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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2022)

목격자의 눈과 증거의 문제

등록일 2023년02월07일 10시5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올빼미>는 지난해 말 개봉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흥행하며 관객을 만나온 영화다. 이제는 극장보다 각종 OTT 사이트나 IPTV를 통해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됐지만, 작품 곳곳에서 눈에 띄는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을 정리해보며 새해의 영화를 맞이할 준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올빼미>는 인조실록에 남겨진 짧은 기록에서 출발해 그 여백을 상상으로 채워가는 사극이다.

 

그 기록이란 인조의 아들이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에 관한 것이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고 수일 만에 죽었는데,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소현세자가 앓았다는 병은 학질(말라리아)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그 죽음에 미처 전해지지 못한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내용을 채워간다.

 

영화의 주인공은 그러한 궁중 비극과는 사뭇 동떨어져 보이는 침술사 경수(류준열). 그는 봉사, 즉 시각장애인이다. 그런데 여기엔 독특한 설정이 하나 있다. 경수는 빛이 있는 곳에서는 다른 맹인들처럼 앞을 전혀 볼 수 없지만, 빛이 하나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다. 야맹증과 반대의 증상을 보이는 ‘주맹증’을 지닌 것이다. 집중하면 삐뚤빼뚤 글씨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눈앞의 광경을 분간할 수 있으니, 영화의 제목인 ‘올빼미’에 썩 어울리는 주인공인 셈이다.

 

경수는 가난한 침술사다. 아픈 동생과 힘겹게, 그러나 다정하게 사는 그는 번듯한 집을 얻고 동생의 병을 고칠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여기고 있다. 마침 궁에서 의원과 침술사를 뽑는다는 소식이 들리고, 예리한 촉과 탁월한 침술로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눈에 든 경수는 입궐하여 내의원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해가 지고 촛불이 모두 꺼진 밤, 그러니까 어두울 때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비밀이 많은 궁에서 종종 앞 못 보는 침술사를 요긴하게 데려다 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출처=다음영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궁에서 더 많이 보는 사람은 그만큼 더 위험한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각종 대중매체에서 궁궐은 그 광활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폐쇄적인 공간처럼 그려지곤 한다. 도통 빠져나갈 구석은 없는 데다, 너무 많이 본 것에 대한 대가는 때로 눈을 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뜨거운 인두를 죄인의 눈앞에 가져다 대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못 본 척, 모르는 척 사는 건 경수가 나름대로 익힌 삶의 지혜다. 그의 말처럼 “소경이 보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한편 영화는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을 따라가며 그가 듣고 느끼는 풍경을 그려내는 데 열중하기도 한다. 경수가 처음 내의원에 발을 딛고 각종 소리를 통해 공간을 파악하는 장면은 관객의 귀 역시 자극한다. 어쩌면 이러한 캐릭터의 상태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는 ‘본다’는 감각의 관습적 면모에 거리를 두고 다른 감각을 여는 실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감각하는 다른 방법에 영화는 과연 어떤 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상상이다. 하지만 경수는 어두운 곳에서는 말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이기에, 그러한 가능성은 곧 수그러든다.

 

눈의 문제를 지닌 경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지만,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건 결국 그가 어떤 것은 목격하지 못하고 또 어떤 것은 더 잘 목격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속성이 영화 속에서 주요하고 결정적인 국면을 만들어간다. ‘영화’란 결국 시각에 집중하는 혹은 의존하는 매체이기 때문일까?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한편 <올빼미>에서 ‘본다’는 문제는 조금 결을 달리해 다시 등장한다. 경수가 내의원 생활에 적응해갈 때쯤 소현세자(김성철)가 돌아온다.

 

그는 청나라가 받아들인 서양 문물을 접하며 더 큰 세상을 보고 왔다. ‘명이 망하고 청이 천하의 주인’이 된 상황에서도 아직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믿는 인조(유해진)는 세자가 청나라에 관해 말하는 걸 듣고 있는 것조차 굴욕으로 여긴다. 인조는 아들의 눈을 알아본다. “너 눈이 바뀌었구나.” 안타깝게도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경수는 우연한 계기로 세자를 진찰하고 침을 놓다가 그에게 비밀을 들키고, 비밀은 곧 작은 우정이 된다. 여전히 못 본 척, 모르는 척 사는 것을 미덕이자 지혜로 여기는 경수는 세자의 몸이 허한 것을 “올곧게 다 보고” 살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물론 세자는 “그럴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살고자 하는 인물이다.

 


(출처=다음영화)

 

이러한 대사는 물론 더 큰 세상을 보고, 세상의 흐름을 읽으며, 다가오는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소현세자의 등장과 함께 시야의 문제를 언급한 뒤, 다시 눈의 문제로 돌아간다. 누군가의 계략으로 소현세자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촛불이 꺼진 탓에 경수가 은밀한 목격자가 된 것이다. 이제 경수는 자신이 본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진실을 밝히는 건 물론이고 그 자신의 누명 또한 벗기 위해서. 차곡차곡 드라마를 쌓아오던 영화는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스릴러의 모양새를 띤다. 숨 가쁜 추격, 오해와 반전, 최후의 반격까지 다양한 요소가 짜임새 있게 맞물리며 극을 이끈다. 그런데 이 모든 동선의 중심에 목격과 증명의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영화는 증거의 보존 및 이동과 폭로 등을 작품의 전략으로 삼아왔다. <택시운전사>(장훈, 2017)의 필름, <1987>(장준환, 2017)의 문서, <내부자들>(우민호, 2015)의 영상 등은 그 자체로 정의의 분신이며,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열쇠로 사용됐다. 영화는 그러한 증거의 이동으로 인해 생성되는 액션이나 증거가 폭로되는 순간의 스펙터클을 용의주도하게 활용해왔다. 그런데 증거가 정말 그렇게 모든 갈등을 한꺼번에 해소하며 판도를 뒤집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섣불리 답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전략을 극의 중심으로 삼는 영화들이 사회, 역사적 상황에 관여하는 다른 여러 역동적 관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명백하고 객관적인 증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양상은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2017)처럼 법정을 호출하는 영화들이 자꾸 등장하는 것이나, <베테랑>(류승완, 2015) 후반부에 등장하는 한 장면처럼 다수의 사람들에게 악인의 인성이 까발려지는 상황을 담은 장면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엔 중립적 눈이라는 신화가 있다.

 


(출처=다음영화)

 

<올빼미> 역시 객관적인 증거를 믿는다. 천한 신분인데다 소경이기까지 한 목격자의 말만으로는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지만, 세자 독살에 관련된 물적 증거는 왕위에 대한 협상을 이끌어낼 정도로 강력하다. 경수는 그가 본 것은 물론 자기 자신도 증명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영화가 근거로 삼는 것은 눈과 증거에 관한 통상적 이해가 아니라 지난 시기 비슷한 소재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뤄왔던 한국영화다.

 

때로 그러한 영화들은 투명한 눈과 명명백백한 증거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유일한 요소로 밀어붙이면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여러 관계의 문제들을 외면한 것처럼 보였기에 의심스러웠다. <올빼미>는 증거가 통쾌한 한 방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결국 무력한 종잇조각에 불과해지는 순간을 담아낸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다음에 올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가 또 어떤 방식으로 증명과 증거의 문제를 언급하며 다루는지를 목격하며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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