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침투해 폭발적으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촌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전인류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이 바이러스가 인종과 계층, 빈부에 관계없이 치명타를 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감염에서부터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위기의 불평등이 반영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만 위기에 특별히 치명적인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집단이 바로 노동자이며 그 중에서도 여성, 청년,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의 취약계층이다.
ILO, “2억여 노동자 실직” 경고
이러한 상황은 ILO(국제노동기구)의 고용전망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 4월 7일, ILO는 올해 2/4분기 중 전세계에서 1억9,500만 명이 실직할 것이라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이는 3,500만 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초기 예상 이후 불과 3주 만에 대폭 상향조정된 수치이다. 이러한 노동시장 충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훨씬 넘어서는 규모이다.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ILO는 국제노동기준에 기초해 네 가지 기본축(pillars)의 정책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첫째, 경기부양 및 고용촉진으로 ▲적극적인 재정정책 ▲통화완화정책 ▲보건업 등 특정업종에 대한 대부 및 금융지원이 해당된다. 둘째, 기업, 일자리, 소득, 지원으로 ▲모든 인간에 대한 사회보호 확대 ▲고용유지 조치 이행 ▲기업에 대한 금융·세금 및 기타 구제책 제공이다. 셋째, 사업장 노동자 보호로 ▲산업안전보건 조치 강화 ▲일하는 방식 조정 ▲차별과 배제 금지 ▲보편적 의료제도 ▲유급휴가 이용 확대가 이에 속한다. 넷째, 사회적 대화 강화로, ILO는 ▲노사단체의 역량과 적응능력 강화 ▲정부 역량 강화 ▲사회적 대화, 단체교섭, 노동관련 제도 및 과정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위기상황에도 국제노동기준은 유효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를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인류가 맞이한 최악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결국 ILO도 5월에 예정돼 있던 제109차 총회를 연기했다. 작년 창립 1백주년을 기념하면서 ‘일의 미래’ 이니셔티브를 제안하고 또 다른 백년을 준비하는 계기로 삼겠다던 ILO에게 이번 상황은 또 하나의 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ILO는 일의 세계를 규율하고 있는 기본원칙인 국제노동기준은 위기상황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위기가 해고와 노동기본권 축소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위기상황과 관련된 가장 최근의 기준으로는 ‘평화와 복구를 위한 고용과 양질의 노동’에 대한 제205호 권고(2017)가 있다. 이 권고는 위기대응에 있어 사회적 대화의 역할과 노사단체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제122호 ‘고용정책협약’(1964)은 생계와 소득을 안정시키고 기업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재정·금융부양조치 등 경제와 고용안정을 강조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코로나사태의 경제적 영향 등으로 고용이 정지, 축소, 종료된 노동자는 제168호 ‘고용보호 및 실업에 대한 고용보호’ 협약(1988)에 따라 소득상실에 대한 실업급여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고용종료와 관련해서는 “종료를 피하거나 최소화하고 노동자대표에게 협의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한 제158호 ‘고용종료’ 협약(1982)을 활용할 수 있다. 그밖에도 감염병에 수반되는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혐오주의에 대처하기 위한 제111호 ‘고용과 직업상의 차별’ 협약(1958), 직업상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방적 보호조치를 취해야 할 사용자의 의무를 규정한 제155호 ‘산업안전보건’ 협약(1981)도 노동조합이 감염병 위기에 대처하는 데 유용한 협약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국제노동기구(ILO) 캠페인 동영상
ITUC, 위기대응의 지역간 격차 우려
한편 ITUC(국제노총)는 정부 대응의 지역 간 격차를 주목하고 있다. 4월 7일 발표된 ITUC의 ‘글로벌 Covid-19 서베이’는 “72%에 달하는 정부가 임금보호 및 소득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특히 아태지역은 64%가 필수비용을 충당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답변했으며, 아프리카 정부의 57%, 아메리카 정부의 35%가 임금보호와 소득지원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ITUC는 올해 노동절 성명을 발표하고, “공중보건과 돌봄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모든 노동자 권리의 철저한 존중이 위기극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모든 인간에 대한 양질의 노동, 안전한 노동조건, 비정규직 철폐 및 비공식노동의 공식화를 수반한 완전고용(일자리) ▲전세계적 최저생활임금 시행, 모든 노동자에 대한 단체교섭권 인정, 성별 임금격차 해소(소득) ▲모든 인간에 대한 사회보호 기금지원을 위한 글로벌 협력(사회보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침과 체크리스트로 노동자보호 앞장서는 외국노총
해고와 임금손실 등 코로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국의 노동조합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산하조직이나 사용자에 대한 지침 시달 등 자체적 대응과 함께 정부정책에 대한 적극적 참여와 개입을 통한 요구 관철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먼저 자체적인 대응으로 ACTU(호주노총)는 사용자에 대한 지침을 통해 긴급 유급휴가 및 노동자 재배치 계획 등을 담은 사업장 플랜의 수립을 요구하였으며, 감염에 대한 사용자의 정보제공 의무를 명확히 하고 정신건강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임금과 노동조건, 사업장 청결 및 위생, 위험 통제 관리 및 사업장 지원조치, 개인보호장비와 응급처치 여부, 재택근무 등 대안적 근무방식 실시 여부, 노동자와의 협의 여부 등에 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현장에 배포하기도 했다.
TUC(영국노총)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노동조합에 중요한 이슈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사례를 통해 감염노동자의 권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 “Covid-19 노동조합 지침”을 작성했다. AFL-CIO(미국노총)도 코로나 전용 웹페이지를 통해 조합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CC.OO.(스페인노총)는 노동자들이 긴급보건과 관련된 노동문제에 대한 정보와 조언을 받도록 무료 핫라인을 설치했다.
노동조합 정책개입이 고용과 임금보호에 관건
이러한 자체적 대응과 함께 많은 국가에서 노동조합은 사용자 및 중앙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해고방지와 임금보전 조치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덴마크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삼자합의를 통해 해고 위기에 처할 경우, 정부가 전일제 노동자 월 급여의 75%를 부담하고(상한액 약 3,100유로) 나머지 25%는 기업이 부담하도록 했다. 단기·임시노동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월급여의 90%를 부담한다(상한액 약 3,500유로). 이 합의는 최소 30% 또는 50명 이상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될 상황에 처한 민간기업에 적용되며, 3월 9일부터 6월 9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이 삼자합의의 적용을 받지 않는 자영업자(매출 30% 이상의 손실을 보는 경우)에 대해서는 정부가 월 3,100유로를 상한으로 75%까지 보상을 제공한다.
벨기에에서는 일시적 실업부조를 통해 평균 보수의 65%를 지급하던 실업부조를 올해 6월 30일까지 70%로 확대 지급한다. 자영노동자에게는 사회보호 분담금 축소나 탕감조치가 실시된다. 이는 벨기에 주요 노총 CSC와 FGTB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특히 이들 노총은 고용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지원을 확대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스웨덴정부도 LO(스웨덴노총)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해고 및 파산방지를 위한 예산 할당을 제안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기해고 시 노동자에게 급여의 90%를 지급하고 이후 두 달간 병가 급여를 지급한다. 기업은 사회보장분담금과 일부 세금의 납부를 연기할 수 있다. 업종 차원에서 스웨덴의 호텔·식당노조는 일용직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특별합의문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소득감소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조치로, 20% 업무단축 시 급여 4% 인하, 40% 단축 시 급여 6% 인하, 60% 단축 시 급여 7.5% 인하 방침이 합의되었다.
아일랜드정부는 ICTU(아일랜드노총)의 총리에 대한 건의에 따라 임시 소득지원제도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리해고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 주당 410유로까지(세금면제) 임금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이 지원된다. 자영업을 포함한 실직노동자에게는 주당 350유로의 실업수당이 지급되는데 이는 평상시 수당인 203유로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노사정 합의에 따라 노동시간이 단축되더라도 최저소득자는 통상임금의 90%, 중간소득자는 85%, 고소득자는 80%를 지급받게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노동자 일자리와 소득을 보존하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따라 정부가 3개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자신의 소득 전액을 보전 받는 한편 기업은 매출액 손실규모에 따라 정부로부터 최대 90%의 임금을 보조받게 된다. 이 제도는 임시직과 계약직에게도 적용된다.
영국정부는 노동조합과의 협상에 따라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에게 2,500파운드를 상한으로 임금의 80%를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또한 TUC(영국노총)는 “기업에 대한 정부지원패키지와 대출은 기업의 일자리보호 조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자리와 공정임금플랜’(Jobs and Fair Wages Plans)의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추가적인 12일의 유급휴가 부여, 경제적 이유로 한 집단적·개인적 해고 60일 동안 금지 등 여러 가지 노동조합의 요구가 정부의 ‘Care Italy’ 법령에 반영되었다. 루마니아의 노동조합은 정부 실무그룹에 참여하여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없거나 일시적으로 해고될 경우 계속해서 통상임금의 2/3를 지급받을 것에 합의했다.
재난의 불평등은 더 큰 위기 초래
그러나 노동조합의 적극적 개입방침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빌미로 한 노동자 권리약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EU의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크로아티아 정부는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삭감하고, 고지 없이 15일의 연차를 강요하며, 특수작업환경 노동자에 대한 정기 건강검진 의무를 폐지하는 등 일방적인 노동법 개악 시도로 비난을 받고 있다. 사용자들의 공세는 더욱 심각하다. 굳이 해외사례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한국의 사용자단체는 위기를 틈타 발 빠르게 해고요건 완화, 법인세·상속세 인하를 골자로 한 대정부건의를 한 바 있다. 사회의 취약계층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불평등 바이러스에 대한 전세계 노동단체들의 정의로운 대응을 무력화시키는 이러한 시도들은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재난의 불평등은 더 큰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