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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영화>와 <오마주>, 그리고 올해 마주친 영화들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등록일 2022년12월08일 12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팬데믹과 함께 한지 어느덧 3년, 영화계 역시 많은 변화를 겪으며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또 보내왔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의 제작과 개봉이 미뤄지고 산업이 주춤대는 한편, 팬데믹 상황 자체가 영화 안팎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한국 영화 역시 마찬가지의 진동을 겪었다. 그러는 동안 올해는 여러 대작이 극장가를 찾기도 했다.

 

<범죄도시2>(연출 이상용)라는 천만 영화가 탄생했고, <헌트>(연출 이정재)나 <비상선언>(연출 한재림)처럼 대규모 블록버스터가 개봉하기도 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무언가 숨 가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국영화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악인과 재난을 호출하고 강력한 영웅과 리더의 존재를 갈망하고 있는 것만 같다.

 

<범죄도시2>의 주인공 마석도(마동석)는 나쁜 놈을 맨손으로 때려잡고, <한산: 용의 출현>(연출 김한민)은 성웅 이순신을 스크린에 불러온다. 개봉 시기가 한참 늦춰진 <비상선언>은 비행기 테러라는 초유의 재난 상황을 통해 우리 시대의 크고 무거운 비극인 코로나19와 세월호 참사의 그림자를 동시에 호출한다. 비행기 내부와 외부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상황과 혐오의 풍경은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등 스타 배우를 대거 기용한 멀티캐스팅과 어우러지며 우리가 근래 보아온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한꺼번에 재현한다.

 

영화는 추락하는 비행기의 스펙터클까지 선보이며 온갖 종류의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참으로 숨 쉴 틈이 없다. 악인과 재난의 영화들은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국가의 역할을 묻는다. 국민을 지키는 국가라는 실체가 과연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영화의 흥행 여부 혹은 작품에 대한 비평적 판단과 별개로, 우리 시대의 지난하고도 긴급한 질문일 것이다.

 

△ 헌트(출처=다음영화)
 

<킹메이커>(연출 변성현)와 <헌트> 같은 영화들은 한국 근현대사가 여전히 한국 영화의 무궁무진한 무대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들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질 어떤 풍경들을 발견한다. 박정희 시대의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모티프로 한 인물 김운범(설경구)의 대선 도전과 선거 참모 엄창록(이선균)의 이야기를 다룬 <킹메이커>는 두 남자의 정치적 행로와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질문을 스크린에 새긴 스타일리쉬한 시대극이다.

 

<헌트>는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1980년대 초를 배경으로 삼는다. 안기부의 두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충돌을 골자로 간첩 색출, 독재정권, 민주화운동 등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불러내는 영화는 총격과 도주의 액션이 최대치로 허용되는 무대의 이점을 남김없이 활용한다. 영화가 그리는 취조실의 풍경은 흡사 거대한 스튜디오 같다. 이곳이 세공된 무대라는 걸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다만 손에 피를 묻힌 남자들은 그곳에서 즐겁게 뛰노는 대신 어두운 얼굴로 뒤돌아선다. 영화는 여전히 역사적 질문과 상흔을 마주하는 법을 느리게 배워가는 중이다.

 

연말을 맞아 거칠게나마 올해 만났던 야심 찬 한국 영화들을 복기해보던 중, 영화 매체의 곤란을 직면하고 속성을 탐구해보는 작품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총칼, 악인, 재난, 영웅, 리더, 공분, 절망, 시의성 있는 대사들을 모두 걷어낸 자리에서 묵묵히 영화란 무엇인지 곱씹는 작품들, 극장의 위기가 매일같이 논해지는 시기에 영화 본연의 문제로 돌아가는 작품들 말이다.

 


△ 소설가의 영화(출처=다음영화)
 

올해는 홍상수의 영화 두 편이 개봉했다.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영화 만들기를 희망하는 소설가 준희(이혜영)의 시간을, <탑>은 영화 만들기가 어려워진 영화감독 병수(권해효)의 시간을 따른다. 둘 다 흑백으로 찍혔고, 최소한의 제작진만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언젠가부터 홍상수의 영화에서 눈에 띄는 단락 구조나 시공간의 뒤틀림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배우의 존재와 연기가 이전보다 더 두드러진다. 영화는 단출하다. 몇 번의 긴 대화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같은 것들로 영화는 구성된다. 그런데도 이상한 찰나의 순간들이 출몰한다. 그 이상함에 집중해보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최적의 방법일 수 있다.

 

<소설가의 영화>는 준희가 서울 근교의 어느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준희가 만나는 건 과거의 지인들이기도 하고, 처음 만나는 어느 배우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오가는 대화들은 과거의 어느 일들을 주제로 삼고 있으나, 그 과거와 우리 눈앞의 현재가 매끄럽게 맞붙는 때는 없다. 소설을 안 쓴 지 오래됐다는 준희에게 누군가는 얼마 전에 쓰신 책을 읽었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을 법한 이 기묘한 순간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가 다양한 영화를 통해 자주 접해왔던 바와 달리, 카메라는 사실상 과거를 볼 수 없다.

 

관객이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을 순서대로 인지할 수 있는 건 영화와 관객 사이에 일종의 약속이 맺어졌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일, 편집을 통해 구조화된 시공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약속 말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영화가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지어졌다. <소설가의 영화> 속 유리창 소녀는 불현듯 카메라와 관객의 존재를 상기하게 만들며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이상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오직 4층짜리 건물에서 진행되는 <탑> 역시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이라는 관념을 기묘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흥미로운 영화다.

 


△ 오마주(출처=다음영화)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는 영화감독 지완(이정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로 이정은이 런던아시아영화제,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등에서 배우상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완은 세 번째 영화를 막 개봉했지만 흥행은 먼 나라 얘기다. 남편과 아들은 밥 달라고 난리고, 동료 프로듀서도 이제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계속 영화할 수 있을까? 지완은 불확실한 질문을 붙들고 하루를 보낸다.

 

그녀는 그러다 <여판사>라는 50년도 더 된 영화의 더빙 연출을 맡게 된다. 국내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 홍재원의 영화다. 홍재원은 실제로 1960년대에 활동한 홍은원 감독을 모티프 삼은 인물인데, <여판사> 역시 최근 필름이 발견돼 복원 작업이 이뤄졌다. 지완은 영화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50년 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과 장소들을 찾는다.

 

이 여정은 때로 죽음과 유령의 행로가 된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건 50년 전의 홍재원 역시 지완처럼 계속 영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던 고독하고 쓸쓸한 영혼이었다는 사실이다. 꿈꾸는 여자로 살아남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다.

 

<오마주>는 사위어가는 잔해 속에서 꺼지지 않는 영화의 불꽃을 발견한다. 시나리오와 촬영, 편집과 영사를 거쳐 스크린에 어른거리는 형상은 과거의 한 시간에 박제되지 않고 몇 번이고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오마주>는 이야기한다. 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완의 행로가 내년에도 계속해서 이어져갈 수 있기를 염원하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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