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일을 안 줍니다. 청소나 잡무만 하게 하고….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정말 괴롭습니다.”
자신이 받는 임금에 비해 사업주가 일을 많이 시켜 괴로운 것이 대부분 노동자들의 심정이다. 그러나 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사업주가 일을 시키지 않아 괴로운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사업주의 눈 밖에 나 해고 위기에 놓인 노동자나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가 대표적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는 근로계약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에게 임금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월급은 사실상 계약에 의해 우리에게 생긴 하나의 권리다. 다만 근로계약은 양 당사자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노동력 제공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가 노동력을 제공받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어떻게 될까? 노동현장에서는 사용자가 자신의 눈 밖에 난 노동자를 해고하면 여러 가지 부담을 지기 때문에 자발적 이직을 유도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른바 ‘갈궈서’ 스스로 나가게 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방식이 피해 노동자에게 일을 주지 않는 것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노동자를 강제로 해고할 경우 피해 노동자는 노동위원회라는 곳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사용자가 해고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부당해고 판정이 나오면 사용자는 피해 노동자를 원직복직하고 임금상당액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해고 30일 전에 해고예고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해고예고수당도 지급해야 하는 등 금전적 부담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사용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에게 인격적 모욕이나 정신적인 압박을 가해 사업장에서 스스로 나가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 노동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모욕감을 주고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이 이른바 ‘책상 치우기’로 알려진 일거리 뺏기다.
일반적으로 근로계약상 담당하기로 정한 피해 노동자의 업무를 해당 부서 "다른 근로자에게 인계하라"고 지시하는 데서 괴롭힘은 시작된다. 이처럼 동료 근로자부터 고립시키는 단계를 지나면 회사에 출근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장기간 대기발령을 내리기도 한다. 수습 노동자의 경우 알아서 나가지 않으면 청소 등 허드렛일을 지시하며 모욕을 주는 경우도 있다.
사업주 눈치를 보면서 초기에는 심정적으로 피해 노동자에 동조하던 동료 노동자들과도 자연스레 접촉빈도가 낮아진다. 피해 노동자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정신적으로 고립된다. 자신이 담당하던 업무를 뺏고 수개월간 대기발령을 통해 사업장에서 배제당하면 초기에는 사업주의 모욕을 버티면서 '절대 내 발로 걸어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피해 노동자로서도 그 의지가 꺾이게 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사용자가 노무수령을 거부할 경우 이를 사용자 귀책에 따른 휴업으로 본다. 사업주는 직장내 괴롭힘이나 사직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피해 노동자에게 일을 안 시켰어도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휴업수당은 평균임금의 70%지만 부당해고 등 불법행위에 따라 근로제공을 못했다면 정상적이라면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 100%를 요구할 수 있다.
동료들은 일도 안 하면서 월급을 다 받아가면 할 만하겠네,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상담사례를 돌아보면 실제로 일을 뺏기고 월급날 계좌를 확인하는 피해 노동자들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모욕적이다.
피해 노동자가 자신의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일이 경제적 성취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경영심리학자들은 월급과 같은 ‘위생요인’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동기요인'에 해당하는 성취감과 자긍심을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일은 자신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이기에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조직에 보탬이 돼 보람을 느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법원도 판례(2010다88880)를 통해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통해 근로자에 대해 근로제공을 통해 참다운 인격의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실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신의칙상 의무를 부담한다”고 설시했다.
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의 근로제공을 계속 거부하는 것은 근로자의 인격적 법인을 침해하는 것으로 근로자가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이러한 인간 본연의 심성을 짓밟아 생활의 터전에서 내모는 일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직장내 괴롭힘 과정에서 ‘왕따’시키기 행위나, 부당해고 판정 이후 일거리 뺏기에 대해서는 사용자와 가해자에게 형사처벌을 고려하는 등 강력한 처벌조항이 필요하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