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빈번하게 간과되는 사실 중 하나가 회사가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회사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든 이는 자본단체에 불과한 회사에 법인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한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이다. 회사의 경제학적 구조가 아니라 회사의 정치적 구조로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긍정하는 한 기업의 이익을 수취할 권리를 근로자에게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법제가 수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나, 기업의 ‘소유’라는 말이 내포하는 ‘기업을 통제하는 권리(right to control)’의 일부를 근로자가 분점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은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이 선언하고 있는 ‘경제민주주의’의 원칙에 오히려 부합한다. 따라서 「노동자경영참가법」의 제정은 제헌헌법이 선언했던 ‘이익균점’의 정신을 회복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제21대 국회는 이러한 노동자의 요청에 응답할 역사적 의무가 있다.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Ⅲ. 경제민주주의와 근로자 경영참가의 당위성
Ⅳ.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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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기업은 단순히 영업용 재산을 물리적으로 집합시켜 놓은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재산을 토대로 지속적인 수익활동을 하는 경영조직체이다. 따라서 기업은 각각의 영업재산의 가치의 합에 플러스 알파(+α)라는 부가적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이러한 부가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를 기업의 ‘경영’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경제의 발달에 따라 기업의 형태가 개인기업에서 조합, 익명조합, 회사 등의 공동기업의 형태로 발전되어 왔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공동기업 중 회사, 특히 주식회사는 자본의 집중과 위험의 분산을 통하여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대규모 기업의 경영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 결과 주식회사는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있어서 경제활동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권오성, 2014: 735). 그런데, 주식회사를 비롯한 공동기업의 경우에는 그 소유자들이 기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집단적’으로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가에 관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기업지배구조’란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러한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에 관한 설계도라고 할 것이다.
현행 상법은 회사의 소유자가 주주라는 인식에 터 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 vs. 회사채권자’, ‘지배주주 vs. 소수주주’, ‘주주 vs. 기관(이사)’의 이해관계의 조정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기업활동에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통적으로 기업지배구조는 주주와 경영진 간의 긴장을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법(회사법)과 노동법은 충돌할 수는 있을지언정 어떠한 접점을 갖기는 어렵다(권오성, 2018: 131-133). 그러나 최근 회사의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주주 이외에 근로자 등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바, 이러한 경향은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상 가치를 회사법의 영역에서 실현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노총은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송옥주, 안호영 의원과 함께 지난 8월 ‘노동자 경영참가법 제정 필요성과 입법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Ⅱ.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일반적으로 기업의 ‘소유’란 기업에 필요한 재산을 출자(出資)하는 대가로 받은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의미하고, 기업의 ‘경영’이란 이러한 출자로 형성된 기업재산을 사용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말은 기업의 소유자, 즉 출자자와 기업의 경영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이해에 의하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의 정도는 기업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다. 조합 또는 합자회사 등 인적회사의 경우에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약하다. 즉, 이러한 형태의 공동기업에서는 출자자가 경영을 담당하게 된다. 출자자가 공동기업의 채무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지는 경우, 그러한 출자자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요청이라 할 것이다. 반면, 주식회사는 대중으로부터 자본을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기업형태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수의 주주가 존재함을 상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다수의 주주가 집단적으로 직접 경영을 수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또한 주식회사의 주주는 유한책임을 질 뿐이므로 회사의 경영성과로 인한 주주의 위험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주식회사의 경우 인적회사처럼 출자자가 직접 경영을 하여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이러한 점에 ‘주식양도의 자유’라는 속성이 더해진 결과 주식회사의 경영은 불가피하게 주주로부터 독립된 제3의 경영기구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언제든 자유롭게 주식을 양도하여 회사와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단절시킬 수 있는 주주에게 직접 경영을 맡기는 것의 불합리함이 주식회사에서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의 이유이다.
그런데, 회사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말에서 사용하는 ‘소유’라는 용어는 민법상 물건의 소유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기업의 소유라는 말은 ① ‘기업을 통제하는 권리’와 ② ‘기업의 이익을 수취할 권리’를 내용으로 한다. 전통적인 회사법은 기업을 통제하는 권리(이사의 선임이나 회사의 기본구조의 변경 등에 대한 의결권 등)와 기업의 이익을 수취할 권리(잔여재산이나 배당의 수령)를 자기자본 투자액에 비례하여 부여하는 ‘투자자 소유기업’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물권적 소유권 개념은 권리의 객체인 물건을 직접적으로 또 총체적으로 지배한다는 의미이다. 반면, 출자(出資)란 영리법인의 지분을 취득하는 행위, 즉 자본단체의 구성원(member)이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기업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문맥에서 사용되는 소유라는 용어는 법적인 개념으로서의 소유, 즉 물권적 소유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주주가 출자를 통해 획득한 주식은 사원권(社員權)의 성격을 가질 뿐이므로 주주가 회사 자체를 직접 소유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주주는 회사를 ‘직접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와의 관계에서 ‘일련의 채권관계’를 맺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용어는 전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회사의 주인이 자본(資本)이라는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실,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모순적이다. 오늘날 회사는 마치 자기가 영육(靈肉)이 있는 ‘사람’인냥 행세한다. 자기들이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라고까지 주장한다(경영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상기해보라!). 그러나 사람은 소유의 객체가 될 수 없다.
법률이 어떠한 자본단체를 사람으로 의제(擬制)하여 법인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러한 자본단체가 공적 질서의 일부로 행위(예컨대, 자본단체 자신의 이름을 갖고, 그러한 이름으로 타인과 거래하며, 재산을 소유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등)하도록 허용한 것일 뿐, 소유의 객체에 불과한 재산을 영육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회사의 ‘법인격’을 과장하여 자본단체에 불과한 회사가 기본권 보호와 같은 진정한 ‘인격(人格)’의 다른 특성까지 향유할 수 있다는 식의 이해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정말 중요한 것은 회사에 법인격이 부여되었다는 ‘법적 의제(legal fiction)’가 아니라, 회사라는 자본단체가 사회질서 내에서 어떠한 공적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가이다. 따라서 올바른 질문은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가 아니라 ‘회사는 누구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Ⅲ. 경제민주주의와 근로자 경영참가의 당위성
현행 상법상 주식회사의 기관은 기본적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기관으로서 주주총회가 있고, 업무집행기관으로서 원칙적으로 이사회와 대표이사가 있으며, 이사의 업무와 회계에 관한 감사기관으로서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가 있다. 주주총회는 주주의 총의에 의하여 회사 내부의 의사를 결정하는 주식회사의 필요적 기관으로(상법 제361조), 주주 전원에 의해 구성되는 자기기관이다. 한편, 이사회는 이사의 총의에 의하여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는 주식회사의 필요적 기관으로, 이사 전원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주식회사 제도는 기업의 ‘소유’라는 말이 내포하는 ‘기업을 통제할 권리’와 ‘기업의 이익 또는 잉여를 수취할 권리’ 모두를 주주(株主)에게만 인정한다. 이는 주주의 유한책임과 결합하여 우리나라의 회사법제는 기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주주들이 전적으로 누리면서, 기업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위험은 엄격하게 제한되는 방향으로 형성되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는 위 조항에 규정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이념은 경제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추구할 수 있는 국가목표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행위를 정당화하는 헌법규범이라고 선언하였다. 위 규정에서 명시된 ‘경제민주화’를 보통 경제민주주의라고 부르는바, 경제민주주의는 거시적으로는 경제영역에서 활동하는 국민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조정하고 경제영역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미시적으로는 경제 주체 각자가 자신의 경제활동의 목표와 수단 및 노력(기여도)에 따른 정당한 경제성과, 즉 경제활동의 정당한 기여에 부합하는 경제적 배분의 몫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요컨대, 경제민주주의는 헌법에서 명시하는 독점으로 인한 폐해 이외에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사람도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서 배제되지 않고 국민경제와 ‘공동체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포섭’을 실현하기 위한 규범적 목표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새로운 회사 제도의 설계를 위하여 던져야 할 질문은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면서도(헌법 제119조 제1항) 기업활동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기여에 상응하는 정당한 몫을 분배’하기 위한 보다 공정한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노동법의 영역에서 사업은 ‘근로계약을 통하여 기업이 소유한 생산수단에 노동력을 결합시키고, 그러한 결합을 통하여 산출된 생산물을 생산수단을 소유한 기업에 직접 귀속시키는 인적·물적 조직의 결합체’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계약을 통하여 근로자는 사업에 편입된다. 근로자가 사업에 편입되면 근로자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산출물은 근로자의 소유가 아니라 기업의 소유가 된다.
물적요소인 생산수단과 인적요소인 노동(력)을 결합하여 가치를 추구하는 유기적 조직체를 기업이라고 보면, 그러한 기업이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의사결정을 ‘경영’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회사와 같은 공동기업에서는 그러한 의사결정, 즉 경영은 ‘집단적’ 의사결정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근로자의 경영참가’ 문제는 근로자가 이러한 기업의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가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경영참가’는 기업을 구성하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행해지는 근로조건 등에 관한 교섭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종래 회사법은 ‘주주’를 회사의 소유자로 전제하고 주주와 경영자의 분리를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회사가 법률에 의하여 만들어진 의제된 법인격이라는 점을 경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가 자본단체에 불과한 회사에 ‘법인격’을 부여한 것은, 즉 회사를 ‘사람’으로 취급하기로 결단한 것은 주식회사가 일정한 공적 기능을 담당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소유’를 주주에게만 전속시키는 현행 상법의 태도는 당초 회사가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였던 공적 기능을 외면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국가에 버금가는 사실상 권력이 되어 버렸다. 또 다른 리바이어던이 탄생한 것이다. 근로자에게 기업의 ‘소유’에 관한 권한을 일정 정도 균점하게 하는 것은 노동소외와 착취를 억제하고 기업이 창출한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다.
Ⅳ. 맺으며
자본이 소유한 생산수단은 정태적 재산이다. 여기에 노동력이란 혼령(魂靈)을 끼얹어야만 가치가 창출된다. 기업을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면, 정태적 재산인 자본과 동태적 혼령인 노동이 결합한 단위인 것이다. 세상을 인(人)과 물(物)로 나눌 때, 인이 물을 지배하는 것이 정상이지, 물이 인을 지배하는 것은 주객이 바뀐 물신적 전도(顚倒)이다.
회사의 이해관계자 중에서 내부 이해관계자에 해당하는 주주와 근로자가 공동으로 회사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독일식 노사공동결정제도는 이해관계자 모델을 실현하기에 이상적인 제도이다. 노사공동결정제도는 유한책임을 질 뿐인 주주 이외에 기업의 존속 자체에 막대한 이해관계를 갖는 근로자에게 부분적으로 기업의 소유권을 분여한다는 측면에서 지극히 정당하다(필자는 국내외 투기자본에 의해 약탈당하여 껍질만 남은 회사들의 이름을 밤새도록 읊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잘려나간 무명의 노동자의 이름을 부르지 못함이 서러울 뿐이다). 물론, 이러한 공동결정제도가 우리나라의 회사법의 관점에서 생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헌법에 회사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빈번하게 간과되는 사실 중 하나가 회사가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회사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든 이는 자본단체에 불과한 회사에 법인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한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이다. 회사의 경제학적 구조가 아니라 회사의 정치적 구조로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자본주의 경제체계를 긍정하는 한 기업의 이익을 수취할 권리를 근로자에게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법제가 수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소유’가 내포하는 ① ‘기업을 통제하는 권리’와 ② ‘기업의 이익을 수취할 권리’ 중 ‘기업을 통제하는 권리(right to control)’의 일부를 근로자가 분점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은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이 선언하고 있는 ‘경제민주주의’의 원칙에 오히려 부합한다. 따라서 「노동자경영참가법」의 제정은 제헌헌법이 선언했던 ‘이익균점’의 정신을 회복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국회는 이러한 노동자의 요청에 응답할 역사적 의무가 있다.
<참고문헌>
권오성, “현물출자와 주주의 신주인수권”, 「홍익법학」제15권 제4호, 홍익대학교 법학연구소, 2014.
권오성, “회사분할과 단체협약의 승계”, 「노동법연구」제44호, 서울대학교 노동법연구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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