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승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노무사
콜센터 상담원인 원고는 다른 콜센터 사업장에서 4년 2개월간 신용카드 교체 안내 업무를 수행하였고 2018. 2. 7. 재해사업장에 입사하여 전국 약 600개의 가맹업체의 무인 주차장 이용과 관련하여 무인 주차 정산기 사용 안내, 주차요금 정산 안내, 무인 주차 A/S 접수 진행 등 업무를 약 7개월간 수행하였다.
원고는 3교대 중 고정 석간 조로 근무하였고 1주당 평균 5일, 14시부터 23시까지 근무했다. 석간 조는 저녁 식사시간 1시간 외에는 휴게 시간이 없었고 휴게장소도 마련되지 않았으며, 석간 조의 업무는 주간 조 및 야간 조에 비해 무인 주차장 이용자들의 주된 이용시간이 포함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근무 강도가 높은 편이었다.
원고는 음주 및 흡연 습관은 없었으나, 일반건강검진에서 2014년 및 2015년에 고혈압 전 단계, 2016년 및 2017년에 고혈압 단계(질환 의심)를 진단받았고, 혈압약 복용 또는 고혈압 치료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콜센터 상담업무를 하는 4년 동안 원고의 체중 및 체질량 지수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원고는 2018. 9. 15. 사업장 인근 식당에서 식사 중 쓰러져 ‘뇌기저핵출혈’을 진단받았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원고의 근로시간이 발병 전 1주 평균 41시간,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37시간으로 고용노동부 고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해당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 불승인 처분을 하였고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뇌·심혈관계 질환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 및 근로복지공단 지침의 내용
이른바 과로성 질환이라고 불리는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하여 고용노동부 고시 및 근로복지공단 지침은 업무상 질병 해당 여부를 ① 증상 발생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있는 경우(급성 과로), ②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간에 1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단기 과로), ③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면서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해당하는 경우,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경우로 구분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업무부담 가중요인으로 제시하는 요소들은 ① 근무 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② 교대제 업무, ③ 휴일이 부족한 업무, ④ 유해 작업환경(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⑤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⑥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⑦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이며, 이러한 업무의 질적 요소와 업무시간이라는 업무의 양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업무시간이라는 양적 요소가 가장 핵심적인 판단 요소로써 사실상 업무상 질병의 승인 여부가 좌우되는 경우가 다수이다.
▲ 대법원 [출처=이미지투데이]
대상 판결의 판단 및 시사점
대상 판결의 원심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업무로 인하여 원고에게 ‘뇌기저핵출혈’이 발생하였다거나 기초 질병이 자연적인 질병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상병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부정하였다.
하지만 대상 판결은 ① 근로자가 여러 개의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근무하다가 질병에 걸린 경우, 당해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 근로자가 여러 사용자 아래에서 경험한 모든 업무를 포함해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는 점(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두5794 판결, 대법원 2017. 4. 28. 선고 2016두56134 판결 등 참조), ② 뇌·심혈관계 질환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는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내부적인 업무처리 지침이나 행정규칙이므로 근로복지공단이 해당 고시를 적용하여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을 하였더라도 법원은 항고소송에서 고시의 내용과 개정 취지를 참작하여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판단할 수 있고,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해당하는지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환경,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하며,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할 때 하나의 고려 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판결, 대법원 2022. 2. 11. 선고 2021두45633판결 참조)을 재차 확인했다.
이러한 전제에서 대상 판결은 원고의 업무시간을 포함하여 이전 사업장에서의 업무와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담당업무의 방식, 성격 및 내용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며 이전 사업장과 비교해 직무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점, 콜센터 상담 업무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 휴게시설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직무 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 조치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고객 응대 근로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보호조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원고가 상당한 기간 고객 응대 근로를 제공하였던 점 등을 근거로 원고의 질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