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사 간 임금·단체교섭이 한창일 것이다. 지난 2년간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최대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50명 미만 제조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무급휴업은 일상이 됐고, 서비스 사업장에서는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기본 노동시간이 뭉텅뭉텅 잘려 나갔다.
사업주 일부는 휴업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꾸며 고용지원금을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 노동자들은 무급으로 그냥 쉬었다. 돈이 떨어져 대리운전이며 배달서비스로 ‘투잡’에 나섰던 수많은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들이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 초 간신히 일터로 복귀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그렇게 다시 돌아온 ‘봄’, 햇살은 눈부시지만 다시 일터로 돌아온 노동자들은 살인적으로 오른 물가와 제자리걸음인 임금의 남루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낮다고 하지만 지난 2년간 노사 간 임단협은 그야말로 유명무실했다.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임금인상 요구에 사측은 손사래를 쳤다. 코로나 확산으로 경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과 기업인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코로나 확산으로 경제적 위기에 처한 저소득층의 삶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에 의해 공급된 시중의 자금 유동성과 공공 일자리 정책이 시장을 왜곡시켰다며 이제 정부는 기업이 하는 대로 지켜보라고 한다.
기업 역시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외친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야 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이들의 주장처럼 “근속이 늘어난다고 임금이 꾸역꾸역 오르는” 진짜 호봉제를 실시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소·영세 사업장이 우리 사회 고용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금테이블조차 없이 사업주와 개별 협상에 따라 연봉이 정해지는 체계 없는 사업장이 부지기수란 이야기다.
지역에서 방위산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의 노동조합에서는 최근 몇 년간 교섭 과정에서 줄기차게 임금체계 마련을 사측에 요구했다. 직무급도 좋고, 연공급도 좋으니 노조의 의견을 반영해 현장 상황에 맞는 적절한 임금 지급기준을 마련하고 예측 가능하도록 노동자들의 경력관리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사업주는 되레 기존처럼 개별 임금협상을 고집했다. 임금체계를 정해 버리면 되돌릴 수 없게 돼 필요한 경우 근로조건을 낮추지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자신의 경력에 따른 근로조건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 직원들의 이직이 잦았고 빈자리는 사업주가 친인척이나 지인들을 데려와 메웠다. 사업주가 알음알음 데려온 새 직원의 월급은 10년을 꼬박 일하고 능숙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보다 많았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까?
물론 모든 중소기업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에서 최근 노사 간 분쟁에 관한 상담을 하다 보면 사업주들이 부쩍 소속 노동자들을 도구로 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장기근속하며 회사와 함께 커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업주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업주들의 인력운영 패턴을 살펴보면 이를 직감할 수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사업장 핵심 생산기계를 담당하는 몇몇 직원만 우대하고 나머지는 용역과 일당직으로 채워 회사를 꾸리고 싶어 한다.
안정적 인사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중소기업 특성을 고려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채용 후에 체계적 직무교육은 어렵다 하더라도 선임 노동자를 이른바 ‘사수’로 지정해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고 최소한의 조직 적응 훈련을 시켜 왔는데 이러한 도제식 교육마저 포기한 사업장이 수두룩하다.
결국 위 사례에서 해당 노조는 올해도 임금체계 마련을 포기했다. 사업주의 반발과 길어지는 협상 속에서 합리적 기준 마련은 미룬 채 일정액의 협상 타결금을 받고 교섭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노조가 임금인상을 양보할 테니 직무교육도 좀 늘리고 인문·교양교육을 실시할 비용을 회사가 부담해 노동자의 가치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갖자는 제안도 나중으로 미뤄졌다. 이처럼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근속과 직무에 따라 합리적 임금체계를 마련하고 노동자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다.
사업주로서는 직무를 분석하고 임금체계를 마련하는 데 비용이 들 뿐 아니라 기준이 마련되면 사업주의 자의적인 판단 여지가 줄어들어 불편할 것이다. 애써 돈을 들여 가치를 높여 봐야 다른 곳으로 떠날 궁리만 한다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그냥 성과금이나 받아 내지 왜 불편하게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려 하느냐는 조합원들의 불만에 난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합리적 기준과 출발선이 없이 지금처럼 노동시간만을 기준으로 보상체계가 주어진다면 노동자의 땀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노무관리의 기초가 되는 임금체계와 인력개발 프로그램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인력운용 현실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노동조합 역시 중소·영세 사업장 임금체계 마련에 정책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역에서부터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기업이 합리적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방안을 만들 수 있도록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