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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을 읽고, 우리는 또 다른 전태일이다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수상작] 독후감 3등 일반부문, 전민창

등록일 2022년02월28일 15시0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인간 사회는 철조망이다. 철조망은 법이었으며, 질서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억압이다.” 전태일의 삶은 철조망을 부수려고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속에서 전태일은 굴복 하기만 했다. 그러나 전태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불합리한 사회에 저항했다. 만약 냉혹한 현실에 타협하게 된다면 자신을 부정함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어두운 심연과도 같은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사실 철조망을 부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기득권 세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가능성 없는 현실에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자신들의 동료를 규합해 바보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과 뜻을 공유하고, 행동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는 노동청에 평화시장의 노동 실태를 고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노동청 관계자들은 관심 가지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기업주의 해고 통보였다. 노력하더라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에 전태일은 괴로웠다.

 

나는 『전태일 평전』을 다섯 번 읽었다. 나는 전태일을 다섯 번 이해했다. 처음에는 사실 어떤 것도 깨닫지 못했다. 이제는 전태일이 살던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뉴스에서 과로로 죽은 택배 노동자 이야기를 접하면 한없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전태일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 두번 정도 읽으면서 부대의 불합리함을 생각했다. 덕분에 전태일의 분노에 쉽게 공감했다. 전태일의 실천을 응원했다.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전태일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현실에 분노를 느꼈다.

 

나는 2021년도에 6개월 간 공장을 다니면서 다시 전태일의 삶을 접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전태일의 삶과 나의 삶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서야 전태일의 삶에 직접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전태일과 같은 열약한 산업환경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었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노등환경의 처참함을 경험했다. 내가 공장에 다니기 전까지에는 전태일 평전을 읽더라도 그가 처한 환경에 쉽사리 공감하지 못했다. 단지 “옛날 이야기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똑같이 산업 현장에 뛰어들어보니, 전태일이 느꼈던 삶의 좌절과 고민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을 물질화 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p.180)”는 전태일의 사상이 공감됐고, 또 안타까웠다.

 

얼마 전 일이었다. 공장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데 관리자가 교육을 한다고 모이라고 했다. 옆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람이 죽었다고, 안전 교육을 한다는 것이었다. 50대 중년 남성의 안타까운 사고였다. 나도 똑같은 일을 겪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고, 무서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옆 공장에서 사람이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또 다른 옆 공장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사고 내용은 저번 주에 죽은 사람과 똑같았다. 나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고,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사고”라고 일축하고, 무시해버렸기 때문에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나는 두 번의 산업 재해 사고를 겪고 내가 처한 환경, 노동자가 처한 환경에 관심 가지기 시작했다. 이번 산업 재해 사건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고, 예방책은 없는지 찾아보았다.

 

사망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였고, 생산량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서 온 비극이었다. 실상은 이러했다.공장 특성상 정비를 위해서 기계 가까이 가야 했다. 원래는 기계 가까이 가면 센서가 인식하고, 기계가 자동으로 멈춘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계의 가동 중단은 용납 할 수 없었다. 센서의 작동을 멈추고,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이번 산업재해가 단순 안전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이 얘기한 것처럼 “인간을 물질화하는(p.180)” 사회, “인간의 윤리와 희망 가치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들의 ‘금전대의 부피만을 생각하는(p.205) 기업주가 벌인 사고였다.

 

전태일이 1970년 11월 13일 ‘노동 환경 개선 화형식’을 하였을 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했다. 전태일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노동 현실이 바뀌길 희망했다. 그는 쓰레기 같은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전태일의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그는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기폭제를 마련했다. 이제는 전태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공장에 다니면서 실제로 산업 현장을 겪었고, 사망사고를 눈으로 체험하면서 노동자가 처한 불합리한 환경을 경험했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내가 겪은 불합리함에 대해서 공감도 했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전태일의 죽음 이후 노동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라면서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9000원이 넘는 최저시급, 주52시간 근무, 추가 및 야간 수당 의무 지급은 확실히 전태일이 살던 70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전태일이 분노한 “인간을 물질화하는”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또 다른 전태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또 한명의 전태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시금 전태일을 바라봤다. 나에게 전태일은 무엇인가? 존경만 있지 않았다. 전태일의 삶에 공감하고, 전태일의 분노에 같이 ‘분노’했다. 전태일의 삶 자체가 가슴 아팠다. 전태일의 삶은 포기하고 싶고, 타협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전태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화형식은 죽음으로서도 막지 못한 전태일의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열망이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전태일의 열망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전태일의 삶과 사상은 한번 읽기로는 부족하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전태일 평전』은 처한 환경이나 읽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항상 이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덮어보고 생각해 본다. 나에게 전태일은 무엇인가? 어떤 이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또는 어두움을 비추는 횃불이라고, 누군가는 차가운 현실을 드러내는 르포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었다.

 

심사평

☞ 전태일평전을 다섯 번 읽었다는 그가 전태일을 새롭게 읽어낸 순간이 자신의 노동에서 왔음을 고백하는 순간은 기억할 만하다

☞ 전태일평전을 되풀이해 읽으며 현장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해석함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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