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없어지는 일자리는 몇 개.’, 요즘 심심찮게 접하는 뉴스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로봇이라도 망가뜨려야 할까?
200년 전 생존을 위협받은 노동자들의 러다이트운동
실제로 200년 전에는 유사한 일이 있었다. 영국 산업혁명 과정에서 기계가 도입되자 가내수·공업에 종사하던 숙련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생존권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고 창고를 불태우는 운동을 벌였는데, 이른바 러다이트(Luddite)운동이다. 노동자들은 6명에서 50명까지 무리를 지어 변장하기도 했으며, 칼·권총·보병총으로 무장했다. 대장의 명령에 따라 망치나 도끼를 든 사람들이 기계를 파괴하고 인원 점검 후 총소리를 신호로 해산하는 등, 엄격한 규율 아래 꽤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러다이트운동은 영국 전역뿐 아니라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에도 널리 확산되었다. 위협을 느낀 자본가들과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기계를 호송하기도 했고, 운동의 주동자는 처형되기도 했다. 물론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이고 산발적인 저항으로는 거대한 산업화의 흐름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김금수, 2014: 120-137).
그 후 200년이 흘렀다. 이제 우리가 로봇을 망가뜨리거나 기술혁신을 거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술변화란 진공이 아니라 그 사회의 정치·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져
첫째, 기술발전이 곧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세간의 보도들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연구들은 자동화나 로봇 사용이 생산성을 높여 전체 고용을 증가시키는 등 경제 규모 자체를 확대시킨다고 밝히고 있다. 가령 1976년부터 2014년 사이 미국의 지역별 고용현황을 보면, 특허 등의 자동화가 더 진전된 지역일수록 고용이 늘어났다. 일부 제조업 공장에서는 일자리가 감소했지만, 서비스 일자리는 증가했다(Mann, K., & Püttmann, L, 2018).
무엇보다 ‘기술결정론적 숙명론’에 가까운 보도들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변화가 사회적 진공 속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가정한다는 점이다. 기술변화는 물론 기술 자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전제로 하지만, 일정한 사회적 제약이나 조건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애초에 기술변화란 해당 국가의 고유한 정치·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데 기술결정론적 접근은 기술발전이 사회 제도와 행위자들에 의해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한다(최영섭, 2017:8-9).
지난 200년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노동조합은 시장과 기술변화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
둘째, 사실 사회 제도와 행위자들의 시장 조정은 지난 200년간 노동자들 투쟁의 산물이자 성과이기도 하다. 산발적이었지만 꽤 조직적이었던 러다이트운동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수천·수백만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 노동자들의 조직적 결사체인 노동조합은 합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노동자들은 정치·사회적 권리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함은 물론, ‘시장’을 통제하고 오히려 기술발전과 기업의 이윤 추구행위를 장려하거나 조정하며 ‘복지국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기술발전과 기업의 혁신, 노동자들의 숙련시스템이나 실업문제는 단순히 ‘시장’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과 친노동정당의 힘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가령 노조 조직률이 높고 노동자 경영 참여가 보편적인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영미권과 비교해 기술혁신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급격히 줄지 않았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노동자들은 작업공정과 숙련과정에 깊이 관여하며 기술혁신의 긍정적 효과로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전반적으로 향상된 반면 유독 미국에서만 불평등이 극심해졌다(최영섭 2018:16; Gallie, 2017).
복지수준이 높고 평등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일수록 노동자들은 기술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의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이나 수용성도 차이가 난다. EU 국가 중 노동자 1인당 지출액이 높은 국가일수록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긍정적이며, 기술발전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노동자들이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고 실업 위기에도 높은 수당과 재교육을 통해 보호받을수록 기술혁신이나 인공지능에 불안해하지 않고 변화를 빨리 수용한다는 의미이다(최영섭, 2018:18).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기술 등 사회의 계속되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업이나 이직 등에 대비하고 이를 적절히 조정할만한 힘을 가졌는가 하는 점이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기업 운영과 시장조정에 영향을 미칠 힘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로봇을 파괴하기보다 우리가 힘써야 할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금수(2014), 『세계노동운동사 1』, 후마니타스.
최영섭(2017.11.28),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숙련체제의 모색.”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인재개발 – 인적자원분야 연구협력 확산 세미나 자료집』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외. pp.1-62.
(2018),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과 새로운 숙련체제의 모색.” 『THE HRD REVIEW』 21(2), 한국직업능력개발원, pp.8-33.
(2019.4.25), “디지털 혁명과 미래 교육훈련.”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 – 백년의 시민, 노동의 미래 자료집』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 pp.181-197.
Mann, K., & Püttmann, L.(2018). “Benign effects of automation: New evidence from patent texts.” Available at SSRN 2959584.
Gallie, D.(2017). “The quality of work in a changing labour market.” Social Policy & Administration, 51(2), pp.226-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