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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 잔혹사, ‘국정농단 시즌2’가 우려된다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2본부 부장

등록일 2023년05월09일 16시4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의 노후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수단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이를 망각한 채 임의로 활용하고자 하는 추태를 종종 벌여왔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을 제일모직-합병사태에 악용하는 국정농단을 일삼다가 탄핵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하였다. 이후 국민연금기금은 2018년부터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수탁자 책임 활동 강화, 기금운용체계 개편 등 다양한 개선방안을 실행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망령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권은 국민연금기금과 관련된 개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국정농단 시즌2’의 서막이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우려되는 행보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해촉했다. 위원으로서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노동계 위원을 해촉한 초유의 이 사건은 보건복지부가 노동계를 얼마나 껄끄러워했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23년 1분기에 일어난 일을 복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노동계가 추천하는 위원들의 선임을 근거 없이 미루고 막으려 했다. 우선 상근전문위원 선임과 관련된 부분이다. 상근전문위원은 노동계와 사용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가 추천하여 3인으로 구성되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실무 전반에 관여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기존 상근전문위원들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1월 초부터 각 단체가 위원을 추천하였는데 노동계가 추천한 위원만 선임하지 않고 사용자단체와 지역가입자단체 추천 2인만 선임하였다. 사용자단체가 추천한 사람 중 굳이 검찰 출신의 인사를 선임한 것도 논란이었지만, 노동계 추천위원만 선임하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어 실무평가위원회에도 노동계 추천위원을 선임하지 않았다. 한국노총 공공연맹에서 추천한 한 전문가가 3회 연임이라며 보건복지부는 규정을 이유로 다른 전문가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존재하지 않는 규정이다. 실무평가위원회는 국민연금법상 ‘중임할 수 있다’고 되어 있을 뿐 횟수에 대한 제한은 없는데, 복지부는 ‘암묵적 규정’이라며 위원추천을 철회해 달라거나 추천된 전문가에게 사임을 압박하는 등 통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했다. 이어 여당 의원을 통해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사실상 가입자단체의 위원추천 권한을 제한하려고 하고 있다.

 

▲ 3월 29일 열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직권남용 고발’ 기자회견

 
노동계 위원 찍어내기 공작 이후에 더 큰 문제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일어났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심층 검토하는 수탁자책임 전문 위원회(이하 수책위)의 규정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개정의 핵심 내용은 수책위 구성을 변경하여 전문가 3명을 추가로 투입하되 추천권은 보건복지부가 쥔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원하는 사람을 선임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수책위 위원은 가입자가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하여 정부나 가입자단체로부터 최대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를 훼손한다. 사실상 거수기 역할만 하는 전문가 기구를 앞세워 정부가 수책위 의사결정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절차적으로도 문제였다. 보건복지부는 수책위 위원 구성변경 안건을 회의 하루 전날 기습적으로 알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을 무시하고 표결을 통해 해당 안건을 강행 처리했다. 기금위에서 심의·의결의 대상이 되는 안건은 일주일 정도 여유를 두고 사전 설명을 하고, 실무평가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검토한 이후 기금위에 상정하게 된다. 안건에 대해 이견이 큰 경우 복지부 장관은 다음 회의에 안건을 재부의하는 등 추가적인 절차를 거쳐왔다. 지난 십 수년간 이어져 온, 사회적 합의를 통해 위원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취지를 그날 단 하루 만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무너뜨렸다.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태 되돌아보기

 

이 문제의 책임은 보건복지부 장관, 나아가 윤석열 정권에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할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요식행위로 전락시켜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고, 이를 사실상 정권이 용인해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탁자책임 전문 위원회가 혹시라도 정권의 입맛과 다를까 하여 제2의 안전장치로 ‘건강한 지배구조 개선 위원회’라는 뜬금없는 프로세스까지 만들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때 국민연금이 정경유착의 도구로 활용되어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바 있다. 당시 이재용 삼성그룹 승계작업을 위해 벌어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삼성은 제일모직의 자산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의 자산가치를 낮춰 합병비율 산정을 조작했다. 당시 국민연금도 이미 내부보고서를 통해 상황을 알고 있었고 의결권행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및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반대의 가능성이 농후하자 당시 청와대의 지시로 문형표 장관과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합작하여 기금운용위원회가 아니라 기금운용본부 내부 투자위원회를 통하는 우회 전략으로 내부보고서를 조작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최대 주주로서 손해를 입게 됨에도 합병에 찬성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약 4,868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노동·시민사회의 감시와 목소리 필요해

 

이 일은 왜 잘못된 일인가. 정권의 지시대로 국민연금을 악용하고자 하는 도덕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해진 절차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절차적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실질적 기금의 주인인 국민연금 가입자, 나아가 국민 전체가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연금이 악용된 비극을 막고자 마련된 장치를 없애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정농단 시즌2가 곧 열릴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와 서민이, 시민이 함께 국민연금기금을 감시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이, 우리의 노후자금이 정권과 자본 손에 놀아나지 않도록 우리가 두 눈 똑똑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이 권력자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한국노총의 노력이, 노동·시민사회진영의 공동행동이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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