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 청와대 앞에 집회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서있다. 제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파일럿들이다. 이들은 요구한다. 코로나19의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항공업계 지원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코로나19로 항공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여객수요가 거의 전멸하자,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면서 버티고 있다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버틸 수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국내 대표적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은 내부적으로 현 1,600여 명의 직원을 900명대로 줄일 계획이다. 희망퇴직 신청을 우선 받고, 목표에 이르지 못할 경우 정리해고 수순을 밟을 것이다.
더 심각한 곳은 1, 2차 지상조업사들이다. 대부분 항공사 하청업체인 1, 2차 지상조업사들은 항공산업으로 분류되지 않아 특별고용유지업종으로 지정되지도 못했다. 때문에 이미 지상조업사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 2천여 명이 실업수당이라도 받겠다며 권고사직을 택했다. 무급휴직에 들어간 인원도 수백 명이다.
항공산업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17일 통계청이 3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취업자 수가 지난해 3월보다 19만 5천 명 감소했다. 도·소매업에서 16만 8천 명, 숙박·음식업에서 10만 9천 명, 교육서비스업에서 10만 명이 줄었다. 비정규직·일용직 등 취약계층 고통이 특히 컸다. 종사상 지위별로 살펴보니 상용직노동자는 45만 9천 명 증가했으나, 임시직에서 42만 명, 일용직 17만 3천 명 각각 감소했다. 코로나19 초기 고용위기가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시휴직자 역시 160만 7천 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26만 명이나 폭증했다. 일시휴직자는 직장이 있지만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통계상으로는 취업자로 분류된다. 폭증한 일시휴직자의 업종도 20만 5천 명은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에서 발생했고, 교육서비스업에서도 20만 명으로, 이 두 업종에서만 일시휴직자의 4분의 1 가량 발생했다.
한국은 코로나19 해고대란도 방역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영국의 가디언, 독일 슈피겔,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 등 해외 언론들도 한국의 방역성과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은 해고 대란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그리 탄탄하지 못하다. 일자리를 잃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안전망은 실업급여다. 그 실업급여를 받기위해 가입해야 하는 고용보험 가입률이 전체취업자 수의 49.4%에 그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50%나 된다는 얘기다. 특히 비정규직의 고용보험가입률은 44.9%로 정규직 가입률 87.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고용보험 말고 다른 사회안전망은 떠오르지조차 않는다는데 있다.
몇몇 지자체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일시적이고 금액도 작다. 20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요청하긴 했다. 20대 국회 임기가 한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통합당이 협조할 지 아직 확실치 않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대책은 더욱 부족하다. 기업의 해고를 막기 위한 제도로 ‘고용유지지원금제도’가 있다.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이 유급휴업, 휴직 등의 방법으로 고용을 유지할 때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역시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고용보험 의무가입대상이 아니다. ‘그림의 떡’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우리의 고용유지지원금과 비슷한 ‘노동자 일시휴직기금제도’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 긴급조치이후 기업 규모 및 직종에 따라 적용되던 이 제도를 5명 미만 기업, 농업 및 단기 계절 노동자, 관광과 공연문화 종사자까지 적용 범위를 넓혀 최대 9주까지 확대했다. 한국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과 특수고용직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체 종사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다.
이탈리아가 취한 또 하나의 대표적 일자리 유지 정책은 해고의 금지다. 주문량 급감과 부서폐쇄 등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60일 간 해고를 금지하고, 격리된 노동자는 병가로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노총도 올 초 ‘해고제한법’을 제안한 바 있다. 적극적으로 시행을 고려해 봄직하다.
한국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인상과 노동시간단축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일자리함께하기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사업장 내 교대제를 개편하거나, 실노동시간을 단축 등을 통해 신규인력을 채용한 경우 사업주에게 임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제도를 확대 해 꼭 신규인력 채용이 아니더라도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이 기존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경우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50세 이상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단축했을 때 지원되는 근로시간 단축지원제도 역시 연령제한을 낮추거나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고용 지키는 것이 국난극복과 경기 회복의 지름길
한편 한국노총은 지난달 13일 코로나19에 따른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대비하여 관련 신고와 접수를 받고 법률상담 및 지원을 하는 ‘코로나19 고용위기 신고센터’를 열었다.
▲ 한국노총 ‘코로나19 고용위기 지원센터’ 현판식
이날 김동명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특히 중소영세사업장, 소상공인, 사내하청, 파견, 비정규직, 특고 등 취약계층 노동자에게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상황을 빌미로 연차 사용-무급휴직 강요, 권고사직, 정리해고 등 불법적 구조조정이 속출하고 있는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기 식’으로 선제적 구조조정과 부당해고를 일삼는 악덕 기업을 철저히 감시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과거 몇 차례의 경제위기 경험을 통해서도 고용을 지키는 것이 국난극복과 경기 회복의 지름길이란 교훈을 얻은 바 있다”며, “한국노총은 고용위기에 봉착한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부당해고를 감시하는 활동을 집중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