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면서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고 설왕설래 하고 있다. 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간 정책을 대통령이 뒤집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69시간이든 주60시간이든 정부가 추진중인 장시간 압축노동 정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노총은 과로사를 조장하는 장시간 노동착취 정책 폐기와 함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끝까지 투쟁한다는 방침이다.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과 함께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탄압의 대표적인 정책이 노조 회계 점검이다. 정부는 노조 운영 투명성을 빌미로 ‘깜깜이 회계’, ‘부패세력’ 등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워 노조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정부가 노조법상 근거도 없이 일률적으로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노조 자율성 침해행위이며, 과도한 행정행위로 불법성이 다분한 행위이다. 본고에서는 정부 노조회계 점검의 문제점과 한국노총의 대응방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노조 때려잡기의 시작
과거 노조법에는 노조에 대한 행정관청의 ‘업무조사권’이 규정되어 있었다. 이 업무조사권이 인정되었던 취지는 행정관청이 노조내 조직분규가 발생했을 경우 신속히 해결하고 민주적 노조운영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업무조사권을 노조탄압의 도구로 활용했다. 정부는 노조가 업무조사를 거부한 경우 노조를 고발하고 노조간부들을 구속하는 등 노조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강화하고 노조 자주성을 말살하는 도구로 서슴없이 악용했다. 당연히 업무조사권을 빌미로 행정관청이 자의적으로 노조운영에 개입할 소지가 많다는 지적과 비판이 잇따랐고 결국 해당 조항은 삭제되었다.
이 구시대적인 업무조사권이라는 독소조항이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노조탄압의 무기가 구 노조법상 업무조사권에서 현행 노조법상 제27조의 자료제출요구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28일,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자율점검 계획’을 발표하고, 1,000인 이상 노조 및 총연맹·연맹을 대상으로 노조법 제14조상 서류비치·보존의무가 있는 서류에 대해 자율점검결과를 제출하도록 했다. 일부 노조의 비리문제를 꼬투리 잡아 전사회적으로 노조혐오를 조장하고, 노조를 부정부패세력으로 매도함으로써 노조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이른바 ‘노조때려잡기’, ‘노조흠집내기’ 정책 추진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이다.
정부 노조회계 점검의 문제점
1. 노조법 제14조와 제27조의 왜곡된 해석을 통한 노조운영 개입
노조법 제14조에서는 노조에게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에 대한 비치·보존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본 규정의 입법 취지는 노조의 자주적·민주적 운영을 담보하기 위해 조합원의 알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행정관청이 이를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노조 역시 행정관청에게 이를 보고하거나 제출할 의무가 없다.
정부는 이에 대해 노조법 제27조상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노조법 제27조상 자료 제출은 행정관청이 아무 때나 노조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정관청이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사유에는 해당 노동조합에 대하여 진정·고발·청원 등이 있을 경우, 노동조합의 조직분규가 있어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 노동조합의 회계·경리 상태나 기타 운영에 대하여 지도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으로 한정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정부의 이 같은 행위는 노조에게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한 것이고, 노조 조합원에게도 없는 권한을 행사하려는 월권이다. 이는 노조의 자주성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초헌법적 행위라 할 수 있다.
2. ILO 기본협약 제87호 위반
우리나라는 ILO기본협약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을 비준해 2022년 4월 20일부터 동 협약이 발효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부 역시 동 협약을 준수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한다. 동 협약에 따르면 정부는 노동조합의 재정에 관해 원칙적으로 노조의 자율에 맡겨야 하고, 사전적·적극적으로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 정부가 적극적인 간섭을 하는 경우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위원회 역시 노조회계는 그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므로 정부의 간섭할 수 있는 위험이 수반되는 경우에는 ILO 협약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이와 같이 국제노동기준에 따르더라도 정부의 노조회계 점검은 ILO 협약위반이자 노조운영에 대한 지나친 간섭·개입에 해당한다. 한국노총은 올해부터 우리나라가 제출의무를 부담하는 ‘ILO 기본협약 이행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협약위반 사례를 수집하고 문제를 파악해 국제사회에 알려 나갈 방침이다.
정부의 노조회계 점검에 대한 한국노총의 대응
한국노총은 노조 운영의 자주성 확보와 정부의 개입배제라는 대전제 하에, “조합원의 알 권리보장을 위해서 준수할 사항에 대해서는 자율점검결과서 및 증빙자료(비치자료의 외관, 보관문서 목록 사진)를 제출하되, 노조의 운영사항이 담긴 ‘내지’ 등 서류는 제출하지 않는다”는 현장대응방침을 산하조직에 시달한 바 있다. 이 방침에 따라 자율점검결과서와 ‘내지’만 제출해 자료보완을 요구받은 노조가 이를 거부·불응하고 정부의 현장조사를 거부해 과태료 부과를 받은 경우, 한국노총과 회원조합의 공동법률대응을 통해 과태료 재판비용 및 과태료 부과에 따른 일체의 책임을 총연맹이 부담할 계획이다.
또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 3월 2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장관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 백번 양보해 정부가 노조법 제27조에 따라 결산결과를 보고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범위는 예외적·보충적으로 필요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정부의 행태와 같이 노조 운영에 대한 월권적 개입행위는 위헌적인 법 집행인 것이다. 즉, 노동조합 내부에서 요청이 있는 경우에 사후적으로 행정개입을 해야 하며 그러한 내부의 요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사전적으로 행정개입을 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인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조직된 단체, 다시 말해 ‘자주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노조의 자주적 운영을 지키기 위해 노조회계 점검을 빌미로 한 노조운영 개입 시도에 맞서 단호하게 싸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