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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노비스(2021)

성취를 향한 깊고 어두운 욕망

등록일 2022년06월08일 09시4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대학 신입생인 알렉스 돌(이사벨 퍼만)은 물리학 전공 수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애쓰는 한편, 교내 조정부에 가입해 학생 선수로서 훈련을 시작한다. 일명 ‘노비스’라 불리는 2군의 신입팀 소속이지만, 엄청난 승리욕으로 무장한 알렉스는 대표팀에 선발되기 위해 고된 훈련을 거듭한다.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점차 조정 선수로서 입지를 다져가는 그녀. 한편, 알렉스는 계속해서 전공 시험을 위해 애쓰고, 학교에서 만난 인연과 연애도 시작한다.

 

언뜻 청춘 스포츠물처럼 보이는 설정이지만, 영화 사운드 디자이너 출신인 로런 해더웨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국내 5월 개봉작인 <더 노비스>는 결코 예상되는 행로를 따르는 눈부신 성장 드라마가 아니다. 이는 오프닝에서 이미 예견되는 지점이다. 알렉스는 전공 시험 시간에는 문제를 세 번이나 다시 풀 정도로 강박적인 학생이자, 조정 훈련 시간에는 육체적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무서운 집념의 소유자다. 영화는 그녀의 예민하고 위태로운 감각을 고스란히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에는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역시 알렉스와 함께 훈련하고 있는 듯 가쁜 호흡을 느끼게 된다.

 

출처: 다음영화
 

질주하는 영화의 리듬과 화면 바깥까지 전해지는 신체적 고통은, 어느 정도 영화가 소재로 삼은 조정이라는 스포츠의 속성에 기인한다. ‘노를 저어 배의 속도를 겨루는 수상 스포츠’인 조정은 역사적으로는 17~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됐고 이후 대학 간 경기를 통해 대중 스포츠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는 수년 전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통해 보다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여러 척의 배가 출발해 순위를 다투고, 또한 각 배의 기록을 재는 방식으로 경기는 이뤄진다. 혼자 배를 타는 ‘싱글’부터 4인승인 ‘포어’, 8인승인 ‘에이트’까지 배에 탑승하는 선수의 수에 따라 그 방식이 다양하며, 한 사람이 쥐는 노의 개수가 한 개인지 두 개인지에 따라서도 형식이 나뉜다. 결승선에 다다를 때까지 노를 저어야 하고, 배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탄탄한 체력과 흔들리지 않는 테크닉이 요구되는 스포츠다. <더 노비스>에는 선수들의 훈련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전부 여성들로 이뤄진 영화 속 조정팀의 훈련은 말 그대로 피, 땀, 눈물의 향연이다. 신체를 단련하고, 더 나은 자세와 기록에 도달할 때까지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은 고통과 성취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조정이 기본적으로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우리가 익히 들어왔거나 혹은 경험했던 팀 내의 규율 역시 곳곳에서 눈에 띈다. 선배들은 무섭고, 단독행동은 금지된다. 하지만 영화가 보다 집중하는 건 ‘선수들’의 생태계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알렉스 쪽이다. 그녀는 조정이라는 특수한 스포츠의 여러 성질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성장하려는 건전한 주인공이 아니다. 비단 훈련의 강도 문제만은 아니다.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남들보다 좀 더 강박적이고 좀 더 노력하는, 그런 조금 특별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출처: 다음영화
 

알렉스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그녀는 오직 남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고등학교 시절, 재능을 타고난 상대방을 엄청난 노력으로 이기는 경험을 한 뒤, 그녀는 인정과 성취감에 중독됐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가공할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심지어 알렉스는 자기가 제일 못하는 과목인 물리학을 전공으로 삼은 뒤, 남들이 걱정할 정도로 학습에 매달린다. 재능과 노력의 좁힐 수 없는 거리, 혹은 각각의 고유한 차이라는 테마엔 언제나 명암이 있겠지만, <더 노비스>는 그중에서도 깊고 끈적한 어둠 속을 헤맨다.

 

기록의 갱신, 대표팀 선발 등 하나씩 성취해야 할 목표가 많은 조정팀 활동 속의 알렉스는 흡사 물 만난 물고기 같다. 그런데 ‘타고났다’는 평가를 듣는 동급생 제이미 브릴(에이미 포사이스)의 존재는 알렉스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넘어 극도의 불안을 야기한다. 제이미와의 승부를 통해 알렉스가 자신을 더 혹사하고 불사르면서, <더 노비스>는 스릴러, 공포의 영역으로 쭉쭉 뻗어나간다.

 

좀 더 단순한 공식을 따랐다면, 알렉스는 팀 내 적수이자 자기보다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인 제이미에게 위해를 가했을 터다. 그러나 이 영화의 공포는 그런 데서 발생하지 않는다. 알렉스는 손이 터져 피가 노를 적실 때까지 연습하고, 시합에서 실수했을 땐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가 문에 머리를 박아댄다. 관객이 일반적으로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쪽은 오히려 재능이 있는 제이미 쪽이다. 그녀에겐 장학금이란 목표가 있다. 부잣집 아가씨들처럼 희희낙락할 수 없다는 걸 매번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제이미는, 그러나 능력에도 불구하고 스포츠팀의 암묵적 서열에 밀리고 마는 어쩌면 평범한 학생이다.

 

출처: 다음영화
 

영화는 종종 알렉스의 광기로 시커멓게 물들지만, 인물에 대한 가치판단까지 하진 않는다. <더 노비스>는 관객이 인물을 쉽사리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도록 구성돼있다. 알렉스의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그녀에게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편들지 않는 연출은 오히려 성취감을 얻는데 강박 돼 있는 한 인물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만든다. 후반부에 이르면 조정팀의 그 누구도 알렉스를 곱게 보지 않는다. 싸이코와는 함께 훈련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 식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까지 만든 걸까? 영화는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설령 알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자연히 영화는 적당한 교훈극과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한다.

 

학업, 운동, 예술 등에서의 성취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혹은 도대체 그 성취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느 선에서 객관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것일까? 알렉스는 자기 기록을 꾸준히 올리면서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속한 곳에서 가장 잘하는 것, 1등이 되는 것, 최고가 되는 것이 그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더 노비스>는 알렉스의 강박과 행동을 통해 노력과 성취에 관한 여러 질문이 던져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서, 기어이 위태로운 길을 가고 그 끝에서 자신을 마주 보며 또 다른 출구를 찾는 인물의 모습에 집중한다.

 

특정 분야에서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의 어두운 면모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 노비스>는 재즈 드러머 앤드류의 강박을 고스란히 담은 <위플래쉬>(데이미언 셔젤, 2014), 발레리나 니나의 복잡한 욕망을 그린 <블랙스완>(대런 아로노프스키, 2010)과 닮았다. 다만, 알렉스의 동기는 두 영화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더 내면 깊숙한 곳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성취에 관한 핏빛 드라마가 각 영화에서 어떻게 비슷하고 다르게 연출되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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