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인은 펑택시에 소재한 A주식회사의 1차 협력사인 B주식회사 소속 근로자로 2019. 12. 18. 업무용 차량을 운전하여 14시부터 15시 30분까지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진행된 협력사 교육에 참석하였다가 근무지로 복귀하던 중 16:10경 중앙선을 침범하여 반대편에서 마주 오던 트럭과 충돌한 후 이 사고 직후 발생한 화재로 사망하였다.
- 망인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이 중앙선 침범에 따른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의 범죄행위를 원인으로 사망하였기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행하였다.
- 이에 유족은 망인이 협력사 교육에 회사가 제공한 업무용 차량을 이용하여 참석했다가 회사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으므로 업무수행 중의 사고이며, 비록 망인이 중앙선을 침범하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해당 사고가 오로지 망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의 범죄행위에 기인하였다고 볼 명백한 근거가 없으므로 망인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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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의 현실화가 아닌 업무 외적인 관계에 기인하는 행위 등을 업무상 재해에서 배제하려는 것으로, 우연성 결여로 보험사고성이 상실되거나 보험사고 자체의 위법성에 대한 징벌이 필요한 경우에는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대법원 1990. 2. 9. 선고. 89누2295 판결, 대법원 1995. 1. 24. 선고 94누8587 판결 등)
대상판결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의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이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 근로자가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 해당 사고가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고가 중앙선 침범으로 일어났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아니 되고, 사고의 발생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① 망인이 출장업무를 마치고 업무용 차량을 운전하여 돌아오던 중 사고가 발생한 점, ② 사고 당시 망인이 중앙선을 침범하였으나, 중앙선 침범 이유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점, ③ 혈액감정 결과 망인의 음주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점, ④ 수사기관이 사고의 원인을 졸음운전으로 추정한 점, ⑤ 망인이 1992년 운전면허 취득 이후 교통법규 위반 및 교통사고 이력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이 교통사고 및 망인의 사망이 범죄행위가 직접적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해당 사고는 근로자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보아 망인의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대상판결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이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라는 것을 재확인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위 사진은 이 사건과 관련 없음(출처=이미지투데이)
3. 근로복지공단 지침의 문제점과 반복되는 법적 분쟁
고용노동부는 2019. 8. 8. ‘법령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근로복지공단에 시달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음주운전, 중앙선 침범, 무단횡단 등 법령위반 행위에 따른 근로자의 과실과 업무수행이 경합한 재해에서 위 지침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불승인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특히나 음주운전, 중앙선 침범 등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각호에 해당하는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또는 출퇴근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에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 원칙적으로 중과실에 의한 범죄행위로 보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사고 발생 회피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었음을 근로자가 입증하거나 재해조사를 통해 확인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법원은 근로자의 음주운전 등 범죄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고를 유발한 정도가 아닌 이상, 사고 발생에 근로자의 범죄행위 등 과실이 경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경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두4216 판결, 대법원 2017. 3. 30. 선고 2016두31272 판결 등)
구체적으로 ① 무면허로 사업장 소유 오토바이를 타고 식당으로 가던 중 도로에 있던 모래 때문에 넘어지면서 사망한 사례(수원고등법원 2020. 10. 21. 선고 2020누11684판결), ② 신입 근로자가 회식 다음 날 지각을 하게 되자 술이 덜 깬 상태로 과속 운전을 하다 중앙선 침범 사고로 사망한 사례(서울행정법원 2021. 5. 13. 선고 2020구합 83805 판결), ③ 택시기사가 업무 중 제한속도보다 20km 이상 과속하던 중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사례(서울고등법원 2022. 4. 8. 선고 2021누58150판결) 등에서 근로자의 위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반면에 회식 과정에서 음주 후 혈중 알콜 농도 0.205%의 만취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하여 기숙사로 돌아가던 과정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사망한 사례(대법원 2009. 4. 9. 선고 2009두508 판결)에서는 음주운전을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보아 업무상 재해를 부정했다.
4. 산재보험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한 근로복지공단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법령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의 필요성으로 행정처분의 일관성 확보와 신뢰도 제고를 들고 있다. 행정 처리의 효율성과 일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우선 되어야 할 가치는 산재보험법의 입법 취지 및 목적일 것이다.
산재보험법 제1조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법원 또한 관련 판결을 통해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고의 발생 원인으로 조금이라도 경합되거나 기여한 바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고 발생의 경위, 범죄의 경중, 그 결과로서 근로자가 입은 재해, 범죄행위의 피해 발생에 대한 기여도 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업무상 재해의 발생이라는 기존의 정당한 평가를 모두 뒤집는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서울고등법원 2022. 4. 8. 선고 2021누58150 판결)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의 판단이 계속하여 엇갈릴 경우,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강조하는 행정처분의 신뢰도 제고를 담보할 수 없을 것이며,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됨에 따라 그 궁극적 피해는 산재 근로자와 그 가족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금이라도 근로복지공단이 설립 목적과 산재보험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태도 변화를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