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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는 집, 미국의 얼굴 <라스트 홈 99 Homes>(2014)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등록일 2020년12월14일 18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11월의 여러 이슈들 속에서 미국 대선이 치러졌다. 현지 시각으로 11월 7일엔 바이든 후보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하며 당선을 확정 지었고, 상대인 트럼프 후보는 관례와 달리 승복 선언을 하지 않았다. 120년 만에 가장 투표율이 높았다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2016년과 비교해 더 많은 표를 획득했다고 한다. 선거 전개 양상과 결과 등을 두고 여러 분석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며, 그중에는 언제나처럼 현대 미국 사회의 계급 격차에 대한 말들이 비중 있게 포함되어 있다. 영화는 뉴스보다 느리기에 현상을 실시간으로 다루지는 못하지만, 현재라는 시공간을 감싸는 거대한 흐름을 포착하고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한다. 미 대선에 관한 여러 가지 말들을 지켜보며, 지금의 풍경을 구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인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들, 혹은 그 이후의 영화들을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연출 J.C.챈더, 2011)이나 <빅쇼트>(연출 아담 맥케이, 2015) 같은 영화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를 금융업 종사자들의 입장과 시선에서 재구성한다. 이런 영화들은 부동산 시장과 금융 시장에 대한 믿음이 어처구니없이 부서지고 거대한 금융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그 뒤편에는 어마어마한 악과 계략이 아니라 무지한 탐욕과 당장의 손해를 남에게 떠넘기는 이기적인 메커니즘이 있었음을 밝힌다. 또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알기 쉽게 풀이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하면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영화적인 흥미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재치 있게 또 때로는 매끈하게 구성된 이런 영화들에서는 지칠 줄 모르고 팽창하는 자본주의와 한계가 없는 욕망에 대한 탄식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탄식뿐일 것이다. 밑바닥의 삶과 거리를 둔 자리에서나 가능한 일침과 한숨, 그리고 그와 같은 나름의 통찰을 한 편의 재밌는 대중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자의식이 이 영화들을 추동한다.

 

한편 무분별한 주택담보 대출과 경기침체로 인한 불안정한 주거 문제에 보다 직접적으로 직면한 미국 하층민들의 삶을 배경으로 삼는 영화들도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연출 숀 베이커, 2017)는 플로리다주 모텔촌에서 장기 투숙객으로 사는 여섯 살 어린아이 무니와 젊은 엄마 핼리의 일상과 그들에게 닥쳐오는 크고 작은 사건을 다룬다. 라민 바흐러니 감독이 연출한 <라스트 홈>(2014)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집’에 보다 초점을 맞춘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짤막한 자막과 함께 문을 여는 영화는 강제 퇴거일이 되자 자살해버린 한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마이클 섀넌)를 비추며 시작한다.

 


 

몇 년 전만 해도 평범한 부동산 업자였다는 릭은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2010년의 모든 것, 은행과 정부와 수많은 투자자들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자신을 이 사업으로 인도했다고 말한다. 그는 집을 굴린다. 집을 담보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이들을 집에서 몰아내고, 빈집을 다시 팔면서 돈을 불려 나간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죽거나 빈손으로 남겨진다. 그렇게 그가 쫓아낸 이들 중에는 건축 현장에서 기능공으로 일하는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도 있다. 그 또한 연체금을 갚지 못해 평생을 살던 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왔지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는 엄마 린(로라 던)과 어린 아들 코너(노아 로맥스)와 함께 갑작스럽게 거리에 나앉게 된다.

 

<라스트 홈>은 물론 문제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의 얼굴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더 이상 집을 짓는 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데니스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릭과 함께 일하게 된다. 그는 릭을 대신해 퇴거 통지서를 돌리고, 사람들이 쫓겨난 빈집을 관리하고, 그러다 퇴거일이 다가온 집이 있으면 릭이 그랬던 것처럼 보안관들과 함께 퇴거 명령을 집행한다. 그렇게 하면 지붕을 수리하던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빼앗긴 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으는 동안 어떤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가진 것을 빼앗긴다. 그렇다고 빼앗기는 이들이 그저 손을 놓고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데니스가 그랬던 것처럼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를 찾고, 법정에서 쓰일 수 있는 증거를 모으지만, 더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기회와 더 유리한 조건으로 그들을 이긴다. 영화엔 점차 집을 빼앗긴 이들의 분노와 슬픔, 모멸감과 체념이 쌓여간다.

 

퇴거를 통보받는 이들이 보여주는 얼굴은 너무나 생생하다. 그들은 당황스러워하고 침울해하며, 화를 내거나 무너져 내린다. 그중에는 이제 도와줄 가족이 하나도 남지 않은 노인이나 영어가 서툰 이민자, 혹은 데니스의 엄마처럼 가게가 아닌 자신의 집에서 이웃들의 미용을 도와주고 돈을 버는 형태의 노동자도 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지금의 미국을 이루는 구성원인 셈이다. 그 반대편에는 얼굴이 없다. 빈틈을 공략해 몸집을 불려가는 자본, 그 위태롭게 팽창하는 움직임을 방조하고 허용하는 국가 장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성실히 일하면 집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비웃듯이 날아오는 퇴거 통지서에 구체적인 얼굴이 있으리라고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데니스와 릭은 그 얼굴 없는 자리에 잠시 대신 서 있는 얼굴이다. 그들을 협박하고 미워해도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릭이 집을 비유하며 했던 말처럼 일종의 상자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집을 되찾고 싶어 하는 데니스에게 릭은 말한다. “부동산에 감정을 섞지 마, 그저 상자일 뿐이야.”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쫓아내는 일에 괴로워하면서도 데니스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 데니스의 선택과 행보를 따라가면서 영화는 지속적으로 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흩뿌려둔다. 집은 상자인가, 돈인가, 터전인가. 빼앗긴 집을 다시 되찾을만한 돈을 번 데니스는 가족이 살던 집이 아니라 더 크고 더 좋은 집을 산 뒤 엄마와 아들에게 웃으며 구경시키지만, 그의 엄마는 차갑게 말한다. “여긴 남의 집이야. 우리 집으로 가자.” 구체적인 얼굴과 구체적인 삶이 있는 곳이 집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고, 집이란 더 이상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데니스는 끝내 흔들리다 릭의 반대편에 서기를 선택한다. 그것은 그가 대단히 정의롭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눈앞에 선 사람들의 무너져가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섬뜩한 것은 집이란 상자가 아니라는 외침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언젠가 데니스에게 릭이 했던 말, “미국은 패배자들을 구해주지 않아.”라는 말이 보여주는 건 그런 현실에 대한 서글프고 차가운 통찰이다. <라스트 홈>은 이처럼 세밀하게 포착된 현상을 통해 세계의 작동방식을 드러내려는 위기 이후의, 혹은 위기 한복판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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