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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 :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제

세계노동운동사에 비춰 본 오늘의 노동(4)

등록일 2021년05월24일 08시3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한국노총 세계노동운동사 읽기모임 회원)

 

현행 노조법상 문구대로라면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이다. 하지만, 운동사(運動史)적 관점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자신들의 생활과 임금,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자본가에 대항하고자 단결하여 싸우기 위한 조직”이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본질이 자본·자본가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 ‘계급’ 조직인 이상, 당연히 ‘계급투쟁’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 계급투쟁 발전의 결과로서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투쟁’을 전개하는 것 또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노동조합 운동 초기 ‘단결금지법’에 직면한 각국의 노동조합이 반동(反動)적인 정부를 교체하기 위해 저항한 정치투쟁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노동조합은 임금 등 노동조건의 개선, 그 밖의 노동자의 일상적인 요구를 위한 ‘경제투쟁’을, 한편으로는 “잃은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라는 구호가 표방하는, 노동자의 전면적 해방을 지향하여 싸우는 ‘정치투쟁’의 입장에 서서 수행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 로자 룩셈루르크(Rosa Luxemburg)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반란이자 국제 노동자계급 운동의 빛나는 서막이라고 표현되는 영국의 ‘차티즘(Chartism)’ 운동1)과 같이, 역사적으로 노동자계급이 지향한 목표는 정치적 자립이고, 직접적인 과제로 제기한 것은 민주주의 내용의 사회제도 확립이었다. 노동자계급은 스스로의 이익 보장을 위해 사회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자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여 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치투쟁으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노동자들이 정치 공간에서 정부의 정책 결정과 의회의 입법 및 사회 변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되는 것” 2)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현 방식은 여론 조성, 정책 결정 참여, 로비 활동, 노조 집단행동 등 다양한 형태로 가능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고유 영역인 임단협 활동도 포괄한다.

 

노동조합이 민주적인 계급조직이라는 원칙하에 노동조합과 정당 간의 올바른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그동안 한국 노동운동 진영 안에서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유럽형, 즉 좌파정당과 산별노조 사이의 이념적이고 계급적인 연계모델이었다.3) 예를 들어, 1932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가 트로츠키는 “노동계급의 이해는 강령의 형태로만 올바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강령의 내용은 당을 건설하는 것을 통해서만 옹호될 수 있다. 노동계급은 그 자체로는 착취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를 옹호하는 정치적 계급으로 변모하는 순간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은 오직 당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당은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역사적인 기관이다”라고 하여 당을 노동자계급의 전위부대로 주장한다.

 

한편, 위와 같은 전통적(?)인 시각에 대한 비판도 있다. 비판의 주요 근거는 민주화 이후 산별노조와 좌파정당의 연계조건을 갖추는 과정상 좌절과 혼란, 이로 말미암은 우리나라의 유럽형 노동정치 모델 발전 가능성에 대한 회의에 입각해 있다.4) 이 주장에 따르면, 노동정치를 실현하려면 운동권적인 정치관을 버리고,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과 대면하여 정당이란 수단을 통해 매우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개혁만을 실현할 수 있는 ‘정당정치의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고 한다. 즉 단기적·전투적·급진적 수단에 의존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듯한 기대를 버리고, 더디고 제한적이며 불만족스러운 타협을 수반하는 지극히 민주주의의 정치과정인 정당정치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노총은 그동안 주로 기성 정당과의 정책연대협약,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대선 지지후보 선언, 경사노위 등 사회적대화 참여, 최근에는 여당과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을 구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諸)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정치전략을 취해 왔다. 사실 한국노총의 정치전략들은 종전 진보정당을 비롯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에 근거하여 수립되었다고 보기에는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시각에 대한 비판을 공유하며,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과 함께, 보다 넓게는 최근 ‘노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민주주의’ 속에서 급진 민주주의적 상상과 실천은 무엇을 넘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한쪽에서는 실직위기, 소득저하로 생과 사를 오가는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다른 한쪽에서는 주식 열풍,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 이 기형적인 현상은 현재, ‘사회(소득) 양극화’가 얼마만큼 극대화되어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지금 시점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노동조합’이 아닐까? 경제투쟁을 넘어, 청년·여성·노인 등 취약계층 노동자를 끌어안고, 복지·교육·환경 등 사회적 의제를 보다 넓게 포섭함으로써 대중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전략 구축과 함께 정치세력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혁명가 ‘로자 룩셈루르크(Rosa Luxemburg)’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기반하면서도 정치 변혁의 전망과 통합되는 ‘새로운’ 변혁 전략을 대중 파업이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녀의 저서 ‘대중파업, 정당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잘 드러나 있다. 대중파업의 가장 중심적인 특성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이며, 무엇보다 ‘대중의 자발성’이 혁명을 추동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즉, 정치투쟁이 확산되어 명확해지고 강화됨에 따라 경제투쟁은 후퇴하기는 커녕 오히려 확산되는 동시에 더욱 조직화되고 강화되며, 이 두가지 투쟁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진짜 자유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까지 인정하는 것”이라는 원칙하에 대중 스스로의 살아 있는 자발적 행동으로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하는 것에서 그녀의 민주주의와 노동 대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그녀가 생전 남긴 족적들은 현재까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주>

1) 차티즘 운동은 1838년 5월에 공포된 인민헌장 실현을 목표로 20년 가까이 전개된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하고 독자성을 띤, 조직된 운동이었다. ; 김금수, 『세계노동운동사 1』, 후마니타스, 2014.

2)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지금 돌아봐야 할 것”, 『노동사회』 제163호, 2013.

3) 정혜윤·박상훈·김진엽, “우리는 왜 미국과 일본을 통해 한국 노동정치를 말하려 하는가?”, 『노동이 묻고 정당이 답하다』 토론회 자료집, 2019.

4)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먼저 미국의 경우 노동조합이 유력한 이익단체 중 하나로서 노동조합이 정책 의제마다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하는 등 정당과 노동조합간 ‘이익 교환 구조’가 성립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제도적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노총조직인 렌고가 특정 정당에 선거자금-선거운동을 제공하는 대신, 해당 정당은 노동조합에 일정한 비율로 공직후보 선출권을 제공하거나 국회에서 친노동-친복지 행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 정혜윤·박상훈·김진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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