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을 잃을 유가족에게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애도를 전한다. 더불어 부상을 당한 노동자도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이번 이천화재 참사는 12년 전인 2008년 냉동물류창고의 화재 사고와 판박이처럼 일어났고,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해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2008년 화재 사고부터 2020년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금까지 12년 동안 산업현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과 제도는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며, 노동존중 사회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다시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되어선 안 된다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기업 처벌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만 하는 기업에 대해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데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인식이 노동자의 부주의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과 기업은 책임이 없다는 인식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솜방망이 처벌을 불러왔으며, 위험을 제공하여 이익을 얻는 사업주와 기업은 미약한 처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안전보건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이것이 산업재해로 이어지며 중대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초, 정부에 의해 제출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유야무야 시간 만 흘러 개정되지 못하는 듯 했으나, 그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법안 개정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고, 결국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처벌 하한선이 사라지는 등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여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한 개정 취지가 퇴색되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이렇게 어떤 법안에 ‘○○○법’이라고 명명되어 개정되거나 제정되는 법은 법과 제도가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선제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제정된 법도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꾸는 법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개정 취지가 퇴색되긴 했지만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이 이루어 졌고, 부족하지만 여러 가지 제도가 바뀐 것도 사실이다.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도 시기적으로 늦었고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뒤라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제정되어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면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고 현장에서 죽어나가는 노동자를 또다시 바라만 보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산재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21대 국회의 최우선 입법과제 돼야
한국노총은 2006년부터 산재사망대책마련을 위한 캠페인단의 일원으로서 지속적으로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의 도입을 주장해왔고 2000년대 이후로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하여 강력한 처벌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아울러, 기업이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야 함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또한, 2020년 출범한 제27대 김동명 집행부의 공약사항에도 노동존중 실천을 위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의 제정을 밝혔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이번 집행부는 취임 100일 성명에서 “38명의 희생자를 낸 이천 화재참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자본의 이윤논리에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산업재해의 가장 큰 희생자들은 비정규직노동자, 일용직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이다. 유해·위험 업무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중대 산업재해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엄중 묻도록 하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고, 상시 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을 고용하는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 이다.” 라고 천명했다.
그 과정의 하나로 한국노총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포럼을 개최하여 법 제정을 위한 기본적인 배경과 필요성을 확인했고, 법 제정에 대해 학계, 정부, 안전보건 유관기관, 시민사회단체 등을 통하여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법 제정을 위한 입법 활동을 전개해 나아가고 있다. 더불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도입을 위한 홍보물(포스터, 소식지, 카드뉴스 등)을 제작하여 법 제정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으며, 지난 5월 1일 제 130주년 노동절을 맞이하여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급 정책협의회와 21대 국회에 대해서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최우선 입법과제로 선정되도록 제안했다.
노동존중 실천을 위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국회에 있고, 이 법의 제정을 위해서는 국회와 정당 차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故노회찬 의원 등이 중대재해 기업처벌과 관련하여 입법 발의한 내용이 있으나 여야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는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이 여러 명 국회에 입성했고 한국노총과 더불어 민주당이 선정한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이 다수 당선된 만큼 한국노총은 이를 지렛대 삼아 여야를 떠나 전 방위적인 입법 활동을 통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에 당선된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들은 진정한 노동존중실천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깨닫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에 반드시 응답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이천화재 참사가 12년 전의 참사를 반복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 시키는 안타까운 사고로만 기억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 산업재해로 노동자의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를 실천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다. 이번 이천 화재 참사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기업에 철저히 그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의 도입이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통해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