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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1997)와 <스파이의 아내>(2020)

찢어진 개인들의 세계

등록일 2022년07월28일 08시5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큐어>는 일본의 중견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의 1997년 작으로, 올해 7월 한국에서는 뒤늦게 정식으로 개봉했다. 뒤늦은 개봉이라고는 하지만, 영화제와 특별전 등을 통해 종종 소개되곤 했던 이 영화는 <강령>(2000), <회로>(2001), <절규>(2006) 등과 함께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 스릴러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는 시대의 변화, 사회와 인간의 관계, 또 인간들 사이의 관계 등을 다양한 장르를 통해 탐구해왔다. <도쿄 소나타>(2008)에선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족을 묶어두는 관성이 폭력적으로 깨어지는 순간을 다뤘고, <산책하는 침략자>(2017)에서는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관계의 근본적인 균열을 말했다. 시대극인 <스파이의 아내>(2020)에서는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그처럼 변화하는 세계 앞에 선 여성의 얼굴을 그려냈다.

 

한편, 2016년엔 프랑스에서 <은판 위의 여인>을, 2019년엔 우즈베키스탄을 배경으로 <지구의 끝까지>를 찍었다. 단지 일본만이 그의 무대는 아닌 셈이다. 이처럼 쉼 없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만큼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는 종종 극과 극을 달린다. 그의 어떤 작품은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동시대 관객들에게 뜨거운 환대를 받지만, 또 어떤 작품은 철저히 외면받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건, 그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거리, 마주 본다는 행위에 깃든 불안과 불안정성, 개인과 외부 세계의 마찰을 자신만의 영화 언어로 표현해왔다는 점이다.

 


큐어(출처 : 다음영화)

 

20세기 끝 무렵에 찍은 기이한 연쇄살인에 관한 영화인 <큐어>를 말하기에 앞서, 국내에 소개된 가장 최근작인 <스파이의 아내> 이야기를 먼저 하는 편이 좋겠다. 두 작품 사이에는 20년 넘는 시차가 있는 만큼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다. 특히 주인공의 캐릭터를 살펴볼 만하다. <큐어>에서 사건의 어둠 속을 더듬다가 자신에 대해 질문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던 남자는, <스파이의 아내>에서 타인과 세계를 끊임없이 두드리고 궁금해하는 여자가 됐다. 한편 구로사와의 주인공들은 그 성격이나 상황이 어떻든지 끝내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이해나 상대와의 평온한 합일 상태에 다다르지 못한다. 심지어 줄거리와 대사가 그러한 이해와 화해, 결합을 지시해도, 촬영과 편집이 인물들을 찢어놓기에 그들은 언제나 불길한 긴장 상태에 있다.

 

<스파이의 아내>는 1940년의 일본 고베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여기서 아슬아슬한 세계정세와 첩보 활동의 묘사보다 더욱 짙게 영화를 휘감고 있는 건,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알 수 없는 내면에 대한 불안, 전쟁의 침투로 인한 삶의 불안정함처럼 좀처럼 시각화하기 어려운 정념과 상태다. 주인공은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와 그의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다. 이들은 자국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는 와중에도 나름의 평온한 생활을 유지 중이다. 부부의 지인인 헌병대 대장 타이지(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부부를 예의주시하는 와중에, 무역 업무로 외국인을 만나고 직접 외국에 나가기도 하는 유사쿠가 종종 스파이 활동의 의심을 받는다. 유사쿠가 만주에 다녀온 뒤, 이들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타이지가 사토코를 따로 불러 유사쿠가 아내인 사토코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걸 암시한 것이다.

 

사이좋은 부부답게 유사쿠는 곧 사토코에게 만주에서 본 참혹한 광경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 자국의 만행을 알리겠노라고 이야기한다. 사토코는 스파이의 아내가 되어, 스파이의 아내로 살아갈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상황과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영화의 긴장감을 구성하는 듯 보인다. 밀반입된 비밀 서류, 의문의 죽음, 도피, 의심, 발각 등 첩보물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고, 시대극 특유의 볼거리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스파이의 아내>의 가장 거대하고 육중한 서스펜스는 보이지 않는 심연에 있다. 부부는 서로 믿는다는 단언을 스스럼없이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럴까.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부부는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따로 행동하게 된다. 그런 뒤 펼쳐지는 일들을 보고 있자면, <스파이의 아내>를 마지막까지도 끝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이야기로 생각하게 된다.

 


스파이의 아내(출처 : 다음영화)

 

부부가 ‘스파이’ 활동을 할 때 중요하게 등장하는 사물이 바로 필름이다. 이들은 만주에서 촬영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 낱낱이 담긴 필름을 해외로 반출하고자 목숨을 건 도박을 한다. 필름을 영사해서 볼 수 있는 건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기술 수준이 그리 좋지 못한, 저화질의 영상이다. 이는 영화에서 중요한 증거이자, 특정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동기처럼 기능하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정확히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스파이의 아내>는 본다는 행위들 사이의 차이를 가리키면서, 인간 행동의 동기를 명쾌하게 해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만, 개인이 경험하는 세계의 한계치가 폭발하는 순간과 개인의 살을 찢고 들어오는 외부의 폭력을 응시하면서, 그것들 앞에 선 한 여자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큐어>에는 100여 년 전 찍혔다는 어느 필름을 변환한 비디오가 등장한다. 도저히 규명되지 않는 연쇄살인의 은밀한 기원으로 거슬러 가는 듯한 장면이다. 이 연쇄살인은 매우 독특하다. 영화는 그 연쇄살인의 한복판에서 시작한다. 도쿄에서 연쇄적으로 기이한 살인이 벌어지고 있는 중인데, 특이하게도 범인이 다 다르다. 그런데 양상은 같다. 피해자들의 목이 X자로 그어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인들 각각은 살인을 순순히 인정하고, 도망조차 치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형사인 타카베(야쿠쇼 코지)는 이 살인을 규명하고 싶다. 정신과 의사인 친구 사쿠마(우지키 츠요시)에게 트라우마며 최면에 관해 질문하면서까지, 타카베는 이 괴상한 현상의 원인에 다가가고자 애를 쓴다.

 


큐어(출처 : 다음영화)

 

그냥 터벅터벅 걸어가서 텅 빈 얼굴로 사람을 살해하고 목에 상처를 내는, 자신의 의지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살인범들은 실은 전부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라는 남자를 만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타카베도 곧 마미야를 만나게 된다. 마미야는 “당신은 대체 누구지?”라는 선문답 같은 말로 상대의 머릿속을 헤집은 뒤, 불이나 물과 같은 물질을 통해 최면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는 게 여기선 중요하다. 타카베는 그렇게 결론 내린다. 최면술에 미친 의과대 학생이 살인 교사를 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이 범죄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 때로는 마미야조차도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며, 사쿠마의 말처럼, “범죄의 동기는 타인뿐 아니라 때로는 본인도 모른”다. 타카베는 그 무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에,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와 자신의 소원한 사이마저도 범죄나 저지르는 한심한 인간들 탓으로 돌리고 말아버린다.

 

그러나 이 세상은 혼돈이다. 정확히 대응되는 원인 없이도 대낮에 사람이 찔려 죽는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 빛바랜 비디오 화면으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는 낡은 축음기로 그 근원을 찾아보려 하지만, 이미 세상에 흩어져버린 빛과 소리 조각들은 답을 주지 못한다. 정교하고 세련된 공포, 스릴러물의 작법으로 기이한 연쇄살인과 일상의 불안을 다루고 있는 <큐어>는 분명 재밌게 또 흥미롭게 즐길만한 영화다. 그리고 동시에 단숨에 소화할 수 없는 이상하고 질긴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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