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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법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까

세계노동운동사에 비춰 본 오늘의 노동③

등록일 2021년04월01일 12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승훈 한국노총 조직강화본부 부장(한국노총 ‘세계노동운동사’ 읽기모임 회원)

 

나는 딸이 세 명 있다. 천만다행으로 내 딸들은 모두 엄마를 닮아 진정 살아 움직이는 귀염둥이다. 그중 첫째와 둘째는 쌍둥이로 7살이다. 셋째는 5살인데 역시나 막내라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걷지도 못해 울기만 하던 아기들이었건만 이제 쿵쾅쿵쾅 뛰어다니고 서로 대화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견스럽다. 그런데 만약에 말이다. 이 아이들이 200년 전인 19세기 초 영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가정이긴 하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은 오전 5시에 시작해 저녁 7시에 끝난다. 휴게시간은 오직 식사 때였는데 아침식사는 15분, 점심식사는 30분이 주어진다(그 외 시간에 쉰다면 게으르다며 감독관으로부터 채찍질을 당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이지만 스스로 일을 그만두진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굶는 것보단 나으니까.”―미성년 아동 노동에 관한 영국 의회 조사보고서(1830) 중 발췌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했다. 이 산업혁명은 기술혁신으로 인류 문명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역사로서 자주 언급된다. 그래서인지 당시 있었던 어두운 면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듯하다. 당시 런던의 10세 미만 유아사망률은 50%에 육박했었다. 아이들은 고된 노동으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성인 남성에 비해 더 많이 일했지만, 임금은 절반 수준이었다. 산업혁명 직전인 1750년 2400시간이었던 영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1830년 3300시간까지 늘어났다(참고로 201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1759시간,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1993시간이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1802년 최초의 공장법을 만들게 된다. 이 법의 요지는 “어린이에게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안 된다”였다(사실 어린이에게 12시간 이상 노동을 강행법규로써 금지할 정도면 그 이전엔 도대체 얼마나 일을 시켰다는 건지 글을 쓰는 지금도 상상이 안 된다). 이후 영국의 대표적인 공장법이라고 불리는 법은 30년이나 지난 1833년에서야 입법되는데 9세 미만 아동노동 금지를 비롯해 연령별 1일 노동시간을 규율하게 된다.

 

한국의 노동법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한다?

 

현재로 돌아와 보자. 오늘날 전 세계는 플랫폼에 기반한 산업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플랫폼노동은 스마트폰 앱이나 데스크톱 웹사이트 중개를 통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는 노동형태를 말하며 대리운전, 퀵서비스, 배달기사, 가사노동자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를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개념이 노동법에 정립되지 않았다는 거다. 플랫폼노동자 대부분은 ‘고용계약’을 통한 법률상 노동자가 아닌 ‘업무위탁계약’으로 인해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 된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4대보험을 비롯한 사회안전망 혜택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유급휴가, 퇴직금도 받지 못하며 해고가 자유롭게 된다.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 역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동법에 저명한 모 교수는 “지금 한국의 노동법은 1953년 제조업시대에 만들어진 공장법이라 플랫폼시대 노동기준이 될 수 없으니 박물관에 들어가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고용노동부 역시 플랫폼노동자 보호를 위해 별도의 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현 노동법과 사회보험 제도가 플랫폼노동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한다. 그럼 이제 방법의 문제를 살펴보면 된다.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는가?’

 

특별법 제정은 과연 최선인가

 

플랫폼노동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은 정당한 처우 개선과 노동기본권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과거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자. 2007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화물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노동자 보호를 명분으로 노동법을 통한 보호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 권리 보장을 막는 역차별의 정당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입법되지 못했다. 별도의 특별법 제정 찬성의 주된 주장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따른 기술혁신을 노동법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논리다. 그렇다. 생산방식과 고용형태가 다변화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법률구조가 더욱 복잡해져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법제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고 결국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게 뻔하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이미 유럽에선 글로벌 택시플랫폼 우버 운전기사들을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있다. 독일 연방노동법원에서는 플랫폼기업을 통한 노동은 회사의 지시에 구속되는 점, 인격적 종속에 따라 업무가 결정되는 점을 근거로 노동자 신분이라고 판결했고 스페인과 핀란드에서도 일감을 받아 음식 배달을 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판시했다.

 

노동법은 시민법이 아닌 사회법이다

 

200년 전 산업혁명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명제로 정부는 간섭하지 않고 당사자 간 자유롭게 맺은 계약을 최우선하는 시민법이 절대원칙이었다. 그러나 앞서 공장법이 나온 과정을 살펴봤듯 시민법의 형식적이고 기계적 평등은 불평등을 낳았다. 이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국가는 “불평등을 통해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는 오늘날 노동법, 경제법, 사회보장법과 같은 사회법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플랫폼 경제에서 발생한 불평등은 노동법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플랫폼노동자는 이미 알고리즘에 의해 지휘, 감독을 받아 종속성이 강하므로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개정으로 노동자 정의를 넓히면 충분히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사업장과 계약을 전제로 하는 전속성 기준을 없애면 사회안전망의 혜택도 보장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료를 준비하면서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를 번역한 라이더유니온 이영주 정책국장의 번역후기로 끝맺음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며 이번 기고를 마친다. “플랫폼 기업들은 혁신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노동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개인들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하며, 더 이상 낡은 법과 경직된 제도로 시장을 옭아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의 노동은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기에 상품처럼 자유롭게 거래돼서는 안 되며 특별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그 노동이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플랫폼 노동 역시 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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