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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필요 없는 노동자

박희숙 <교과서 속 구석구석 세계명화> 저자, 화가

등록일 2022년11월02일 10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사회는 초보자보다 경력자를 원한다. 일이 숙련도에 따라 생산성에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 수습이나 인턴 제도를 거치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전문가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임금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곧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들은 경험을 쌓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접시닦이 하녀>


1710~1715년, 캔버스에 유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숙련도가 필요 없는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소녀를 그린 작품이 그레스피의 <접시닦이 하녀>이다. 여인이 커다란 발판 위에 서서 등을 돌리고 개수대에서 접시를 닦고 있다. 발판은 나이가 어린 소녀라는 것을 나타내며,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과 허리에 묶고 있는 앞치마는 그녀가 하녀라는 것을 보여준다.

 

화면 왼쪽 탁자에 세워져 있는 푸른색 접시는 설거지가 끝나 물기를 빼고 있는 중이다. 개수대에 옆에 있는 나무 솔은 접시에 눌어붙은 음식을 닦는데 쓴다. 화면 오른쪽 빨간 불꽃은 난로이며, 추운 날씨라는 것과 소녀가 일하고 있는 장소가 부엌 귀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소녀 머리 위 선반에 쌓여 있는 질그릇과 걸려 있는 두 개의 냄비는 잘 정돈된 주방이라는 것과 소녀의 깔끔한 성격을 드러낸다.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소녀의 걷어 올린 소매와 드러난 팔은 소녀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화면 오른쪽 난로 앞에 있는 의자는 소녀가 하루종일 설거지하는 중간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다. 의자 위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는 힘든 생활 속에서 소녀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다.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1665~1747>는 소녀의 뒷모습을 통해 이름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타내고자 했다.

 

 

<비질하는 사람과 물동이를 진 사람>


1910~11년, 종이에 과슈, 스위스 로젠가르트 갤러리 소장

 

경력이 없고 나이가 어린 소녀들은 중산층 가정에 하녀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지만, 소년들은 마땅히 일할 곳이 없었다. 농사, 축산 등등 그런 곳은 대부분 가족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 없는 소년들이나 땅이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물장수밖에 없었다. 물장수는 건강한 육체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서다.

 

가난한 물장수를 그린 작품이 샤갈의 <비질하는 사람과 물동이를 진 사람>이다. 붉은색 웃옷을 입은 남자가 집 앞에서 빗질하면서 웃고 있고, 도로에는 물동이를 지고 가는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집들이 있다.

 

붉은색 웃옷을 입은 남자가 녹색 잔디에 있는 것은 집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빗자루가 잔디 밖에 있는 것은 집 앞 도로를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동이를 지고 있는 남자는 물 배달원이며, 기울어진 어깨는 물동이가 무겁다는 것을 암시한다.

 

길 건너편 집 창문이 검은 것은 새벽이라는 것과 빗질하는 농부가 부지런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농부가 빗질을 하면서 웃고 있는 것은 물 배달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을 믿어서다. 물 배달은 새벽에 했었다.

 

마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는 러시아 유대인 공동체 마을을 나타내는데 동유럽 유대인 사회에서는 물 배달하는 사람들이 제일 하류층이었다.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 샤갈<1887~1985>도 물 배달하는 사람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샤갈의 초기 작품에서 물동이를 진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이 작품에 비질하는 사람이 웃고 있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믿음을 나타냈다.

 

 

<기운 빠진 늙은 물지게꾼>


1822년, 캔버스에 유채, 릴 미술관 소장

 

기술 없이 하는 노동의 한계는 나이 들수록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육체적 한계 때문에 고용주들이 꺼리게 되기 때문이다. 기술이 없어 힘든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노인을 그린 작품이 일레르 르 드뤼의 <가운 빠진 늙은 물지게꾼>이다.

 

물지게를 진 노인이 계단에 앉아 있고 젊은 아가씨가 손수건으로 노인의 관자놀이를 닦아 주고 있다. 두 사람 뒤에는 어린아이가 물그릇을 손에 들고 집에서 나오고 있다. 열려 있는 문을 잡은 여인이 노인을 바라보고 있다.

 

물지게를 지고 있는 노인은 물장수이며, 헤진 옷과 구두는 그가 가난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노인은 물을 배달하다가 쓰러져 계단에 앉아 있다. 소녀가 그런 노인을 관자놀이에 손수건을 대며 보살피고 있다.

 

어린아이가 물그릇을 들고 나오는 것은 늙은 물장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이다. 문을 열고 있는 여인의 손과 표정은 쓰러진 물장수를 보고 놀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높은 층에 물을 배달하는 것이 조금 더 돈을 받았다.

 

일레르 르 드뤼<1776~1840>는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기에 힘들게 물 배달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불쌍히 여겼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젊은 아가씨가 쓰러진 물장수를 보살피는 것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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