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는 다른 나라의 몇 백 년을 압축해 놓은 것 같다고들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국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눈물 흘렸던 것은 이만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흘린 눈물과 땀을 인정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국뽕 영화’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 것은 그 과정이 땀과 눈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민중의 붉은 피가 있었음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4.19혁명, 5.18광주 민주화운동, 87년 대투쟁 등등 피 흘려 쟁취한 역사의 진보가 있었습니다. 이 역사의 분수령들은 미흡하더라도 진실규명을 이루었고 국민적으로 공감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불과 수년 전까지 공식적으로 말하기 힘들었던 피의 역사가 있습니다. 올해로 70주년이 되는 4.3 항쟁입니다.
4·3항쟁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 되어서입니다. 그해 1월 12일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특별법에서 근거하여 구성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2003년 10월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었고,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한 잘못을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4.3은 공식적으로 여전히 항쟁이 아니라 ‘사건’으로 불립니다. 국민들의 인식도 낮습니다.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여러 행사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수십 년을 말하지 못했던 4.3의 진실과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피해자와 가까스로 살아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으로 오늘은 4.3에 관한 노래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인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를 소개합니다.
1987년 대학생 신분으로 노래모임 ‘새벽’ 활동을 병행하던 안치환이 만든 이 노래가 가장 먼저 실린 음반은 공교롭게도 1988년 노동자노래단 1집 <출정전야>입니다. 그 후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수록되어 널리 불렸습니다. 노래를 만든 안치환은 솔로 독립한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음반에 수록하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앨범>에는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로 실렸습니다.
서울에 있는 민중음악인들을 중심으로 4.3항쟁 70년을 맞이하여 음반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노래들이 널리 퍼지며 4.3을 알리고 4.3항쟁으로 모두가 기억하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광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은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기억할 때 아름다운 섬 제주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평화의 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정연 꽃다지 대표∙문화기획자
잠들지 않는 남도
작사 안치환
작곡 안치환
노래 안치환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