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강력한 전염병 앞에서 우리는 공공의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몸소 체험했다. 특히 전체 요양기관 중 10%도 되지 않은 공공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다루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로 인해 ‘공공의료(공공병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기존의 낙후된 의료시설 혹은 행려병자만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보편적인 건강권 보장의 논리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울산이나 전남, 인천, 대구, 부산 지역에서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제2차 공공의료기본계획에 대한 실망
지난 4월 26일 정부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 공청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하여 향후 5년간 공공의료체계를 어떻게 구축할지 공개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이번 공공의료 기본계획은 지역 공공병원 확충 계획안 3개 외에는 눈에 띄는 확충계획을 담아내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과 민간의 병상 차이는 2019년 기준 공공의료 기관은 221개로, 전체 의료기관 4,034개소의 5.5%에 불과하다. 공공병상 수는 61,779병상으로 전체의 9.6%에 그쳐, 3개소 신축은 민간 주도의 보건의료환경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비쳐진다.
2차 계획안은 공공병원 증축(이전신축 포함)에 대해 17개 지방의료원만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중 400병상 미만인 곳이 35개소로, 이 중 절반만 ‘중증 응급 대응이 가능하도록 적정 규모(약 400병상)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공공병상을 5년간 총 5,200병상 늘리겠다는 것으로 계획이 지켜져도 전체 병상수의 11%도 되지 않는다.
또한 의사 인력 확충계획은 의사의 집단 진료 거부 이후 논의가 중단되었다. 의사 인력에 대해서는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한다는 계획을 내놓거나(지난해 12월에 나온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 관련 단체와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이번 기획안에 담았다. 정부가 더이상 의사 인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최근 감염병 사태에서 보듯 적정 의사 인력의 확보는 보건정책 운영에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사 수 감축이라는 의료계 요구를 정부가 객관적 검토 없이 수용하여 의대 입학정원은 3,500명에서 3,058명으로 감축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의사 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OECD의 2/3 수준이고, 현재 추세를 유지할 경우, 격차를 완전히 해소하는 데 72년이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진료 의사 부족은 결국 의료이용량 팽창으로 전체 의사 공급 부족, 지역 간 부문 간 의사 수급 불균형, 공공의료 인력 부족, PA 편법 운용, 전공의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노동여건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취약한 공공의료와 고령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수요 환경변화를 고려할 때 의사 인력 공급 확대는 시급한 문제이다.
위기의 공공의료, 빠른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5월 3일 한국노총에서 진행된 <위기의 공공의료 처방과 진단> 토론회에서는 토론자와 발제자 모두가 한소리로 코로나 발생 1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공공병원의 부재는 지역에 사는 국민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에 민간병원은 설립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이 골고루 분포하여 지역적 편차를 줄여야 하는데, 공공병원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농어촌에서는 응급, 분만, 재활 등 꼭 필요한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역주민들의 보편적인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하루빨리 공공병원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공공병원이 없는 시·도별로 공공병원을 2개 이상 신축하여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종합병원의 기능을 할 수 있는 300병상 규모로 기존의 공공병원을 증축하여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기능과 동시에 차후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의료 강화정책을 담보할 재원 확보와 함께 공공병원 예비타당성 면제 등 공공병원 설립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입법 조치 추진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의료 확충은 의료인력 양성과도 연계된다. 공공의대 설립 시 교육병원으로 연계될 중앙의료원과 국립재활원, 지역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한 내실화 계획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공의대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해내지 못해 폐교된 부실 사립 의과대학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공공의대를 통해 의사를 양성해도 훈련을 책임질 수 있는 양질의 공공의료기관 부재와 의사 배출 후 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지역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없으면 정부의 지역의사제는 소용없다. 공공병원이 없다면 결국 공공의사 대부분이 민간병원에 근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1개의 공공의대 설립으로는 현재의 부족한 수를 해결하기 어렵다. 의료취약지를 대상으로 최소 대권역으로 4개 정도의 ‘공공의대 설립안’과 의료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공공의대 부속병원 설립안을 함께 수립하는 논의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공공의료 확충보다는 의료영리화만 챙기는 정부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반면 정부는 지난해 데이터 3법을 통과시킨 이후 국민의 민감정보인 신체정보를 활용할 방법에 혈안이 되어 있다. 최근 정부는 ‘마이 헬스웨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정부가 민간보험사(혹은 그 자회사)에 국민건강보험으로 운영되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검진 기록을 민간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발견한 만성질환 등의 건강관리를 영리화로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의 동의 절차를 거친다고 돼 있으나, 현재 개인정보 동의 절차는 ‘포괄적 동의’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목적 외 사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진행되고, 민감정보 보호 조치에 대단히 미흡하게 설계되어 있다.
개인의 민감한 건강검진 정보가 유출되면 받게 될 개인적, 사회적 손해와 피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제도 마련 없이 규제 완화가 이루어지고 있어 더욱 문제다. 마이헬스데이터 사업을 통해 개인 데이터가 민간보험사로 전달되면 공적 건강관리와 보장성보다는 개인 ‘맞춤형’이라는 명분으로 건강이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될 것이다. 또한 이 사업은 민간보험사의 보험급 지급 거절, 보험금 높이기 등의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경로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기에 노동시민단체는 이를 저지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극약처방은 공공의료인프라 확충뿐!
한국노총은 지난해 경사노위에서 「7.28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을 통해 공공병원과 확충과 국립공공의대 설립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아울러 시민단체와 함께 ‘공공의료확충을 위한 노동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2020년 9월부터 12월까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공공병원 신축, 의료인력 확대를 요구하며, 공동기자회견 및 1인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 2021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는 공공병원에 대한 신·증축안 예산은 ‘0원’이었다. 노동시민단체의 강력한 항의 속에서 증축설계에 대해 겨우 15억원 예산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때 활동을 함께 했던 노동시민단체는 다시 힘을 모아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를 만들어 공동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