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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발전의 동력은 사회적 연대와 지지에 기반한다

1880년대 영국 성냥공장 여성노동자와 런던 부두노동자 파업의 성공이 주는 교훈

등록일 2021년09월08일 09시1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세계노동운동사에 비춰 본 오늘의 노동⑥

 

박현미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시장 양극화와 사회경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어느때보다 중요해 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존립 이유인 이러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사회적 지지와 연대에 기반해야 한다. 1880년대 말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노동귀족’ 숙련공 중심에서 미숙련, 미조직 중심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된 것은 1888년 성냥공장 여성노동자 파업이었다.

 

당시 아무런 조직도, 힘도 없었던 10대 성냥공장 여성노동자 파업투쟁 승리의 배경에는 일반 여론의 지지와 사회적 연대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노동조합 역사의 새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성냥공장 여성노동자 파업의 발생 배경과 이후 노동조합운동에 준 의미를 간략히 소개할 것이다.

 


 

“해가 저물어 가는 어느 추운 겨울날, 눈발이 매섭게 휘날리는 어두운 거리를, 맨 발에 모자도 쓰지 않은 한 소녀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소녀의 낡은 앞치마에는 한 무더기의 성냥이, 작은 손에는 한 다발의 성냥이 들려 있었다. 소녀는 하루종일 성냥을 팔러 다녔지만 하나도 팔지 못했다. 한 푼도 벌지 못한 소녀는 추위와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매 맞을까 집에 가지 못했다. 대신 소녀는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작은 손을 녹이려 성냥으로 작은 불꽃들을 만들었다. 성냥 한 개비, 한 개비로 타오른 작은 불꽃들은 따뜻한 난로가 되었고 사과와 자두로 채워진 잘 구워진 거위구이,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모두 금방 사라졌기에 소녀는 성냥불을 다시 켰다. 아, 웬일인가! 이번에는 이 세상에서 소녀를 유일하게 사랑해 준 할머니가 나타났다. 성냥불이 꺼지면 할머니가 사라져 버릴까, 소녀는 남아 있던 성냥 더미에 불을 붙였다. 다음날 새벽 길모퉁이에는 타 버린 성냥 다발을 손에 쥔 성냥팔이 소녀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얼어 죽어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 어린 시절 가슴 아파하며 읽었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이다.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성냥팔이 소녀’의 최후는 달라야 했다. 물론 당시 현실세계에서 수많은 성냥팔이 소녀들의 삶은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화니까 그동안 버림받고 소외되었던 성냥팔이 소녀가 뜻밖의 행운을 만나 따뜻하고 행복하게 평생 살도록 구원해 줘야 하지 않았을까 했다.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가 빙판 노상에서 굶주린 채 최후를 맞이하다니... ‘이게 무슨 동화야,’ 소리치고 싶던 순간 얼어 죽어간 ‘성냥팔이 소녀’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는 반전이 있었다. 안데르센은 이승에서 도시의 극빈층으로 참혹한 삶을 감내해야 했던 성냥팔이 소녀가 하늘나라에서는 단 한 사람 소녀를 사랑했던 할머니 품에서 행복하고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아! 동화 맞구나.

 

그러나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었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공장에서 백린(황린) 중독으로 쫓겨나면서 몸값으로 성냥을 받아 길거리에 팔러 나선 어린 산재 노동자들의 슬픈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동안 전혀 예상하지도 또 내 시야에 잡히지 않았던 정보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성냥 원료 백린의 치명적인 위험성은 1840~50년대 영국 성냥공장의 안전 실태를 다룬 근로감독 보고서들을 통해 알려졌다. 1845년 <성냥팔이 소녀> 출간 2년 전에는 영국의 사회학자 헨리 메이휴가 쓴 〈런던 노동자 계급과 빈민: 루시퍼 성냥팔이 소녀>에서 ‘인 괴사(phossy jaw)’로 고통받는 소녀를 소개하였다. 메이휴는 “잇몸이 붓기 시작하다 뼈 속에 농이 생기고 나중에는 턱뼈가 무너져 아래턱을 들어내야 하는 인 괴사, 그 원인은 성냥 원료인 ‘백린’ 중독”이라며 성냥공장의 참담한 산업재해를 고발했다(안전보건공단 온라인 동영상 시리즈(8)).

 

소설가 찰스 디킨스도 성냥공장의 백린 위험성을 고발하는 글을 발표했다. 1857년 미국 외과의사 제임스 러시모어 우드는 성냥공장에서 약 2년반 일하다 백린에 중독된 16세 여성노동자의 ‘턱뼈 전체 제거 수술’ 사례를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유사한 환자들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있음도 밝혔다(https://bluemovie.tistory.com/863).

 

19세기 중후반 이후 각국에서는 성냥 생산에 백린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생산비용 절감을 이유로 19세기 후반까지도 성냥공장에서는 계속해서 백린을 사용하였다. 산업재해를 입은 10대 여성노동자들은 고통 속에 죽거나 해고되면서 임금 대신 성냥을 받아 거리에서 팔았다.

 

1888년 7월 영국 런던의 브리언트 앤드 메이 성냥공장 여성노동자의 파업투쟁은 이러한 참혹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여성노동자 672명이 참여한 이 투쟁은 기금도 없었고 조직도 되어 있지 않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투쟁은 사회적 지지와 연대, 여론의 관심 속에서 2주간 이어졌고 승리했다. 이후 성냥공장 여공 및 가스공 등과 같은 미조직, 미숙련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성공하자 부두 노동자 대군을 노동조합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새로운 노력들이 나타났다.

 

1889년 6주간 전개된 런던 부두 노동자 대파업은 그 정점이었는데 각계각층의 기부금으로 파업수당제도를 만들었고 항만회사는 여론의 비난으로 파업 파괴단도 확보할 수가 없었다.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 성공 이후 미숙련 노동자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시드니, 1990: 54-57). 성냥공장 여성노동자 파업이 1880년대 말 숙련공 남성 중심의 영국 노동조합운동을 미숙련, 미조직 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이유이다.

 

19세기 10대 성냥공장 여성노동자들이나 당시 불안정한 미조직, 미숙련의 런던 부두노동자들이 파업을 유지하고 결국 노동운동의 기조까지 바꿀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반 여론의 지지와 사회적 연대가 있었다. 이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기반과 동력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노동시장 양극화로 사회통합이 위협받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지금 절실한 것은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일반 국민 등의 사회적 지지와 연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조직노동자의 지지와 연대가 아닐까. 사회적 지지와 연대 확보를 위한 진정 어린 성찰과 그 실천을 위한 노력이 지금 노동조합, 노동운동에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참고자료>

시드니, 베아트리스 웹(1990), 『영국노동조합운동사 下』, 김금수 역, 형성사.

안데르센, 한스 크리스티안(2016), 『안데르센 동화 전집((완역본)』, 윤후남 역, 현대지성.

안전보건공단 온라인 동영상 시리즈(8) - 성냥팔이 소녀와 MSDS

https://bluemovie.tistory.com/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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