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공무원법, 공무원노조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등의 실정법에서 공무원 정치기본권의 금지로 변질해 공무원 개인이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와 정치 활동이 억압받고 있다.
공무원은 정치기본권 금치산자, 변질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의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1항).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제2항)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법(국가, 제65조/지방 제57조)는 정당가입이나 서명운동, 기부금 모집행위를 단죄하고 있으며, 제66조는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정치운동죄(동법 제84조)를 통해 3년 이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하여 ‘정치운동’과 ‘집단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한, 공무원노조법 제4조는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은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되고, 정당법 제22조는 교사나 공무원은 정당 발기인으로 참여하거나 정당에 가입할 수 없고, 공직선거법 제9조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나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안된다며 ‘정치활동(정당가입, 정치자금후원, 선거운동) 일체’를 금지하고 있다.
사실 헌법 제7조의 역사적 등장은 1960년대 4.19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관권선거로 얼룩진 집권당과 독재정부의 부패를 바로잡고자 4.19혁명 이후 명시된 헌법 조항이다. 즉 공무원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 활동을 박탈하는 것이 아닌 공무원도 민주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공직사회 및 공무원사회의 부정과 부패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일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 ‘정치적 중립성’의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Political neutrality)’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반영한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해외사례(특히 OECD)에서 공무원과 관련된 법령 규정 어디에서도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표현은 없다. ‘불편부당성(impartiality), 독립성(independence), 이해충돌금지(no conflict of interest), 책임성(responsibility), 전문성(professionalism)’ 등으로 명시되며, 대부분은 공무원의 의무적인 가치로서 표현되는 것들이다. 이로 비춰볼 때 헌법 제7조의 본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 연유하는 ‘공무적 의무’일 것이다. 공무적 의무(occupational obligation)는 근무지에서 근무시간 중에 지켜야 할 의무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은 근무지를 벗어난 일상생활에서도, 사생활 속에서도 상급자(국가)의 지배와 통제를 받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 ILO 협약 151호와 공무 중립(행정 중립) 원칙의 이행으로
국제노동기구(ILO)는 1978년에 ‘노동관계(공무)’ 협약 151호를 채택했다. 공식 명칭은 ‘공무에서 조직할 권리 보호 및 고용조건 결정을 위한 절차에 관련된 협약’이다. 이것은 공무의 범위가 점차 확장됨에 따라 공공종업원(public employees)에 대한 건전한 노사관계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이뤄진 조치들이다. 공공종업원에 대한 고용보호(4조)와 정부 통제로부터의 보호(5조), 공공종업원단체 활동 보장 및 국가상황 결정에 대한 참여(6조, 7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 중 제9조는 한국사회 공무원 정치기본권 관련하여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공공종업원은 다른 노동자들처럼 ‘결사의 자유의 정상적 행사에 필요한 시민권과 정치권을 가지며’, 자신의 지위 및 기능의 성격에 따른 의무에만 종속된다(9조).”
사회민주주의가 발전한 유럽국가 대부분은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헌법적 권리를 분리·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으며, 미국처럼 자유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대만, 미영,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00은 안된다’는 네거티브 방식의 접근법으로 정치표현의 자유와 정치 활동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하물며 일본 역시 모든 정치적 행위를 전면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가령 일본공무원이 ‘정치자금 모금회’에 참여할 수 있으며 모금회 파티권을 구입할 수 있으나, 다수 앞에서 특정 정당의 지지·반대하는 언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방식으로 공무원 정치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렇듯 선진국가는 공무원의 정치활동 권리를 헌법의 기본권으로 여겨, ‘공무의 중립성 확보’ 등에 요구되는 구체적 이유로 최소한도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 제7조에 표현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공무의 중립성’으로 실정법(공무원법, 공무원노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에서는 구체적인 이유에 따라 최소한도로 제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의 실정법은 모두 금지하고 있다. 이 실정법들 모두 일일이 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대만의 「공무인원행정중립법」이다. 대만에서 행정중립은 ‘공무원이 공정무사하고 국민의 이익을 창조하며 편파적이지 않아야 함을 뜻하고 이 용어는 법에 따라 행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이에 따르는 공무원의 정치활동 규범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선별·채택된 단어이다. 대만의 「공무인원행정중립법」에서 행정중립 3대 원칙은 ‘법에 의한 행정원칙’, ‘공평대우 원칙’, ‘국가우익우선원칙’을 제시한다. 공무에 대한 분명한 원칙 수립을 통해 공무원 개인의 시민권과 정치권을 보장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오독과 남용으로 금지된 공무원의 시민권과 정치권을 되돌리기 위해 대만처럼 ‘행정중립’이라는 공무원칙을 새롭게 수립하고자 한다. ‘한국판 차티스트 운동’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공무원사회에서 공무원칙의 새로운 수립은 정치기본권 확보의 선결과제이자,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요구에도 부합한다. “공무원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민국 공무원·교사 대다수는 “가질 수 없다”고 답할 것이다. 공무원 개인의 권리상실은 공무원사회의 상명하복, 복지부동을 조장하여 공무의 정치화를 가중시켜 오히려 그 자체로 부정과 부패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MZ세대의 공무원사회의 유입에 따른 공직문화의 변화, 청년공무원 최저임금 보장 문제와 이퇴직률의 급증상황, 저임금 과도한 업무와 과로사에 이르기까지 업무 불합리성과 처우개선 문제는 곧 정치기본권 확보와 직결되고 있다. 즉 현장의 목소리가 온전히 전달되는 소통권이 바로 공무원의 시민권이며, 정치권이므로 공무원의 노동·정치기본권을 보장받고 확대하는 방안을 향후 구상하고자 한다.
이익만 쫒는 공무원 노조활동은 곧 한계에 다다른다. 권리를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권한을 반드시 획득해야 할 것이다. 정치기본권 투쟁은 한국 사회 공무원·교사노조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며 우리는 그 옛날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처럼 새롭게 시작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