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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 이후, 발상의 전환만이 해답이다

차현진(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등록일 2020년05월07일 15시4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긴 터널 끝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 국내 확진환자 수가 크게 줄면서 조만간 생활방역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그 고통의 시간에 우리나라는 많이 성장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검사는 세계의 표준이 되고, 차분한 선거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다른 나라들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내적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빌 게이츠의 말처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인생이 짧다는 것과 진짜 소중한 것은 쇼핑과 사치품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나 민중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나라들도 있다. 인도는 단 4시간의 여유만 주고 아무 대책도 없이 13억 국민을 21일 간 집안에 감금시켰다. 거리로 나오면 경찰의 몽둥이가 기다렸고, 집에 있자니 죽음이 기다렸다. 극빈층 집에는 물도, 먹을 것도, 화장실도 없다. 비슷한 일은 터키, 케냐, 나이지리아에서도 진행되었다. 공중보건이 구실이 되어서 인권은 유린되고, 국가 폭력이 정당화되었다. 체제 비판자, 무슬림, 소수 민족이 타깃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코로나19 위기는 불평등의 온상이기도 하다. 많은 나라에서 해고와 강제 무급휴가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학교, 유치원, 콜센터, 관광업체 등 여성인력이 많은 직장과 산업의 고용감소가 훨씬 빠르다. 가정에서는 재택근무와 휴교 때문에 주부들의 가사노동이 몇 배로 늘어났다. 세계적으로 가정폭력이 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처럼 코로나19의 고통은 평등하지 않다. 여성과 취약계층에게 가혹하다.
 

세계 경제도 암울하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170개 이상의 국가에서 금년도 1인당 소득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진국 경제성장률은 –6.1%, 신흥·개도국은 –0.9%로 전망했다. 한국의 성장률은 –1.2%다. 이런 수치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IMF는 이 고비가 금년 안에 잘 마무리될 경우 내년 세계경제가 다시 5.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훨씬 비관적이다.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확산된 지금은 야구 경기에서 겨우 1회 말이 끝난 것과 같다고 한다. 1회 말에 경기결과를 예측할 수 없듯이, 이 어려움이 얼마나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년 세계경제가 V자 반등이냐, L자 침체냐, I자 수직하강이냐를 점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이전(BC)과 이후(AC)
종합해 보건대, 각국이 국가비상사태를 종료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더라도 후유증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우선 역(逆)세계화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외국인 기피와 자국우선주의는 앞으로 해외여행과 교류를 억제하게 될 것이다. 해외공장들은 자국으로 회귀하고, 국경선은 두꺼워질 것이다. 인적, 물적 교류가 줄어들면 성장이 둔화되고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 꺼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부동산 경기와 맞물려 그동안 빠르게 늘어났던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도 안심할 수 없다. 


국내로 돌아온 공장이 일자리를 더 만들 것 같지도 않다. AI를 이용한 스마트공장은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독일과 일본 등에게 기술의존도만 높일 수 있다. 모든 것이 우울하다. 그래서 미국의 언론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역사는 코로나바이러스 이전(BC)과 이후(AC)로 나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망연자실할 수만은 없다. 길을 뚫고 헤쳐 나가야 한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면, 없던 길도 보인다. 500년 전 콜럼부스가 식탁 위에서 달걀로써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미 각국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19세기 말 마르크스가 보았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가 현재 실험 중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많은 나라들이 재난구호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조만간 실행방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이런 실험과정에서 과거의 생각, 즉 ‘적정 국가채무비율’이라는 유리천장은 깨지고 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분업주의(은행·증권업 분리)를 따르는 미국과 금산분리(은행·산업 분리) 원칙이 강조되는 한국에서도 중앙은행들이 고용안정과 민생회복을 위해 영리기업에 대출한다. 정부는 그 대출의 원리금 지급을 보증한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금융규제의 철학과 기준도 바뀌고 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그동안 금융기관에게 족쇄를 채워왔다. 그러나 지금은 손실충당자본(TLAC), 유동성커버리지(LCR) 비율 등을 낮추면서 대출을 늘리라고 독촉한다. 보건당국이 담배산업 육성을 위해 흡연을 장려하는 꼴이다. 과거의 시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IMF가 특별인출권(SDR) 배분을 늘리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미 IMF 회원국 절반이 구제금융을 요청해서 IMF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G20 국가들이 연말까지 채무상환을 유예하고 1조 달러의 자금지원을 약속했지만 충분치 않다. 결국 화폐발행에 해당하는 특별인출권(SDR) 배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코로나19의 사망자가 가장 많으므로 위기극복을 위한 SDR 배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모든 정책노력 앞에서 경제학 교과서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운명이다. 그래서 이런 변화를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실험과 시도를 하는 바람에 온 인류가 모르모트가 된 판국”이라고 한탄한다.

 


John William Waterhouse, Pandora, 1896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다
지금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면, 우리는 분명 다른 세계에 있을 것이다. 새로운 국제기준과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시각을 고집하면, 외톨이가 되기 쉽다. 1930년 대공황의 와중에서 미국이 예금자보험제도를 도입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개인의 재산을 왜 정부가 보호하느냐는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예금자보험제도가 전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 코로나19 위기에 시도되는 많은 변화들도 새로운 시대에는 상식이 될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질병, 고통, 죽음, 공포, 불평등, 핍박 등 온갖 재앙이 다 튀어나왔다. 그러나 기억하자.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다. 그것이 우리가 코로나19 이후를 살아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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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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