은 평가에 대해서 주목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힘을 갖지 못한 당위성은 지독한 현실을 만나면 무너진다. 지난 외환위기 및 금융위기 시기에 정부와 기업 주도의 성장 우선 정책을 막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다분히 당위적인 반면에 노동자들의 피해 인지는 자신들이 실제로 경험할 피해보다 낮았으며,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동조합의 교육도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한 노동자 및 시민들의 인식은 정의로운 전환의 연구자와 사회운동이 추구하는 것과 차이가 존재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전략 수립과 행동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