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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들'을 읽고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수상작] 독후감 3등 일반부문, 이연

등록일 2022년02월28일 15시0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산업재해, 실명, 투석, 장애. 박혜영 행동가가 만난 이들이 맞닥뜨린 처참한 단어이다. 이 단어를 속으로 읊고 또 읊다 보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지금과 다르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 2019년에는 나도 노동자 중 하나였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다가 사람에 치이고 업무량에 치여 그 무렵 이직을 하게 됐다. 시각장애인이 조금 더 나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장애인 보조기기를 제작하는 것이 회사였다. 시각장애인이 운영하고 직원의 대부분이 시각장애인이었다. 나는 마케팅 부서에서 중책을 맡은 직원의 일을 돕고 직접 보조기기 영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핸드폰의 보이스오버 기능이나, 컴퓨터 화면을 읽어주는 고성능 소프트웨어가 있지만, 업무 시에 한계가 있으므로 내가 도와야 했다.

 

영업 업무를 하는 기간은 따로 존재한다. 국가에서 장애인 보조기기 교부 사업을 하는 기간이 내가 영업 업무에 참여하는 때다. 늦봄부터 준비해서 여름 무렵에 한창이다. 신청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장애 등급이 순위 선정에 가장 중요하고, 같은 등급 안에서도 장애의 정도를 따지고 보조기기의 활용 계획도 살핀다. 이전에 대상자로 선정되어 보조기기를 받은 적이 있다면 생애 처음으로 신청하는 사람보다는 순위가 밀려난다. 우리가 기준을 정하는 것은 아니고, 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 보조기기 업체는 이런 지침과 방안에 대한 공문을 받는다.

 

보조기기 업체는 이 기간에 사업 대상 제품을 들고나와 홍보한다. 경쟁이 치열하다. 장애인은 수많은 기기 중 단 하나만 신청할 수 있다. 선정 대상자는 정가의 20% 혹은 그 이하의 금액만 내고 사용하지만, 업체는 장애인 본인 부담 비용을 받고 차액은 정부에서 받기 때문에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는다. 한 해 수익이 대부분 이때 발생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우리 제품을 신청하게 하고자 열성으로 뛰어다닌다. 전국 팔도의 장애인 복지관을 다 돌아다닌다. 도착하면 몇 시간 동안 제품을 설명하고 설득하느라 목에 핏대가 선다. 뒤꿈치 물집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장애인 대상으로 수입을 올리려고 혈안이 되어있나 싶기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각 회사는 모두 장애인 직원이 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일상의 불편함을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꿰뚫고 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이 사용할 제품이라는 생각으로 밤새워 고민하고 개발한다. 그렇게 탄생한 보조기기가 필요한 사람의 곁에 가서 반드시 도움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 제품을 신청해보라고 설득하는 것은, 당연히 돈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분명 당신을 도울 것이라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행동이기도 하다.

 

우리 제품을 신청하기로 하면 동의를 얻어 신청서를 대필한다. 빈칸 안에 글을 적어 내는 것이 어려워, 대부분 비장애인 직원이 대필한다. 이름, 연락처, 장애 등급, 재직 여부, 수급자 해당 여부 등을 묻고 체크 한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보조기기 받으면 어디에 활용하실 계획인가요?”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대상자를 선정하는 관계자들에게 이 사람이 꼭 선정되어야 한다고 읍소할 수 있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한다. 아주 알차게 활용될 것이고 이 기기가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 알린다.

 

마지막 질문에서 제법 긴 대화가 오간다. 신청자는 본인의 사생활까지 언급해가며 우리 회사 제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나에게 말한다. “내가 안마원 운영하거든요. 근데 최근에 잔존 시력마저 다 사라졌어. 전맹이 된 거지. 빛도 느낄 수 없어서 겨우 아내 도움받고 꾸려가긴 하는데 영 마음이 불편해서리. 이것이 있으면, 일도 더 잘할 수 있고 내가 자신감도 더 생길 것 같은데. 살 좀 붙여서 내 이야기 좀 잘 써줘 봐요.” 나는 요청에 충실히 따른다. 거짓되진 않으나, 어떻게든 탄탄한 문장을 만들어서 활용 계획안을 작성한다.

 

한 번은 제품 설명회 일정으로 경기도 모처에 있는 복지관에 방문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조기기의 기능을 설명하고 질의를 받고 신청서를 작성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틈을 타, 뻐근한 허리를 세워 스트레칭을 하는데 먼 곳에서 느린 걸음으로 우리 회사 부스에 어떤 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직접 만져보시고 사용해보셔도 돼요. 궁금하신 것은 편하게 말씀하세요. 신청서 제가 가져왔으니까 원하시면 여기서 신청하고 가셔도….” 한창 인사말을 하는데 내 말을 끊고 자신의 용건을 전했다. “이거 신청할게요. 어떻게 쓰는지는 대충 알아요. 여 복지관 사람들 이거 많이 쓰더라고요. 신분증 줄까요?”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온 분이라 내가 할 것은, 딱히 없었고 그럼 개인정보 활용 동의해주시면 내가 대신 신청서를 작성하겠노라고 설명했다. “그래요.” 제법 무심한 어투로 대답해왔다.

 

마지막 항목. “선생님, 저희 제품 어디에 활용할 계획이세요?” 내가 무엇을 묻든 질문을 듣는 족족 재빠르게 대답하던 신청자가 이번에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대충 알아서 써달라고 하시는데 그럼 제가 막 지어내는 거잖아요. 그럴 수는 없고 간단하게라도 알려주시면 제가 잘 써볼게요. 주로 어디에 쓰시게요?”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답이 돌아왔다.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어도, 수백 명의 신청자와 대화를 했어도, 나는 그분의 이야기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중복 장애거든요. 신장을 투석해서 자동으로 2급 판정이 나버리고. 눈은 암것도 안보여서 1급이고. 여 손가락 하나도 좀 잘렸어. 처음 다친 것이 손가락. 어디 공장서 일하다가 기계에 말려서 없어져 버리고. 요 눈은 그 후에 또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데 뭐 잘못 들어갔는지 멀었어. 근데 그때 한참을 아파서 병원 신세를 졌는데 신장도 망가졌다고 피를 갈아야 한 대. 그래서 투석도 했어요. 그때 빚도 생기고. 그 몸으로 뭐 사람 구실을 하나? 결혼도 못 하고, 아무튼. 어머니가 하도 피눈물 흘리시길래, 말이라도 해보자 하고 공장에 어머니랑 가서 따지러 갔다는 것 아녀요. 근데 꿈쩍도 안 해. 돈 몇 푼 주는거, 살기가 어려우니까 입 닫고 받고 왔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꽉 막힌 듯한 가슴팍을 쥐고 고민했다.

 

“아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렀네. 하여튼 그래서 병신같이 살다가 동사무소 직원이 복지관에 가면 직업 교육도 해주고, 사람들이랑 어울릴 수 있다기에 몇 달 전부터 여기 다녀요, 내가. 근데 다들 이 회사 제품 쓰대? 컴퓨터 화면 소리도 읽어주고 이게. 나도 슬슬 컴퓨터 배우고 점자도 배우고 사람답게 살아볼까 싶어서. 먹고 살려면 컴퓨터는 요즘 다 해야 하잖아요. 책도 컴퓨터로 다 들을 수 있다던데?” “아, 예 선생님. 요즘 컴퓨터 없이는 불편하죠. 배워두시면 좋으니까 저희 제품으로 컴퓨터도 배우고 책도 들으시고 점자도 배우고 하셔요. 활용 계획서 잘 써드려야겠다.” 신청자는 잘 써드리겠다는 말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선생님만 믿을 테니까, 잘 써봐요. 사람 하나 살린다 치고. 근데 내가 좀 웃기죠?” “네? 뭐가 웃겨요?” “먹고 살라고 일하다가 병신 됐는데 또 일하면서 살겠다고 이거 신청하잖아. 근데 이젠 더 잘못될 곳도 없어서 남은 생, 잘 좀 해보려고.”

 

자신을 ‘병신’이라고 칭하며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신청자의 말에 나는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선생님, 일하다 크게 다치셨으면 산재 이런 것 신청해보시지 그랬어요.” “아이고 그때가 언젠데. 아주 한참 옛날이에요. 산재가 뭔지 나는 알지도 못했고, 일할 때 쓰라고 보호되는 안경을 주나 뭘 주나 아무것도 안 주고, 안 알려주고. 그때는 하여튼 지금이랑 달라요. 하도 막막해서 그냥 돈 좀 주는 것 손에 쥐고 입 닫았다니까. 집에 와보니까는 얼마나 내가 억울했으면 돈이 다 구겨져 있었어. 주먹으로 그걸 꽉 쥐고 와서.”

 

지금이랑 그때는 영 딴판이라고 말하던 신청자. 나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했다.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인가. 그때도 지금도 노동의 현장은 가혹하구나.’ 乙은커녕, 丙이나 丁쯤이 되어 사는 노동자. 그저 싸게 고용하면 그만이고 회사가 잘 돌아가면 그만인 현실. 회사를 받치고 있는 저 말단의 주춧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

 

2019년도의 보조기기 교부 사업 기간이 끝나고 대상자 확정 명단이 나왔다. 다행히, 그분도 목록에 있었다. 그분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갇힌 곳을 나와, 다시 사회로 흘러가셨을까? 본인의 염원대로 ‘사람답게’ 살고 계실까? 노동하다 육체의 건강을 잃고 다시 일터로 나가 보겠다고 다짐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던 분. 하지만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어쩔 수 없다고. 겉은 웃지만 속은 피눈물을 흘리고 계셨을….

 

사람이 살면서 한번은 노동자가 된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자가 된다. ‘문밖의 사람들’이 알려지고 또 알려지길 바란다. 노동자 아무개로 살아갈, 나와 가족, 혹은 내 친구들이 아무 일도 없이 먹고 살도록.

 

부디 그 신청자에게 당신 생각대로 분명 과거는 지금과 다르다고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일하기 괜찮은 세상이라고 흔들림 없이 말해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심사평

☞ 스스로의 노동을 고백하는 이러한 글은 언제든 필요하다

☞ 자신의 노동을 통해 ‘문밖의 사람’과 인연을 설명하며 타인에게 공감을 이끔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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