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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타임(2021)

일의 좌절과 슬픔

등록일 2022년09월01일 13시3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풀타임>은 계속해서 내달리는, 쉼 없이 몰아치는 영화다. 여기서 잠시 숨 고를 시간은 영화가 시작하고 단 몇 초뿐이다. 주인공이 잠들어있는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벼락같은 알람 소리가 주인공과 우리를 함께 깨운다. 여기서부터 쥘리(로르 칼라미)의 전쟁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그녀의 하루는 말 그대로 ‘풀타임’ 노동으로 채워져 있다. 5성급 호텔에서 중간 관리자 포지션의 룸메이드로 일하는 시간뿐 아니라, 일터로 이동하는 시간, 잠시 짬을 내서 면접을 보는 시간, 두 아이를 돌보는 시간까지, 그러니까 제대로 셈해지지 않고 인정되지 않는 노동의 시간, 노동을 위한 시간이 빼곡하다. 그러나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쥘리는 그렇게 몰아치듯 살아야만 겨우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의 집은 교외 지역에 있고 직장은 파리 시내에 있는 탓에 출퇴근 역시 전쟁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정신없이 준비해서 옆집에 맡기고 나와도 여전히 어두컴컴한 새벽이지만, 파리행 열차를 타고 일터에 도착하면 세상은 어느새 환해져 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직장을 나서도 집에 도착해 옆집 문을 두드리면 새카만 밤, 온종일 아이들을 맡기는 건 이웃 간에 피차 서로 못 할 짓이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쥘리의 삶이 더 나아질 여지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교통편이 묶여버린다. 파리행 열차는 하나둘 지연되더니 결국 취소돼버리고, 대체버스도 한 대나 간신히 운영될까 말까다. 프랑스 전역에서 파업 시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영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서 감독상과 여자 연기자상을 받은 <풀타임>은 일명 프랑스의 ‘노란 조끼’ 반정부 시위와 파업의 여파가 도시를 덮친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영화는 그러한 풍경을 기록 영상처럼 보여주거나 적극적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택하지는 않는다. 대신 라디오와 TV 뉴스를 통해 영화의 배경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시위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든지, 경찰의 무력 진압이 문제가 됐다든지, 저항의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됐다든지 하는 소식이 끊임없이 매체를 통해 흘러나온다. 라디오에선 이따금 “현실에선 죽지 못해 살아요!” 하는 절규가 들려오기도 한다. <풀타임>에선 이러한 배경과 주인공의 관계를, 영화가 현실의 조건을 다루는 방식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재와 전개가 그리 유사하진 않지만, <풀타임>을 보고 떠올리게 되는 영화 중 하나로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이 있다. 우울증으로 회사를 오랫동안 쉬고 막 복귀하려는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가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인력 충원 계획이 없는 회사는 산드라의 복귀와 보너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직원들에게 투표를 강요한다. 산드라는 주말 동안 동료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설득한다. 당연히 이 구도는 부당한 것이며, 선택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회사의 결정은 비판받을만한 것이다.

 

다만 영화는 그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그 어처구니없는 구도를 강요하는 것이 이미 세상의 한 방식이라면,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인간적인 질문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므로 선택이라는 행위를 두고 딜레마를 겪는 인물의 모습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 다르덴 형제의 이전 영화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실존의 문제와 윤리적 질문이 전면에 떠오른다.

 


출처 : 다음영화

 

<풀타임>의 쥘리에게는 딜레마조차 허용되지 않는 듯 보인다. 파리로 갈 모든 수단이 정지된 후, 겨우 이웃의 차를 얻어 탄 쥘리는 운전자와 파업 시위 이야기를 잠시 나눈다. “파업에 참여하러 가세요?” “그러면 좋은데, 직장이 파리에 있어서요.” 영화는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쏟아져 나온 사람들과 쥘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면시키지 않는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현실의 조건은 서사의 굴곡을 만드는 질료가 되지 않는다. 이미 쥘리에게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것과 저것 중 선택해야 하거나, 어떤 것을 포기하고 무언가를 지키기에 쥘리의 삶은 너무나 고단하다. 여기서는 현실의 녹록지 않은 조건들과 함께 말 그대로 하루하루 견뎌내는 게 쟁점이 된다. 파업은 쥘리의 동선에 특이점을 만들어내지만, 여기서 돌출되는 특정한 딜레마나 윤리적 문제는 없다. 그러한 영화의 선택은 오히려 오늘날 노동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것 같다.

 

쥘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슈퍼우먼의 뒷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책임감도 있는 그녀는 매 순간 거의 곡예를 부리듯 일과 상황을 조율하고 처리해낸다. 유명 인사들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5성급 호텔에서 뒤탈 없이 일 처리를 마무리하는 것 하며, 경제학 전공을 살려 다시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 일과 가정을 동시에 건사하기 위해 숨 가쁘게 노력하는 모습 등은 때로 놀랍기까지 하다.

 

한편, 그러한 모습에 슬쩍 가려져 있긴 하지만, 영화가 드러내는 노동의 풍경은 인간에게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구조화돼있다. 무엇보다 쥘리가 일하는 5성급 호텔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존재감 없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곳이다. 체취제거제를 써서라도 존재감을 지워야 한다. 그런데도 해고는 가차 없고, 숙련된 노동자는 거리에 나앉지 않기 위해 애원해야 한다. 쥘리는 한 겹씩 쌓여가는 모멸감과 비참함 속에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매일 목을 조여 오고, 하루에 단 10분의 여유조차 갖지 못한다. 그런데 국가도, 사회도, 주변의 그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출처 : 다음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주인공 산드라의 우울증에 관해 별다른 설명을 할애하진 않지만, 영화 속 여러 단서들은 그 우울증을 사회적 질병으로 보도록 유도한다. 어쩌면 지금의 사회가 그녀에게 우울증을 심었고, 그것은 실업 상태로 이어지며 산드라를 악순환 속에 가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병은 다시 육체적 문제를 야기한다. 그녀의 남편은 “일을 시작하면 다시 눈물이 멈출거야”고 말한다. <풀타임>의 쥘리는 한없이 발버둥 치는 와중에 어느 날 아침 왈칵 눈물을 쏟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을 준비하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는 못한다. 일종의 증상처럼, 신체는 아직 처리되지 못한 문제들을 그렇게 내뿜는다.

 

영화는 말미에 잠시 안도할 수 있는 순간을 마련하지만, 그 또한 출구는 아닐 것이다. “현실에선 죽지 못해 살아요!” 라디오 속 파업 참가자의 외침은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파업의 풍경이, 그것을 야기한 세상의 문제가 그 자체로 쥘리 이야기의 조건임을 드러낸다. 쥘리의 시간은 흡사 지옥과도 같다. 그럼 저 바깥은? 그곳 역시 지옥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쥘리라는 인물을 통해 잠시 지옥 같은 세상의 한 단면을 엿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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