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가 기로에 섰다. 집권 2년차 국정과제 추진이 본궤도에 올라야 하지만 경제 기득권세력들의 반발과 저항에 멈춤 거린다. 경영계와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경제상황 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기를 주장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민간부문으로 옮겨 오는 것을 방지하고자 골몰한다. 어느 때 보다 노동계의 대응이 중요하다. 정부 정책의 허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이를 실현할 수 동맹 세력을 형성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정교한 노동정치 전략이 요구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대책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반환점을 돌았다. 정부는 2017년 7월 20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정규직 전환의 추진 배경은 IMF 외환위기 이후 비용절감, 탄력적 인력운용 목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이것이 고용불안과 차별 등을 야기하는 등 사회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시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를 전체 41만6천 명(기간제 24만 6천, 파견용역 17만)으로 추산하였다. 정규직 전환의 기본 원칙으로 “①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②충분한 노사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추진한다. ③고용안정, 차별개선, 일자리 질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④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규직의 연대로 추진한다. ⑤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지속가능한 방향이 되도록 한다.”이다.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현재까지의 정책 추진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18년 10월 기준으로 16.2만 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었는데, 이는 2020년까지 잠정전환 규모(17.5만)의 92.4%이다. 비정규직 중 기간제노동자 68,162명, 파견용역노동자 93,538명의 전환이 확정되었다. 전환결정 인원 16.2만 명 중 실제 전환이 완료된 인원은 102,229명으로 기간제(88.9%)에 비해 파견용역(44.5%) 부문이 지연되고 있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정부가 ‘착한 사용자’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종합하면 현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문제점과 한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업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의 정책을 바로 잡는 정책으로 그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정규직의 기준, 전환 방법, 임금수준 등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세부 쟁점 사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규직 전환 예외 대상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고도의 전문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와 타 법령에서 기간을 달리 정하고 있는 기간제교사(교육공무원임용령), 영어회화전문강사(초중등교육법)의 경우 정규직 전환 여부를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전환심의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교육부)의 강력한 반대로 기간제교사와 영어회화전문강사 등은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상시·지속적 업무이고, 교육 현장의 주요한 구성원으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전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이 밖에도 지자체의 경우 국고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업의 종사자들도 전환 대상에서 탈락하였다.
둘째,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인가라는 쟁점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전환되는 비정규직노동자가 기존 정규직노동자와 동일·유사업무를 담당할 경우 기존 임직급체계로 포괄하고 유사업무가 없을 경우 별도의 직군을 신설하고 별도의 임금체계를 설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서 대다수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은 ‘무기계약직’ 신분이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은 보장되지만 처우와 복지는 정규직과의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노동계는 무기계약직 전환은 ‘무늬만 정규직화 정책’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셋째, 직접고용과 자회사 고용의 기준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는 생명·안전업무는 직접고용 원칙을 제시하였다. 즉, 국민의 생명·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할 경우 업무 집중도, 책임의식 저하로 사고 발생의 우려가 있으므로 직접 고용이 원칙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 많은 기관들은 생명안전 업무만 직접고용 정규직이고, 나머지 업무는 자회사 고용이 원칙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자회사 고용이 남발되어 노사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2018년 10월말 현재 자회사 전환을 결정 또는 완료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모두 33곳이고, 자회사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수는 3만 2,514명이다. 이는 당초 원청의 직접 고용을 기본으로 하고 자회사 전환을 예외로 한 전환 가이드라인 내용과도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넷째, 비정규직 5개 직종 표준임금체계 도입이다. 정부는 청소, 경비, 시설관리, 사무(보조), 조리(보조) 직종의 경우 주먹구구식 인사관리 정책의 탈피를 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직무급 표준임금체계를 마련하여, 이를 통일적으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표준임금체계 도입은 동일 직종간 임금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이었으나 초임이 최저임금과 연동되었다는 점에서 저임금 고착화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또한 공공기관 정규직들은 호봉제인데, 왜 우리에게만 직무급을 적용하여 노동의 숙련을 보장하지 않느냐는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였다.
정규직화 정책 민간부문으로 확산되어야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정부 스스로 모범 사용자의 기본 책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또한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남용을 억제하고 차별을 완화하는데 정부의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민간부문에 보내는 시그널이었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정부(경영진)의 강력한 의지, 사회갈등 조정 및 노동연대의 구축 여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 동안 공공부문에 강요되었던 외주화를 인소싱(insourcing)하는 것은 이해 갈등의 충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노사정간의 조정 및 협력 능력이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최소화라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유지하는 한편 노동계도 고용형태별 차별 없애기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의 채용비리 의혹 제기는 공정채용을 빌미로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정책을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꼼수가 숨어있다. 비정규직 남용이 남긴 한국 사회의 아픈 상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유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었던 자본의 비용 절감 정책을 막지 못하는 한 작업장 내 노동 연대는 실현할 수 없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이제 민간부문으로 확대하자. 고용노동부의 ‘2018년도 고용형태공시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 고용형태공시 대상인 종사자 300명 이상 기업 3,478곳의 노동자는 모두 486만5천 명이었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은 간접고용 90만6천 명(18.6%), 기간제 93만1천 명(19.1%), 단시간 9만8천 명(2.0%)으로 전체의 39.7%를 차지한다.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남용은 지난 몇 년 동안 아무 변화가 없다. 아직 노동계가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