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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에 노동이 있어야 한다

허윤정 한국노총 정책2본부 실장

등록일 2021년10월12일 08시51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요즘 사회적 대세를 몇 가지 꼽으라면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를 빼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TV를 켜면 ‘국내 굴지의 모기업이 ESG경영을 선언했다’라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급기야 K-ESG라는 말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를 ESG 경영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고, 얼마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ESG 인프라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ESG가 도대체 뭐길래 대통령과 부총리까지 적극 지지하고 나서는 걸까. 그리고 ESG는 노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세계는 지금 ESG 열풍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ESG는 2004년 유엔 글로벌 콤팩트가 출간한 보고서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데서 그 출발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ESG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전부터이다. 특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rack Rock)의 회장 래리 핑크(Larry Fink)가 “ESG 사업 전략을 채택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라고 공공연히 선언하며 ESG 확산에 불을 지폈다. 래리 핑크에 따르면 불과 4년 전만 해도 이런 메시지에 상당수의 기업들이 거센 반발을 보였으나 지금은 그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ESG가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 역시 ESG와 관련된 정책들을 쏟아내며 ESG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의 지속가능발전 목표와 친환경적 인프라 개선을 위해 2조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기후변화와 환경 투자에 적극적인 바이든 대통령의 관심은 ESG의 환경(E) 부문을 넘어 ‘사회(S)' 부문으로까지 닿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새 정부 정책 전반에 인종 형평성 이념을 도입하고, 노동조합 설립과 최저임금 인상안을 공식 지지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ESG 경영을 강조하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선데 이어 ESG 대통령이 되겠다며 ESG를 전면에 내세운 대선 후보도 있다. SK, 삼성, 포스코, LG 등 굴지의 대기업을 포함해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기업, 공기업, 금융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아예 ESG 전담조직을 만들거나 이사회에 ESG위원회를 설치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ESG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ESG에 ‘S'가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 ESG에 혈안이 된 이유는 ESG가 투자자에게는 어떤 기업에 투자할지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소비자에게는 어떤 기업이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것인지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고, 아동노동이나 인권침해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기업의 상품은 사지 않게 되면 ESG 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과거처럼 오직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기업 경영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환경을 파괴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거나 생산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게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였다면 즉, 소비자와 노동자, 나아가 사회구성원과 같은 이해관계자의 삶을 돌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기업 활동이 아니라면 그 기업은 도태될 것이다. 한 번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기업은 회생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맞물려 ESG의 방점이 환경 부문에 과도하게 찍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SG 경영을 선언한 수많은 기업들 가운데 사회 부문에 초점을 맞추어 공익과 인권, 노동 문제를 기업 경영의 핵심가치로 두겠다고 결심한 기업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미지수다. ESG 경영을 추구하겠다고 선포한 많은 기업들에서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나서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이 성행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기업들이 ESG의 S(사회)를 기업 활동의 결과인 이윤의 일부를 기부의 형태로 사회에 돌려주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의 사회적 책임(CSR)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윤리경영, 인권경영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얕은 욕심만 가지고 뛰어든 기업들은 진정성 없는 ‘ESG 워싱(위장 ESG)’을 의심받아 마땅하다. 이런 기업이 많아진다면 ESG는 내실 없는 구호로 그치게 될 것이다.

 

노동 등한시하는 ESG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데다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기업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객관화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데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망 산재사고가 발생한 회사의 ESG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높지만, 임산부에게 초과 노동을 시키고, 출산한 여성노동자를 퇴사시키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그 기업은 과연 ESG 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전경련이 기업의 ESG 평가등급을 높이고 싶은 실무자들이나 인사고과에 자격증이 포함되는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한 수강료 수십만 원짜리 ‘전경련 ESG 전문가 자격증’ 프로그램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ESG가 기업에 대한 하나의 평가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 드는 동시에, 기업의 ESG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되기까지 했다. 환경을 보호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경영하는 기업이라면 투자자와 소비자들로부터의 좋은 평가는 자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ESG를 평가 지표의 하나 정도로 여기는 한 ESG에 쏟아 붓는 노력과 비용은 분명 헛수고가 될 것이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앞으로 노동과 인권이 ESG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동 관련 기준을 준수하고, 고용안정에 힘쓰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애쓰는 동안 기업은 자연스레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기업들이 어디에 힘을 쏟아야 할지 답이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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