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현 정권의 주요 3대 개혁과제로 강조되면서 작년 11월 국회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마침 국민연금법상 5년마다 해야 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 시기와 맞물려 두 개의 경로로 개혁논의가 진행됐다. 1년간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된 회의 및 연구의 결과물이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그야말로 국민연금 백가쟁명의 시대다. 각종 토론회와 인터뷰, 사설을 통해 전문가들은 제각각 주장을 펼치지만, 서로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는데 그친지 오래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용어와 여러 경우의 수, 불확실성 속에서 국민은 갈팡질팡하는데 정부와 국회마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고 ‘공론화’라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 같다. 이제 2023년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의를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진짜 연금개혁을 바라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연금제도의 진짜 주인, 연금개혁의 동력을 찾고 실천적인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주요 쟁점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재정 안정화 vs 소득보장 강화’로 응축된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이 적정한 노후소득을 보장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미래사회 위험에 대응해 연기금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재정 안정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의 대립이다. 절대적으로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주요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상이했고, 정부가 수렴한 국민 여론을 보더라도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쉽지 않다.
올해 정부와 국회가 발표한 연금개혁안을 살펴보자. 9월 1일 재정계산위원회가 최종보고서를, 10월 27일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11월 16일 국회 연금특위는 ‘민간자문위원회 보고서’를 각각 제출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기자회견과 성명서로 대응하고, 노동·시민사회 진영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대안보고서’를 발표했다. 5년마다 실시하는 재정계산 보고서에는 24개의 무책임한 시나리오가 제시되었던 반면, 복지부는 정작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서 민감한 숫자는 거둬냈다. 정치적인 셈법이 작동했다는 의심이 든다. 그나마 국회 연금특위는 보고서에서 두 가지 안으로 다시 좁혀놨지만 내년 5월까지로 운영시한을 정한만큼 누가 개혁 드라이브를 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국민에게 묻겠다고 한다. ‘공론화’라는 방식으로 공적 협의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계획은 불투명하다. 현재 연금정치 안에는 진짜 개혁을 바라는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연금개혁을 위해 ‘공론화’와 ‘가입자 대표성’ 필요
사실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이 완전히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료 인상이 시급하다는 필요성에도 공감대가 있다. 하지만 공적연금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퇴직연금, 직역연금 등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고령사회 대비를 위해 연금만 아니라 고용, 건강과 보건의료, 복지서비스에 종합적으로 국가 재정이 필요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미래를 100% 예측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 변수와 예측 불가 속에서 국민에게 어떤 방안이 제일 좋을지 단순하게 묻는다면 ‘공론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과연 바람직한 공론화, 사회적 합의는 무엇일까?
단순한 의견수렴, 설문 조사가 숙의 민주주의를 위한 공론화가 아니다. 나쁜 예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 수립 시 청년세대 의견을 수렴해서 제시한 ‘확정기여형(완전 적립식)과 보험료의 연령별 차등 인상’ 같은 설익은 방안을 꼽을 수 있다. ‘공론화’에는 설문 조사, 지역공청회, 워크숍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목적에 따른 설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먼저 제공하여 올바른 판단을 지원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과 공론화 설계 단계에서부터 가입자 대표성을 가진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회 연금특위 산하에 ‘여야+전문가+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공론화 방법, 절차, 결과의 정책반영 등을 논의하는 것이다.
▲10월 26일 오전 10시, 한국노총 대회의실(6층)에서 열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대안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한국노총은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이래 연금제도를 책임지는 사회적 주체로서 가입자를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35년간 제도운영에 참여해온 한국노총의 주장을 외면하고 전문가를 중심으로 연금개혁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다. ‘일하며 보험료를 납부한 노동자의 퇴직 후 적정한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국민연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노총의 주장이 정부정책과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국회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시작한다면 국민연금의 개혁을 바라는 진짜 주인, 가입자들의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동력은 가입자 본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150만 조합원의 연금개혁 대장정을 준비하자
한국노총은 2022년 말에 산별 연맹을 포함한 ‘공적 연금개혁 관련 공동대응팀’을 꾸려 정부의 국민연금 개악에 대응한 초동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이후 2023년 4월에 상설 투쟁기구로서 ‘연금 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한국노총 연금투쟁위원회’(이하 연금투쟁위)를 설치하여 현재 13개 산별 연맹을 조직했다. 국민연금 개혁은 모든 산업과 부문을 망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주요한 정책과제이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국회의 보고서와 계획을 모니터링하며 노총의 입장을 준비하고 기자회견, 성명서, 연대 활동을 전개했다.
내년에는 연금투쟁위를 전체 회원조합, 지역본부까지 확대할 것이다. 현재 수많은 노동 이슈에 대응하느라 노총의 조직적 상황이 어렵지만, 이번 연금 개악은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1998년 1차 개악 후 소득대체율은 70%에서 40%로 낮아지기만 했고, 여기에 더해 보험료만 인상하겠다는 것이므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 올바른 연금개혁을 위해 노총 내 공론화를 과감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다. 지역 순회교육, 연맹의 교육과 행사에 결합하여 조합원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할 예정이다. 한국노총 150만 조합원의 공론화를 통해 국민이 공감하는 여론을 주도하면서 가입자 대표성을 다시 한번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