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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카르텔’ 실체는 없었다

노동부는 산재보험 제도 개악 시도를 중단하라

등록일 2024년03월13일 10시0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현재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

 

지난 2월 20일 노동부는 속칭 ‘나이롱 산재 환자 뿌리 뽑는다’라는 거창한 슬로건으로 시작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2023.11.1~12.29 진행)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감사 착수 전부터 증거가 불충분한 여당의 ‘산재 카르텔’ 주장을 확산하며 무고한 산재 환자를 ‘나이롱’이라 칭하고 온갖 비리 집단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막상 발표한 결과는 산재 카르텔의 실체는 없었고, 정부와 여당이 과장된 주장을 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산재 카르텔’ 실체 입증하지 못한 노동부

노동부는 이번 특정감사에서 접수된 883건 중 486건(55.0%)을 부정수급 사례로 적발했으며, 적발액은 약 113억 2,500만 원이라고 발표했다. 적발된 부정수급 사례 486건이 몇 년 치 통계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최근 산재 승인 건수(‘23년 144,965건)만 비교하더라도 0.3% 수준에 불과하며, 보험급여지출액(‘23년 72,849억 원)과 비춰봐도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이번 특정감사 결과를 가지고 과연 산재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별도의 부정수급조사 전담조직을 운영하며 매년 아래의 <표 1>과 같이 부정수급 조사 건수와 적발액을 공개 발표하고 있다.

 

이번 특정감사 결과에서 적발된 부정수급 건수와 적발액은 매년 공단이 발표하고 있는 수치보다 훨씬 양호한 수준이다.

 

물론 그 수치가 많고 적든 간에 부정수급은 방지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특정감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산재 카르텔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라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장은 허무맹랑했다는 사실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정부와 여당이 무책임하게 던진 언행들로 인해 그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산재 환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특정감사 이후 산재판정과 산재 재요양 연장 승인 문턱이 별다른 이유 없이 높아졌음을 체감하는 산재 노동자가 늘고 있다. ‘산재 카르텔’이 범국민적으로 이슈화되면서 근로복지공단은 산재판정을 더욱 보수적으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극히 일부의 부정수급 사례를 가지고 산재 환자 대부분을 실체 없는 ‘산재 카르텔’로 몰면서 공정하게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들마저 부정 수급자로 매도하고 있다.

 

산재 카르텔은 핑계일 뿐, 목적은 산재보험 제도 개악 시도

노동부는 이번 특정감사 목적과 전혀 연계성 없는 근골격계질병 등 추정의 원칙 제도에 대해 법적 근거 미비를 운운하며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의 목적과 본질을 완전히 흐리고 있다. 감사 결과에서는 추정의 원칙 제도와 관련한 일말의 부정수급 사례도 적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부는 뜬금없이 현 정부의 친기업 정책 기조에 맞춰 추정의 원칙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경영계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새이다.

 

근골 추정의 원칙 제도는 근골격계질병에 대한 산재 노동자의 입증 책임 부담 완화와 산재 처리 기간 단축 및 심의 신속성을 도모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실상은 제도의 적용 건수가 매우 저조하고, 처리 기간도 119.1일(‘23년 기준)로 상당하여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할 만큼 실효성 문제가 심각하다.

 

023년 근골격계질병 산재신청 건수는 14,448건으로 그중 추정의 원칙 적용 건은 610건(4.2%)에 불과하다. 오히려 제도의 현장 작동성 강화와 실효성 제고를 위해 적용 범위를 확대해도 모자랄 판국에 제도 전반을 역으로 재검토하는 것은 노동자를 산재로부터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한 것과 같다.

 

또한, 작년 특정감사 중간결과에서 언급된 근골 추정의 원칙 제도의 현장조사 생략에 따른 산재판정의 공정성 문제도 현재 추정의 원칙 적용 건의 약 75% 정도가 현장조사를 거치고 있어, 노동부의 주장에는 신빙성이 없다.

 

소음성 난청 산재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60대 이상의 고령층 재해자의 산재신청 집중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 의지를 피력했으나, 개선 초점이 잘못됐다.

 

2022년 근로복지공단 국정감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음성 난청 심의 건에 대해 공단이 불승인하여 소송을 거친 심의건 중 공단 패소율이 34%에 달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에 공단에서 취하한 비율은 35%로 취하된 심의건 대부분은 공단이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공단의 패소율이 약 70%에 달하는 실정에서 소음성 난청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들은 장기간 소요되는 소송으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 노동부는 이러한 부당한 문제부터 우선 개선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장기요양환자 관련 내용도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상병별 표준 요양 기간이 부재하여 장기요양환자가 양산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준 요양 기간을 설정하면 산재 노동자들이 수행했던 업무특성과 노출 수준·기간, 신체적·개인적 특성 등이 서로 각기 다른 관계로 산재 노동자의 치료와 보상에 불이익이 상당할 것이다.

 

요양 연장을 위해 의료기관 변경 제도 이용에 대해서도 극히 일부의 극단적 사례를 들어 산재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하고 해당 제도의 도입 목적과 취지를 퇴색하고 있다.

 

노동계가 배제된 산재보험 제도개선 TF

노동부는 특정감사 이후 전문가 TF를 구성해 산재보험 제도 전반에 걸친 조속한 개혁 추진을 피력했고 지난 1월 ‘산재보상 제도개선 TF’를 발족했다. 해당 TF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던 내용 이외에도 산재 기금 적립방식 및 규모, 9년간 동결된 간병비의 현실화, 직장 복귀 지원금 확대 등 여러 산재보험 제도의 주요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TF 구성에 있어 노동계를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계에 전문가 추천 의뢰조차 없이 전문가를 구성했다. 정부와 사용자들의 주장에 우호적인 전문가들로만 선별해 산재보험 제도를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노동자는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여러 절차를 거치고 있고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도 여전히 심각하다. 정부가 이러한 부분을 외면한다면 산재보험 제도는 지금보다 더욱 후퇴하게 될 것이며 산재 은폐를 넘어서 안전관리 허술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봉착할 것이다.

 

2023년 업무상 질병의 산재 처리 기간은 214.5일로 전년 182.0일 대비 32.5일 증가했고, 근골격계질병만 보더라도 146.0일 소요되어 전년 108.2일 대비 37.8일 증가했다.

 

노동부는 근거 없는 산재 카르텔 발굴에 쓸데없이 인력과 예산을 허비하지 말고 산재 처리지연으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병마에 시달리는 노동자, 산재판정 결과를 기다리다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개선과 지원방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산재 환자들과 산재 유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을 경청하여 산재 노동자의 신속한 치료와 보상, 산재 환자의 원활한 직업 복귀를 위한 실질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즉각 마련하는 것이 노동부가 힘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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