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테슬라 같은 전기차를 보면 저도 사고 싶어요. 그런데 전기차가 많이 팔릴수록 내연기관차 부품을 만드는 우리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지역 노동조합 간부의 하소연이다. 그의 일터는 국내 유명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주물제조업체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세계적으로 전기차의 비중은 전체 운행 차량의 1%에 못 미쳤다. 그러나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라는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전기차 비중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신차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5년에 10%를 넘어서고, 2040년에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국내에서도 전기차 생산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탄소저감정책을 시행하면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이 늘면 기존 내연기관과 관련된 일감은 줄어들 것이다. 단적으로 내연기관차량의 배기시설인 머플러를 만드는 제조업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감이 길어야 10년 정도 유지될 것이라 비관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는 올해 사측과 전기차 생산시설의 국내 유지와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골자로 하는 ‘산업전환 대응 관련 미래 특별협약’을 체결했다. 정책능력이 있는 힘 있는 노조라 이러한 합의가 가능했지만 노동조합 상근자 한 명 두기 어려운 대다수 소규모 부품제조업 노조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은 기술발전에 따른 산업전환의 위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
기술발전에 따른 노동자의 피해처럼 사회적으로 올바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의도치 않게 노동자들의 피해가 발생한다. 서울시가 박원순 전 시장 당시 추진한 탈시설 자립지원 정책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5개년 계획과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 정책계획을 마련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약 22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800여명의 거주시설 장애인을 탈시설 자립지원해 지역사회로 통합하고자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탈시설 자립지원 정책은 거주시설에 장애인을 몰아넣고 관리하는 획일화된 복지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이는 복지의 단순한 시혜자가 아닌 당당한 생활의 주체로 장애인을 인식하는 획기적 발상으로 사회적으로 올바른 정책이다. 실제 이를 선구적으로 추진한 진보적 장애인 단체의 노력과 서울시의 정책성과로 중앙정부가 견인돼 최근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도 발의됐다. 전국적으로 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 추진 과정이 시설의 폐쇄를 전제하는 만큼 해당 시설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향후 가속화될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화에 따라 시설폐쇄는 불가피하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20개가 넘는 서울시 지원 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일하는 1천100여명 종사자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된다. 전국적으로 보면 더 많은 시설 종사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이들에 대한 고용안정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정책을 추진하는 서울시는 노동자들의 걱정에 무심했다. 단적으로 지난해 초반까지 서울시는 해당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설과 시민단체와는 민·관 협치라는 명목으로 연간 수천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며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그러나 종사자 고용안정 문제와 관련해 시설 산하 노동자들과 구체적인 대화 자리조차 갖지 않았다. 서울시는 고용을 위협받게 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요구하자 그때서야 마지못해 대화에 나섰다. 탈시설 자립지원을 보조하기 위한 지원기관으로 전적을 함께 기획했지만 기존 인력의 소수만이 이동할 수 있었다.
향후 기술발전으로 인한 산업전환과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부수적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열심히 일했지만 피해를 입게 될 노동자들을 보듬지 않는다면 이들은 해당 정책에 강력한 반대세력이 되고 사회적으로 ‘백래시’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거친 저항을 상기해 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동자들을 산업전환과 사회정책 추진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정책 결정 후 들러리 세우지 말고 이해관계 조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역시 변화하는 산업전환과 사회적 정책 변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고통을 미리 감지하고 이를 예방하는 정책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양대 노총은 금속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기술발전에 따른 산업전환 과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정책대응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한국노총은 지난 10월 발표한 ‘20대 대선 정책공약 요구안’을 통해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정책추진시 고용영향평가를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방안을 고민하도록 하는 등 정책제안을 한 바 있다. 향후 대한민국의 산업과 사회정책 방향이 결정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