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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돌봄, 돌봄복지국가 건설이 필요하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

등록일 2024년05월24일 09시1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고령의 노부부가 서로를 돌보다가 치매를 앓던 배우자를 살해한 사건,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던 엄마가 끝내 자녀와 함께 투신한 사건, 20대 청년이 극심한 생활고와 간병비 부담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한 사건 등 안타깝고 비극적인 선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도 대구에서 치매를 앓던 80대 아버지와 간병하던 아들이 모두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서대문구 반지하 방에서 96세 어머니를 돌보던 65세 아들은 간병과 채무 사이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지만, 치료는커녕 순간의 자유도 없다.

 

돌봄, 사회적 책임 과제로 등장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와 급변하는 가족 형태, 노동 형태의 큰 변화 속에서 돌봄 공백의 심각성이 사회적 위험으로까지 등장하자, 주요 복지국가는 돌봄을 개인의 책임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하고,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생·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은 돌봄을 여전히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맡기고 있고, 특히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에서 마주한 돌봄의 공백으로 국민은 견고한 돌봄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지만 정작 국가는 공허한 구호로만 국가 책임을 외쳤을 뿐 국민의 돌봄 문제를 책임지지 않았다. 그 결과 국민은 여전히 돌봄 문제로 인한 불안과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3월 12일 오전 10시 한국은행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차별과 돌봄서비스 시장화 부추기는 한국은행 규탄 기자회견’

 

시대 역행하는 정부의 돌봄 정책

우리나라의 영유아 돌봄, 노인 요양, 장애인 지원 등 주요 사회서비스는 민간에 맡겨 운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운영의 불투명성과 비민주성, 효과성 결여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열악한 종사자의 처우로 인한 서비스 질 하락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또한, 필요와 욕구에 맞는 보건, 요양, 복지 및 일상생활 지원, 주거 등의 서비스가 적절히 제공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도입되었으나 정부의 정책 추진 의지 및 역량 부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돌봄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열악한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 돌봄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국공립우선위탁 조항이 민간 기피 분야에 한정되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일부 지자체는 예산 부족으로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거나 돌봄노동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초단기간 저임금 노동 환경을 개선하지 못하는 등 설립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시민의 돌볼 권리를 보장하고 돌봄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어렵게 설립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경우 폐지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한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는 사회서비스의 고도화를 추진한다면서 사회서비스원의 통폐합, 예산 삭감 등 돌봄서비스의 공적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

 

저임금, 비용 절감... 돌봄 위기 해법 아냐

정부는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고 돌봄 비용을 줄인다며 값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돌봄의 공백을 메우려고 시도 중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이주가사노동자 100명을 맞벌이 가정 등에 연결해주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고,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방안이 국책 기관으로부터 제안되기도 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방안을 검토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비용 절감을 위한 시장 논리로만 돌봄 문제를 접근하니 돌봄 철학의 빈곤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돌봄의 위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개인이 책임지는 돌봄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돌봄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돌봄의 욕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응으로 돌봄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적절한 돌봄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돌 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모든 국민이 연령, 장애, 질병 등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할 때 최대한 지역사회 안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영위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성장과 발달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돌봄 보장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법·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생애주기 따른 돌봄 정책 로드맵 필요

무엇보다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돌봄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인프라 확충과 제도적 돌봄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질 높은 돌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국공립어린이집 이용률을 50%까지 확대하고, 어린이집 교사 1인당 아동 비율의 하향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초등돌봄의 이용률을 확대하고, 제도적으로 분절된 초등돌봄은 통합하여 지자체 책임하에 온종일 돌봄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인 돌봄의 경우 지역별로 노인요양시설 공공 공급 총량에 대한 최저 기준을 마련하는 기본공급률제를 도입하고, 일반 공립요양시설 설치비용에 대한 국고보조율을 80% 수준으로 일괄 상향시켜 지역별 공립시설 설립을 촉진해야 한다. 장기요양 1,2등급 재가요양서비스를 시설요양 수준으로 확대하며, 최소한 하루 8시간 수준으로 확대하고, 야간서비스를 제공하여 충분한 돌봄이 실현되게 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인프라 확대와 돌봄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식되고 적정한 돌봄이 보장될 수 있도록 돌봄노동자의 적정한 처우를 보장하기 위한 임금 및 고용 체계의 개선도 필요하다. 가족 돌봄 등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보호자 모두를 위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제도의 실질적 보장, 육아휴직 소득대체율 상향 등 일⋅가정 균형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제대로 된 돌봄 휴가, 상병수당 등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보장도 필요하다. 지역에서 적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최저 주거기준 현실화, 주거급여 대상 확대, 공급자 중심의 주거복지 전달체계 개선 등 주거권의 보장도 강화해야 한다.

 

누구나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대부분의 삶을 누군가를 돌보거나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간다. 돌봄 부담은 소득, 연령, 젠더, 가족 구성 등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커다란 압박이 된 지 오래다.

 

돌봄의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 과제만으로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본권으로서의 돌봄권을 분명히 하고,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기 위한 로드맵과 실천계획 마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순간이다. 돌보는 국가를 위한 돌봄의 연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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