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제정됐다. 이번 제정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1명 이상 사망하는‘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사망에 대해서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상 및 질병에 대하여는‘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감독의무를 위반한 법인이나 기관은 사망사고의 경우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부상 및 질병의 경우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하여, 사업주와 법인 등이 중대재해로 야기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50인 미만의 사업장에는 3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또한 이번 제정법에는 대중교통시설·공중이용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처벌을 위해 ‘중대시민재해’개념도 도입됐다. ‘중대시민재해’로 인한 사업자나 법인 등에 대한 처벌 내용은 ‘중대산업재해’와 동일하지만, 처벌대상에서 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 1,000㎡ 미만 사업장, 학교, 시내버스, 등은 제외됐다.
대표 이사 빠져나갈 구멍생겨, 공무원 처벌도 삭제
노동·시민단체가 그동안 일관되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한 이유는 중대재해가 작업자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위험을 알고도 방치한 기업의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 등이 재해 예방 조치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경영책임자 처벌은 후진국형 중대 재해를 막고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 법안의 핵심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회의를 통과한 법은 경영 책임자를 대표이사 ‘또는’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로 함으로써 결국 책임을 안전담당이사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됐다. 경영책임자나 법인이 주의,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 면책조항도 포함됐다.
발주처와 임대인도 책임 범위에서 제외됐고, 공무원 처벌 또한 삭제됐다. 공무원 처벌은 동일한 노무 제공에 대한 민간과 공적 영역의 처벌이 다를 경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고, 불법인허가 및 부실관리감독에 대한 책임 문제 등이 지적됐음에도, 소송 우려 등 업무 기피 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삭제됐다. 다만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경영책임자”에 이미 포함되어 제외 대상이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 법적용 제외, 죽음의 차별화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중대산업재해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것이다. 2018년 기준 5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종사하는 노동자 수로는 26.5%인 587만7128명에 이른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자는 한 해 500여 명이며 재해자는 3만여 명에 달한다. 재해 사망 비율로 보면 전체의 20%나 된다. 법사위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이유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본 법이 중소기업까지 적용될 경우의 어려움을 주장해 의견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기 위해선 중소기업이 안전 및 보건조치를 이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 또는 행정적 지원을 할 일이지, 중대재해에 관한 처벌을 면제해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제기된다. 게다가 ‘적용유예’도 아닌 ‘제외’다. 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성명을 내고 “사람의 생명에 차별을 두는 어처구니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후 백해련 의원은 해당 내용이 법사위 소위 통과에 항의하는 한국노총 김동명위원장에게“5인 미만 사업장에서 경영책임자 의무가 삭제된 게 아니다”라며 “5인 미만 사업주는 산업안전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고, 5인 미만 사업자의 원청업체는 (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중대재해법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했지만, 이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한국노총, 온전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
이번에 제정된 중대재해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 및 시민재해에 대해 원청책임을 분명히 했고, 말단 관리자가 아닌 진짜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벌금 하한형은 삭제됐지만 형사 하한 처벌을 도입했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것도 성과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법적용에서 5인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점, 경영책임자의 면책 여지가 남아있고 처벌수위가 낮은 점 등은 과제로 남았다.
한국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 된 직후 성명을 발표해 “다시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법 제정 후 시행령으로 보완하는 것에 한계가 분명하지만, 최대한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보완할 수 있는 시행령이 마련될 수 있도록 여당을 압박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또한,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도 차별받기 이전에, 근로기준법에서부터 차별받아왔다”며, “한국노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까지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