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된 지 75년째 되는 해이다. 그리고 분단된 조국의 아들과 딸들로 태어난 우리는 한 세기의 4분의 3이 지나도록 국제법상 전쟁 중(휴전)인 나라에 살고 있으며 지금도 서로가 서로를 ‘보수 vs 진보’, ‘통일 vs 반통일’, ‘친일파 vs 빨갱이’ 등 갖은 이유를 들어 패를 나눠 싸우고 있다.
2020년 8월 분단조국의 남쪽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전히 역사인식과 이념에 있어서 혼란스럽고 미중-북미 긴장과 한반도를 둘러싼 녹녹치 않은 국제정세 속에 항상 불안해하고 매우 유쾌하지 않은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막강한 전파력으로 세상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COVID-19와 지구온난화로 발생한 사상 초유의 긴 장마 등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통일선봉대 140여 명은 해방 전후의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현장 속으로 3박 4일 동안의 여정을 출발하였다.
어디로 가야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통선대 3박 4일은 대학시절 농활을 떠올리는 나름 힘든 단체 활동이었지만 이틀째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타임리프 기회 3번을 부여하고 통선활동 중 정말 과거로 돌아가 능력껏 바꾸고 싶은 것 3가지를 바꾼다는 SF적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너무도 우울한 상상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어디로 ‘리프’ 해야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일차에 방문했던 산내 골령골은 6.25 직후 대한민국 군경이 이승만의 명령으로 3차례에 걸쳐 보도연맹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7천여 명을 집단학살한 참혹한 장소였다. 여기로 돌아가면 내가 이승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전쟁 자체를 막아야 하나?
이어서 방문한 노근리는 1950년 7월 미군이 충북 노근리 경부선 철도 아래와 터널(쌍굴다리) 속에 피신했던 마을 주민들을 3일 동안 무차별 사격하여 민간인 300여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여기로 가면 미군의 학살을 막을 수 있었을까?
3일차 미선이 효순이 미군 장갑차 압사 현장에서도, 양주시청 앞에서의 노동현장 연대 투쟁에서도 과거로 돌아가서 현실을 바꾼다는 쓸데없는 상상이 불러온 무기력증에 머리가 아플 뿐이었고, ‘남북합의 이행! 한미워킹그룹 해체!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외치면서도 과연 나의 행동이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바꾸고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의문까지 들기 시작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의 연결고리
그러나 4일차 ‘인식의 오류는 분석의 실패를 낳고 정책실패로 이어진다’는 김진향 교수의 강의는 정말 전율 그 자체였고 나는 통렬한 반성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나는 노동운동가이다. 노동운동가가 뜬금없이 통일운동 행사에 참가한다고 하니 아내가 생뚱맞다는 듯이 보냈던 눈빛이 생각난다. 나 또한 상급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이니 별생각 없이 일단 참여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노동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되는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의 쟁취였다. 나의 소시민적 가치관에 따르면 노동운동과 통일운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주제였던 셈이다. 바로 인식의 오류였던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준수는 물론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엉망으로 만드는 현실이 어쩌면 어떠한 논리도, 정당성도 집어삼키는 분단조국이라는 모순덩어리가 블랙홀과 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일본의 패망으로 일제 강점기를 끝냈지만 여전히 점령군의 지위로 한반도를 지배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민족상잔의 참혹한 트라우마를 겪은 세대가 가지는 극한의 이념편향까지 더해져 너무나도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도, 헌법이 부여한 노동3권도 제대로 실현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평화를 말하며 평화를 원치 않는 미국, 자본주의의 본진 미국, 그들의 수많은 악행도 결국엔 정당한 것처럼 미화해 버리는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모순덩어리 패권주의에 세뇌되어버린 우리들의 나약함도 그 원인중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마워요 동지들! 내년에 다시 봐요~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쟁취하기 위하여 단결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민족이 이 땅에서 진정한 주인으로 외세에 짓밟히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미국의 선심도 중국의 양해도 일본의 몰락도 아닌 우리민족끼리 대동단결하여 통일을 쟁취하는 것이 유일한 길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통일선봉대로 활동한 3박 4일은 우리 삶의 터전인 한반도가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땅,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나가는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이 그 본질과 방식에 있어서 하나임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해방 전후 75년의 역사에 너무나도 많은 모순덩어리들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며 놀라거나 분해하지도 말자. 우리의 불행이 곧 이득이 되는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끈질기게 싸워 마침내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 역사적 사건 몇 개를 고친다는 유치한 상상보다는 통일의 선봉에서 외세와 그 앞잡이들이 만들어낸 모순들을 이겨내고 우리민족 모두가 자주적으로 행복을 영위하는 그날까지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게 된다.
고마워요 동지들! 한국노총 제13기 통일선봉대 ~ 내년에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