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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규제는 우리가 쌓아놓은 질서의 표출

등록일 2020년06월17일 18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천 화재참사와 같이 대형 산업재해가 반복될 때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제정 목소리가 높아진다. 본 원고에서는 기업처벌법 도입 주장의 모태가 되는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출처: 국제안전보건동향(2018.11)

 

영국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살인법을 제정했다. 법 제정으로 기업 등이 주의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하면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상한이 없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을 통해 위반행위 자체와 원인을 시정하도록 하고 기업의 안전보건경영의 시정 등이 가능하며 위반사실에 대한 공표명령제도를 통해 기업 등이 위반죄로 기소된 사실과 구체적인 내용, 벌금의 액수, 시정명령 내용 등을 공표하도록 했다. 기업살인법 제정만으로 산재사망자가 감소했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법 제정이후 영국의 산재 사고사망자 수는 180명(2007~2008)에서 147명(2008~2009)으로 줄었고, 최근까지 비슷한 사망자 수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살인법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면, 우선 행위주체를 기업을 포함한 정부조직,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단체, 노동조합, 사용자협의회까지 포함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협회 역시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한 기업과실치사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다만 최고경영자 등 운영책임자의 개인책임을 묻는 규정은 채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영국의 보통법상 규정을 이용하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망사고에 대해 법인을 우선처벌하고 상위관리자의 관여가 인정되면 공범으로 처벌하는 점도 특징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하위관리자부터 처벌하고 기업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살인법의 또 다른 특징은 반드시 사망의 결과가 발생해야만 형사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이법의 제1조는 “기업 등의 운영 내지 조직방법의 실패로 인하여 ①사망의 결과가 발생하고, 그러한 ②운영방법의 실패가 상급관리자에 의한 것으로써 당해 기업이 사망한 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③주의의무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 기업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주의의무 개념을 접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살인법은 주의의무를 ①종업원이나 종사자에 대한 주의의무, ②시설 및 부지사용자로서의 주의의무, ③서비스·상업적 활동·차량 이용에 대한 주의의무, ④억류·구금된 사람에 대한 주의의무 등 크게 4가지로 분류한다. 이에 따라 영국은 상품이나 서비스에 의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주의의무 위반행위로 처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나 판교 붕괴사건 등과 같이 ‘재화’나 ‘서비스’로 인한 사망사건도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모든 재해를 그 대상으로 한다.

 

지금까지 영국의 기업기업과실치사 및 살인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규제는 탄핵된 전 대통령의 말처럼 ‘단두대에 올릴 대상이거나 쳐부숴야 할 암 덩어리’가 아니며,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혁파의 대상’도 아니다. 규제는 우리가 쌓아놓은 질서의 표출이다. 특히, 대부분의 안전보건 규제가 재난과 참사 그리고 산업재해로 국민들이 죽고 다치고 병든 뒤 사전예방이 아닌 사후조치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음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서강훈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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