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해도 생소하기만 하던 ‘플랫폼’이란 단어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배달의 민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에어앤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하며, ‘네이버웹툰’을 통해 만화를 보거나 가끔씩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상품을 거래하기도 한다. ‘플랫폼(경제)’은 이미 우리의 일상을 잠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나 비대면 생활양식으로의 변화는 이러한 ‘플랫폼’ 이용을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이를 매개로 노무제공이 이루어지는 ‘플랫폼 노동’ 역시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며, 향후 일자리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1) ‘플랫폼 노동’ 확산의 가장 큰 문제는 기존 노동법이나 사회보험 체계로는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결국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 등 노동관계법상 ‘노동자’로 포섭하여 보호하느냐, 최근 가사노동자의 경우와 같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여 보호하느냐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지난해 12월, 정부는「사람 중심의 플랫폼 경제를 위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대책」을 발표하며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보호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정부 여당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올해 3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플랫폼 노동자가 일하는 과정상 요청되는 주요 정책수요에 대해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한다는 취지 하에「플랫폼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위 법률안은 새로운 지위를 창설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형태와 무관한 모든 종사자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우선적으로 적용(유리의 원칙)하는 동시에, 보충적으로 플랫폼 노동자가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됨으로써 법 적용이 안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고용형태 자문기구’를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법률안 제3조). 이와 같이 ‘유리의 원칙’을 선언적으로 규정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제반 법률 사이의 ‘유리의 원칙’을 명문화하였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결국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을 회피하고 우회하는 방법으로 얼마나 큰 실익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고용형태 자문기구’ 운영 역시 노동자성 판단을 전적으로 법원의 해석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문기구를 통한 시의적절한 문제해결이 가능할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도 미국, 독일 등의 국가들과 같이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판단기준’과 노동자성에 대해 사용자가 증명하도록 하는 ‘입증책임의 전환’2) 규정이 있어야 한다. ‘자문기구’ 역시 ‘판단심의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플랫폼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판단결과에 입각한 시의적절한 문제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법률안은 플랫폼노동자의 고용안정 측면에서도 미흡하다. 즉, 법률안에 의하더라도 플랫폼 기업이 약관에서 정한 플랫폼노동자와의 계약 변경·해지사유를 악용하여 계약해지를 하는 다시 말해 ‘해고’를 남발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한편, 법률안에서는 제9조부터 제12조까지 ‘공제회 설립’, ‘공제부금 및 퇴직공제금 지급’ 등 공제사업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공제사업이 플랫폼노동자의 보호 및 지원을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초기 단계에서 기업 주도의 공제조합 뿐만이 아닌 다양한 모델과 방식이 시도될 수 있도록 사회적·법적 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 자조조직으로서 공제회와 공제회 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법적 지원근거를 법률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플랫폼공제회의 설립·운영주체를 플랫폼 운영자로만 국한하지 않고 노동조합 또는 플랫폼노동자까지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법률안의 실효성 확보 수단 역시 의문이다. 대표적으로 고용노동부장관이 플랫폼 운영자 및 플랫폼 이용 사업자에게 법시행과 관련해 필요한 사항을 지도하거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만으로는 절대 법적 실효성이 담보될 수 없다. 최소한 고용노동부장관의 ‘시정명령권’, 그리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법을 준수하려는 시늉이라도 내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법률안은 플랫폼 운영자에게 일의 배정 및 보수, 이용수수료, 고객만족도 등 평가방법과 기준 등에 대해 정보제공의무를 부여하면서도,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플랫폼 운영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여 사실상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정보제공의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최근 유럽 여러 국가에서 판결과 입법으로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노동법체계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스페인은 배달기사를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온전히 인정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여 플랫폼노동자가 노동관계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노조결성과 사회보장 등 모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3)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에서도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유사판결이 나왔고, 유럽연합(EU)은 노동자성과 관련한 기업규제 초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역시 노동부장관이 플랫폼에 속한 노동자가 직원(employee)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하며, 노동부가 플랫폼 노동자들을 사실상 고용한 기업들과 직접 접촉하여 이들 노동자가 일정한 급여, 병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플랫폼노동자와 같은 비정형 노동자가 그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경제적 종속’ 하에 노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형적 노동자와 본질은 같다. 노동법의 적용대상은 불변의 원칙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수정할 수 있는 기준이다. 과거의 기준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을 노동법의 보호범위에서 배제한다면 앞으로 노동법은 ‘표준적 고용관계’를 획득한 신분자를 보호하는 ‘신분법’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플랫폼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기존 노동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노동법이 추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미주>
1) 2020.12.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179만 명으로 조사되었고, 플랫폼이 일을 배정하는 등 업무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협의의 플랫폼 종사자의 경우 약 22만 명으로 나타남. 특히, 22만 명 중 무려 절반(47.2%) 가량이 20대와 30대로 ‘청년’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음.
2)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 ABC 검증요건’ 같은 경우 다음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노무제공자는 노동자로 추정됨(사용자는 검증요건의 세 부분을 모두 증명해야 하며, 세 부분 중 어느 하나라도 증명할 수 없으면 노무제공자는 법적으로 노동자로 분류됨). A. 노무수행계약과 사실상의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사용자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로운 자, B. 사용자의 업무의 통상적인 과정 이외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자, C. 업무수행과 관련된 동일한 성격과 독립적으로 수립된거래, 일또는사업에 통상적으로 종사하는 자
3) 특히, 플랫폼업체로 하여금 노동조합에게 알고리즘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여,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및 인공지능에 대한 정보를 플랫폼노동자와 노조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