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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통일의 길을 돌아보다

제9회 한국노총 평화학교 열려

등록일 2020년06월23일 17시5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70여년 전 제주도에서는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일명 제주4.3 사건이다. 그 당시 제주도민들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분단반대, 전쟁반대였다. 현재도 그 바람은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대북전단지 살포로 시작 된 남북의 경색관계는 지난 16일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발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이에 한국노총은 6월 23일(화)부터 25일(목)까지 2박 3일 동안 제주 4.3 유적지에서 제9회 평화학교를 진행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돌아본다.

 


△ 인사말 중인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 3만명(당시 제주도민의 10분의 1)정도가 희생당한 사건이다.

 

2000년에 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으며, 2003년에는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2014년 정부는 4월 3일을 국가지정추념일로 결정했다. 하지만, 2017년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은 아직 본격적인 심의도 거치지 못한 상황으로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여전히 진척이 더디다. ‘4.3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현재진행형이다.

 

제8회 한국노총 평화학교 참가자들은 ▲월령리 선인장마을 진아영 삶터 ▲수월봉 엉알해안절벽 ▲동광리 무등이왓 ▲알뜨르비행장-섯알오름학살터 ▲4.3 평화공원 등을 탐방하고, 4.3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첫째 날, 교육에서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통일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 등을 준수하자”며 “아름다운 제주에 4.3이라는 아픔은 온 섬에 새겨져 있다”며 밝혔다.

 

이어 “4.3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4.3특별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면서 “한국노총은 21대 국회에서 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9회 한국노총 평화학교, 4·3 유적지 방문지역 소개

 

4.3 평화공원

제주 4.3평화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인권기념공원이다.

제주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은 2000년 4.3특별법 공포로 시작되었으며, 2008년 3월 28일 개관했다.

평화공원의 주요시설로는 위령제단, 위패봉안실, 추모광장, 행방불명자비원, 제주 4.3평화기념관 등이 있다.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 생가

故진아영 할머니는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판포리에 살았던 할머니는 1949년 군경이 난사하는 총에 맞아 턱을 잃었다. 할머니는 월령리로 이주해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얼굴을 무명천으로 감싼, 반송장 같은 모습으로 남은 인생을 살았다.

집은 할머니가 사시던 그대로다. 할머니가 얼굴을 감싸던 무명천들과 이를 만들고 고쳐 쓰던 실뭉치와 여기저기 아픈 곳에 붙이고 바르던 파스가 여러 개 보인다. 정부 차원의 사과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후인 2006년 이루어졌다.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일본군이 제주에 구축한 최대의 군사시설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알뜨르비행장이다. 지금도 전투기 격납고 19개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됐다.

1945년 전쟁 막바지 패전의 그늘이 짙어진 일본은 비행장을 요새화하기 위해 섯알오름 동굴진지와 고사포진지를 구축했다. 알뜨르비행장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6개 마을이 사라졌다. 강제 동원된 주민들은 하루 종일 삽과 곡괭이를 들고 고된 노동을 했다. 마을과 농경지는 정상적인 보상 없이 일본군이 몰수했다.

 

섯알오름 학살터

6.25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났다. 1950년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집단학살이 이루어졌다. 섯알오름에서는 총 예비검속 희생자 3천여 명 중 250여명이 희생되었다. 그 후 6년 동안 유가족들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그 동안 현장은 엄격히 출입금지 되었고, 희생자들은 백골이 되었다.

유족들은 몇 년이 지나서야 유골들을 수습할 수 있었고, 1차로 수습된 유골은 만벵디 묘역으로, 2차로 수습된 이들의 유골은 백조일손지지로 모셔졌다. 제주지역 마을마다 같은 날 제사를 올리는 집들이 많은 것도 같은 날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수월봉 엉알해안절벽

수월봉에는 일제 강제징용의 현장이 남아 있다. 이른바 ‘결7호 작전’이라 하여 일제가 일본 본토수호를 위한 최후의 교두보로 제주도를 택했기 때문이다. 결1호∼결6호 작전 지역이 일본 본토인데 반해 결7호 작전은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제가 본토사수를 위한 작전으로, 제주도를 대상 지역으로 하고 있다.

제주도 해안을 돌아가면서 동굴진지를 구축, 상륙하는 미군 함정을 공격하기 위한 일본 해군의 자살 특공기지였다. 대표적인 곳이 수월봉해안과 송악산, 성산일출봉, 서우봉, 삼매봉 해안 등이다.

진지 구축과정에는 조선인 강제징집 군인들과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피땀과 한이 서려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육지에서 건너왔으나 나중에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제주도민들까지 투입했다. 고령의 노인까지 무차별 동원했다는 증언들도 많다.

 

동광리 무등이왓

1948년 11월, 미군정의 소개령과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령 명령에 따라 중산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살하기 시작했다. 무등이왓은 토벌대가 가장 먼저 주민들을 사살한 곳이다. 140여명이 학살 당했고, 평화롭던 마을이 아예 없어졌다. 제주 4.3 사건으로 없어진 마을은 109곳에 이른다.

 

#한국노총 #평화학교 #제주 #4.3

최정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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